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불행한 누군가에게 행복을 가르쳐 주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나보다 더 불행한 누군가의 삶을 바라보게 해 지금 내가 처한 삶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일깨워 주면 된다. 하지만 이건 반대로 이런 의미이기도 하다. 불행과 행복의 차이, 그걸 설명하는 가장 좋은 단적인 예. 즉, 바라보는 시선과 그 시선이 만들어 주는 태도에 따라 불행과 행복은 한 끗 차이란 점을 증명하는 것. 다시 말해 우린 불행을 직면하고 도피하면서 행복을 위한 것이라 스스로에게 보이지 않는 폭력을 가하는 자기 학대의 폭력을 고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반대로 스스로가 행복하다 믿고 있으면서 불행을 대면할 용기를 외면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고속도로 가족’은 대면할 용기와 외면하는 폭력에 대한 시선이다. 우린 이 가족을 통해 외면 받을 자유와 그 자유가 대면할 현실의 존재를 되새김질 해 볼 기회를 갖게 된다. 우리 모두가 어쩌면 대면하지 못하고 외면하는 찰나의 연속 안에서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한 가족이 있다. 큰 딸과 작은 아들. 큰 딸은 겨우 7~8세 정도. 작은 아들은 4세. 둘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산다. 두 아이 아빠 기우(정일우)는 낮이 되면 고속도로 휴게소에 나타난다. 추레한 차림새다. 하지만 나름 꾸몄다는 이상한 옷차림이다.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지갑을 읽어버렸다. 2만원만 빌려달라’ 부탁 중이다. 누가 봐도 한심해 보인다. 누가 봐도 거짓말이다. 그 거짓말이 드러날 때쯤. 큰 딸과 작은 아들이 함께 손을 붙잡고 불쌍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아빠 배고파’ ‘아빠 집에 언제가’. 어린 두 아이들 표정과 호소 한 마디에 지갑을 안 열고는 못 배길 어른들이다. 기우는 온 세상을 얻은 것처럼 1만원짜리 두 장을 손에 들고 아이들과 사라진다. 다음 장면에선 임신한 아내 지숙(김슬기)까지. 네 가족이 모두 휴게소에서 소박한 만찬을 즐긴다. 기우는 식탁에 무심한 듯 오천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두 장 그리고 동전 몇 개를 던진다. 지숙은 낡은 가디건 주머니에서 헝겊 동전 지갑을 꺼내 소중하게 이 돈을 받아 넣는다. 이들 가족 하루 수입이다. 기우와 지숙 그리고 두 사람의 큰 딸과 작은 아들. 이들 네 가족의 삶이다.
영화 '고속도로 가족' 스틸. 사진=CJ CGV(주)
그러던 어느 날이다. 영선(라미란)은 출근길 매일 드나들던 휴게소에서 기우를 만난다. 기우는 언제나처럼 ‘지갑을 잃어버렸다’ ‘2만원만 빌려주면 계좌 이체를 해주겠다’ 부탁한다. 역시 무시하고 돌아서던 찰나, 큰 딸과 작은 아들이 여지 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측은지심에 지갑을 열어 1만원짜리 두 장을 건넨다. 돌아서던 영선은 다시 이들 가족을 부른다. 지갑에서 5만원짜리 한 장을 더 건넨다. 기우는 웬일인지 자존심을 부리며 사양한다. 하지만 영선의 눈에 두 아이들이 자꾸만 밟힌다. 억지로 건 낸 도합 7만원. 오늘 기우 가족은 횡재를 했다.
영화 '고속도로 가족' 스틸. 사진=CJ CGV(주)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다. 휴게소 무단 캠핑과 취식이다. 불법 숙식으로 기우의 텐트는 철거된다. 이들 가족은 지도를 펼치고 다음 휴게소를 찾는다. 이곳이 아니면 저곳에서 먹고 자면 된다. 기우 가족은 익숙한 듯하다. 하지만 기우 가족을 제외한 세상 모두의 시선에 이들 가족 삶은 위태로워 보인다. 하지만 기우 가족은 행복하다. 행복하다 믿는 건지 진짜 행복한 건지. 그건 잘 모르겠다. 부족한 것 없이 그때 그때 얻고 먹고 자고. 길 위에서 한 치 앞도 모른 채 그들은 생활한다.
영화 '고속도로 가족' 스틸. 사진=CJ CGV(주)
그런 기우의 삶은 영선에게 우연히 다시 띈다. 가만 보니 기우가 아이들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돈을 얻고 있는 듯했다. 영선은 즉각 경찰에 신고한다. 영선 뿐만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비슷한 신고가 쇄도 했단다. 기우는 경찰 수사를 통해 즉각 체포됐다. 그리고 경찰 조사에서 드러난 사실 하나. 기우가 과거 큰 사기 사건에 연루된 ‘전과자’였단 점. 기우는 과거 사건이 언급되자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무릎을 꿇고 자신의 잘못을 빌고 또 빈다. 이상하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기우. 뭔가 비밀이 있어 보인다. 영선은 기우를 제외한 지숙과 그의 두 아이를 이끌고 자신의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또 다시 드러나는 비밀이다. 영선이 이들 가족을 외면하지 못했던 이유. 그게 드러난다.
영화 '고속도로 가족' 스틸. 사진=CJ CGV(주)
‘고속도로 가족’은 제목 그대로 ‘고속도로’에서 살아가는 가족에 대한 얘기다. 그런데 우리가 눈으로 보는 기우 가족만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고속도로, 즉 거리의 가족 그리고 거리 밖에 존재하는 또 다른 가족. 바로 영선의 가족도 포함된다. 전혀 다른 이 두 가족이 거리를 통해 이어진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머물 수 없는 거리 위 상실이란 공통점 때문이다. 기우와 그의 가족은 삶 자체를 상실한 가족이다. 그들은 세상 편견과 외면을 통해 대면할 용기를 상실한 채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단 착각 속에서 단절을 선택했다. 스스로가 세상과 단절을 택했다. 고속도로 위 휴게소는 머물지 못하는 공간이다. 그 공간 속에서 머물러 있는 유일한 기우의 가족은 그래서 대면하지 못하는 외면의 상징처럼 외롭고 또 위태롭다.
영화 '고속도로 가족' 스틸. 사진=CJ CGV(주)
그들의 외롭고 위태로운 삶은 영선의 눈에 오롯이 비춰졌다. 영선 역시 비슷했다. 영선은 아들을 잃었다. 영원히 머물러 있을 것 같던 아들이었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읽은 아들 빈자리는 컸다. 그의 눈에 세상을 잃은 기우의 가족은 스스로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렇게 영선과 기우 가족은 하나가 돼가고 또 그렇게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간다.
영화 '고속도로 가족' 스틸. 사진=CJ CGV(주)
하지만 이 영화가 바라보는 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면할 용기와 외면의 폭력이다. 영선은 대면할 용기를 얻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우의 가족을 통해 그 용기를 얻었다. 하지만 기우는 외면의 폭력 속에서 더욱 더 큰 상처를 입어간다. 더 큰 안타까움은 그 외면의 선택이 스스로에게 내린 결정이란 점이다. 대면할 용기를 얻지 못하니 기우는 더욱 더 침잠하는 어둠처럼 끝도 없이 추락하는 것을 택할 뿐이다.
그래서 ‘고속도로 가족’은 외면을 폭력과 자유란 두 얼굴로 규정한 채, 그 주변에 자리한 우리 관객 모두에게 질문을 던진다. 대면할 용기가 없다면 외면의 얼굴에서 당신은 자유를 볼 것인지 폭력을 당할 것인지.
영화 '고속도로 가족' 스틸. 사진=CJ CGV(주)
결국 영화의 선택은 크게 두 가지였다. 즉 열린 결말이다. 영화 스스로가 답을 제시 하진 않는다. 그건 관객에게도 영화 속 두 가족에게도 예의가 아니다. 그저 질문했다. 대면할 용기 그리고 외면 받을 자유와 폭력. 그 중간에 서 있는 우리들. 어쩌면 그 곳에서 우리가 보지 못한 무엇일 있을까 싶다. 그걸 찾을 수 있게, 함께 손잡고 나아가자는. 그 부탁 말이다. 11월 2일 개봉.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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