[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영화는 보고 듣고 느껴서 생각하게 만드는 과정을 만들어 낸다. 기본적으로 시각적 충족감을 전제로 하는 콘텐츠다. 하지만 장르적 혹은 스토리적 그리고 그 두가지를 풀어가는 방식을 어떻게 취하는지에 따라 ‘보는 것’에서 ‘읽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 물론 영화가 ‘읽는 것’으로 전환되려면 몇 가지 철저한 전제가 필요하다. 치밀하다 못해 거북스러울 정도의 완벽한 시나리오가 필수다. 이 시나리오의 장르적 전제는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복기하는 추리와 스릴러 장르라면 꽤 적절하다. 스토리 자체를 끌고 가는 메인 캐릭터의 공간 이동이 많지 않아야 한다. 공간 이동은 인물이 아닌 스토리가 옮겨 다니면 된다. 뭔가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더해진다면 더 좋다. 반전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그 지점이 필수는 아니다. 이 모든 것을 대입하면 답은 딱 하나뿐이다. 영화 ‘자백’, 이 흐름과 공식에 온전히 그렇게 완벽하게 들어 맞는다. 단 한 컷의 낭비도 없고, 단 한 컷조차 의미와 흐름을 위해 존재한다. 이 영화의 컷과 컷은 모조리 전체를 위한 각각의 ‘미장센’이고 얘기 자체다.
‘자백’은 제목 그대로 누군가의 자백을 이끌어 내는 과정이다. 그래서 질문하는 자와 답하는 자가 있다. 두 사람 중 누군가는 거짓을 말하고 또 나머지 한 사람은 그 거짓을 밝혀내야 한다. 문제는 두 사람 다 거짓일 수도 있고, 반대로 두 사람 다 진실일 수도 있단 점이다. 그래서 ‘자백’의 수 싸움은 치밀하다 못해 숨막히고 숨이 막히다 못해 진땀을 흐르게 만들며 진땀이 흐르다 못해 온 몸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든다. ‘밀실 트릭’을 설명할 때 공간에 대한 전제가 들어간다. ‘자백’은 공간을 넘어 감정적 ‘밀실 트릭’을 풀어 헤쳐야 한다.
영화 '자백'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주요 등장 인물은 총 3명이다. 우선 가장 두드러진 인물은 사이버 보안 업체 대표 유민호(소지섭). 그는 재벌가 막내딸과 결혼한 사업가다. 잘생긴 외모에 아름다운 아내 그리고 재벌가란 배경. 그는 세상이 주목하는 유명인사다. 하지만 잘 나가는 인생에 걸맞게 적당히 나쁜 짓을 하고 산다. 미모의 여성 세희(나나)와 불륜 관계를 지속 중이다. 아슬아슬 하면서도 그만큼 달콤한 삶을 이어간다.
영화 '자백'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그러던 어느 날, 유민호에게 한 통의 전화가 온다. 아내에게 ‘불륜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협박 전화다. 입막음 대가는 거액의 돈. 약속 장소인 호텔에 찾아갔다. 호텔에는 공교롭게도 세희도 있었다. 두 사람은 뭔가 잘못된 것을 느낀다. 그 순간 누군가의 습격을 받은 민호. 그리고 잠시 후 깨어났다. 세희가 죽었다. 두 사람이 함께 있던 호텔방은 완벽한 밀실. 도대체 누가 어떻게 들어왔던 걸까. 세희는 누가 죽인 걸까. 모든 상황이 유민호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하지만 유민호는 결벽하다. 물론 당연하게도 그건 유민호의 주장일 뿐.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유민호는 엄청난 배경을 바탕으로 구속은 면한다. 이후 산속 별장에 칩거하면서 재판을 준비한다. 유민호는 자신의 고문 변호사를 통해 유.무죄를 다투는 재판에선 한 번도 져본 적 없는 승률 100% 변호사 양신애(김윤진)를 소개 받는다. 산속 별장으로 직접 찾아온 양신애. 그는 유민호의 무죄를 끌어 내기 위해선 김세희 변사 사건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요구한다. 그 어떤 것도 숨김 없이 자신에게 밝혀야 한다 요구한다. 그런 양신애의 요구에 세희와의 불륜부터 사건 당일 기억까지 모든 것을 가감 없이 밝히는 유민호다. 두 사람은 눈 덮인 한 겨울 산속 별장에서 하나의 사건을 두고 기억과 주장을 맞춰 나가며 거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분명한 것은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거짓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반대로 두 사람 모두 거짓일 수도 있고, 예상 밖으로 두 사람 모두 진실을 말하는 걸 수도 있다.
영화 '자백'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기억의 퍼즐 그리고 그 퍼즐을 통한 주장의 핵심을 끼워 맞춰 나가면서 드러나게 되는 또 다른 사건 그리고 그 사건이 물고 온 진짜 진실.
‘자백’은 오리지널 국내 창작 영화는 아니다. 국내에서도 개봉한 스페인 영화 ‘인비저블 게스트’가 원작이다. 원작이 마지막 한 방을 위해 촘촘히 쌓여가는 얘기를 한다면, ‘자백’은 그 반대다. 반전이 존재하지만 반전을 위한 얘기를 하지 않는다. 반전까지 이어가는 과정 그리고 반전 이후 시퀀스의 마지막 엔딩. 그 한 장면의 존재감을 위한 영화다.
영화 '자백'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결과적으로 과정을 위한 전개의 영화이다 보니 전통적 ‘기승전결’ 구조보단 각각의 단편 조각이 맞물린 스타일에 더 가깝다. 극중 3명의 주요 인물. 즉 유민호 김세희 양신애. ‘자백’은 유민호와 양신애의 대화를 통해 사건을 역으로 추론한다. 그래서 총 네 개의 얘기가 등장한다. 유민호가 말하는 사건, 죽은 김세희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건의 흐름, 그리고 양신애가 유추하는 사건 전말.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말해야 하는 진짜 진실.
영화 '자백'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이 같은 구성의 극적 긴장을 위해 ‘자백’은 연극과 영화의 중간 어디쯤 존재하는 듯한 색다른 ‘톤 앤 매너’를 선보인다.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던 ‘자백’은 무대 위 두 사람이 던지고 받는 말의 결투를 통해 조성된 긴장감을 바탕으로 유추된 사건 진실을 그려나가고 맞춰가며 실체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이 영화를 관람하고 본다는 개념에서 ‘읽는다’는 느낌으로 전환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유민호와 양신애가 주고 받는 기억과 주장의 충돌이 보는 것에서 읽는 것으로 넘어가게 하는 궁극적 힘의 실체다.
‘자백’을 ‘보는 게’ 아닌 ‘읽는 것’으로 느끼고, 그에 따른 얘기 흐름의 마지막까지 이끌려 이르게 되면 관객이 느낄 지적 만족감은 기대 이상을 넘어선다.
영화 '자백'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자백’의 유일한 오점은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도 촘촘하게 얽힌 컷과 컷의 연결이다. ‘초 단위’ 컷의 의미가 그 자체로 ‘자백’을 구성하는 ‘얘기’의 기본 단위이자 ‘미장센’이다. 단 한 컷이라도 놓칠 경우 ‘자백’의 흐름을 따라가기는 쉽지 않다. 또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관람, 즉 ‘읽음’의 포커스를 어떤 캐릭터에 맞추고 집중 하느냐에 따라 ‘자백’의 결은 완벽하게 탈바꿈한다.
영화 '자백'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결론적으로 ‘자백’의 흐름은 ‘관람’이 아닌 ‘읽음’에 가깝고, 그 과정은 무대극 흐름에 더 적확한 스타일을 보이며 지적 만족감의 충족을 온전히 채워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장르적 클래식의 장점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자백’은 한 번의 관람으로는 그 맛의 읽음을 결코 제대로 느낄 수 없다. 곱씹어 음미해야 할 클래식, 그게 ‘자백’이다. 오는 26일 개봉.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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