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영웅’, 이 단어에 담긴 뜻은 깊다. 우선 요즘 시대를 아우르는 1020세대에게 할리우드 영화 속 히어로를 떠올리게 한다. 이 세대를 희화화하는 것이 아닌 세대별 이 단어에 대한 소화의 깊이를 전하는 것이라면 충분히 납득될 수 있다. 가장 최근으로 시간대를 끌어와 표현하면 카타르 월드컵 축구국가대표팀을 이렇게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네 역사로 이 단어의 의미를 확장시켜 보자. 한반도 역사에서 이 단어와 가장 어울리는 인물을 꼽자면 단연코 이순신 장군이 떠오른다. 그의 활약상을 담은 ‘명량’은 앞으로도 깨지기 힘든 흥행 기록(1761만)으로 그 단어의 명확성을 대변한다. 그럼 좀 더 역사의 시간을 현대로 끌어와 본다. 아마도 이 단어에 어울리는 것에 부인하기 힘든 인물, 단 한 사람이 떠오른다.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 3번의 총성이 울렸다. 그리고 한 사내가 외쳤다. “코레아 우라!”. 이 사내의 이름은 안중근. 그는 대한제국 의병참모중장 자격으로 총을 쐈다. 그가 쏜 총탄은 일본의 초대 내각총리대신이자 초대 조선 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과 흉복부를 관통했다. 이토는 이후 사망했다. 이토는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원흉이다. 이 과정은 분명한 우리의 역사이며, 국내 창작 뮤지컬 ‘영웅’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리고 국내 상업 영화 시장에서 최초로 쌍천만 타이틀을 거머쥔 ‘흥행 귀재’ 윤제균 감독이 스크린으로 옮겼다. 1909년 10월 26일,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었던 한민족의 ‘영웅’ 안중근은 113년 뒤인 2022년 대한민국 스크린에서 그렇게 다시 되살아났다.

안중근 의사를 상징하는 ‘왼손 무명지(약지) 단지 손도장’. ‘영웅’은 시작과 함께 안중근 의사와 독립군 동료들이 눈보라가 휘날리는 벌판에서 ‘단지’(손가락을 자르는) 동맹을 하는 결의 장면부터 시작한다. ‘영웅’이 어떻게 그리고 왜 이렇게 흘러가는지를 보여주고 예고하고 시작하는 ‘알림’이다. 새하얀 눈 쌓인 벌판 위 펼쳐진 그 시절 태극기 위해 이들은 자신들의 피를 모아 붓으로 ‘대한독립’을 쓰며 결의를 다진다. 그들이 ‘단지’로 결의한 맹세는 대한제국 식민 병합 원흉이자 일본 제국주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 이토 히로부미 제거다. 당시 일본 제국주의는 대한민국은 물론 동아시아 전체를 뒤흔드는 ‘위험’ 그 자체였다. 후에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서 쓴 ‘동양평화론’ 기초와 뼈대가 되는 내용이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반대와 이를 인지한 것에 대한 밑바탕이다. ‘영웅’의 이 같은 상징적 시작 이후 흐름은 안 의사가 고향을 떠나 독립군에 합류해 하얼빈 의거를 결의하고 이후 사형장에서 서거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영화 '영웅' 스틸. 사진=CJ ENM
‘영웅’은 안중근 의사의 얘기다. 하지만 결단코 안 의사 한 사람의 얘기로 볼 수도 없다. 동명의 창작 뮤지컬이 바탕인 영화이지만 실제 역사 속 인물들과 가상의 인물들이 함께 한다. 극중 김고은이 연기한 ‘설희’는 ‘영웅’의 극적 상황과 긴장감을 위해 탄생된 배역이다. 대한제국 명성황후의 궁녀였다는 설정으로 등장, 이후 이토 히로부미의 애첩으로 침투한 독립군 정보원으로 설정돼 있다. 또한 역사 속 실존 인물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 등도 등장한다. 여기에 배우 조우진 박진주가 연기한 ‘남매 캐릭터’ 역시 창작된 인물이다. ‘영웅’은 이들 모두의 활약을 아우르면서 이들의 존재가 우리 역사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상징하는 ‘영웅’이었음을 의미한다. 역사에 기록돼 있든 그렇지 않든. 그 시절 그들의 삶은 그 자체로 ‘영웅’이었음을.
영화 '영웅' 스틸. 사진=CJ ENM
그들은 각자의 자리 각자의 위치에서 ‘엄혹’했던 그 시절, 자신이 할 수 있고 또 해야하는 일을 통해 조선의 독립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긴박하면서도 긴장되고 긴장되면서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일본 제국주의와 대한 독립군이 펼치는 추격전은 ‘영웅’ 속에서 공간과 동적 움직임을 활용해 재미를 느끼게 하는 영화적 장치로서 상당히 주목된다.
영화 '영웅' 스틸. 사진=CJ ENM
‘영웅’의 하이라이트 하얼빈 의거 장면은 실제 역사 속 팩트를 거의 그대로 가져온 상황으로 현실감을 살려냈다. 안중근 의사와 함께 당시 의거를 준비했던 우덕순 조도선은 이토 히로부미의 얼굴을 몰랐다 한다. 이를 위해 영화에선 김고은이 연기한 ‘설희’가 명확한 역할을 하면서 ‘하얼빈 의거’ 맥락의 얼개를 이어주게 된다.
영화 '영웅' 스틸. 사진=CJ ENM
‘영웅’은 처음부터 끝까지 역사적 사실을 거의 그대로 담아낸 장면의 연속이기에 영화적 스포일러가 큰 의미는 없다. 결국 ‘영웅’을 주목해볼만한 포인트는 국내 상업 영화 시장에서 보기 드문 뮤지컬 장르를 택한 점이다. 또한 이 장르를 윤제균 감독이 연출한 것 역시 주목해 볼만하다. 국내 상업 영화 시장에선 흥행 검증 안된 ‘뮤지컬’ 장르가 반대로 흥행의 상징과도 같은 윤제균 감독의 손에 어떤 방식으로 그려지게 됐는지 지켜봐야 할 이유가 분명해졌다.
영화 '영웅' 스틸. 사진=CJ ENM
일단 극중 노래 장면은 동명 뮤지컬을 본 관객이라면 생경할 수는 있다. 무대 위 터지는 배우들의 폭발적 성량이 영화에선 스크린이란 필터를 통해 ‘필터링’ 이후 톤 다운된 느낌이다. 때문에 감동의 결은 분명 다르게 느껴질 듯하다. 영화 러닝타임 동안 흐르는 ‘영웅’의 상징적 곡들은 분명 귀를 즐겁게 한다. 첫 오프닝에서 흐르는 ‘단지 동맹’ 장면의 노래, 그리고 김고은이 연기한 설희가 애절하게 부르는 곡들, 무엇보다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 이후 재판 과정에서 터져 나오는 ‘누가 죄인인가’는 가슴이 뜨거워지다 못해 울분이 터져 나오게 만든다. 안 의사를 연기한 배우 정성화가 실제 촬영에서 가장 힘들어 한 사형 장면 촬영 가운데 부르는 ‘장부가’는 안 의사 심중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하는 지점으로서 반드시 주목해야 한다.
영화 '영웅' 스틸. 사진=CJ ENM
사실 ‘영웅’이 말하는 진짜 ‘영웅’은 안중근 의사 그 자체를 길러내고 그의 심지를 올곧게 만들어 준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일지 모른다. 극중 배우 나문희가 연기한 조 마리아 여사는 사형 선고를 받고 옥중 수감된 아들에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죽으라’는 편지를 보낸다. 극중 나문희가 흐느끼며 부르는 노래가 실제 조 마리아 여사 삶의 곡절처럼 다가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고 또 그래서 모두의 눈물샘을 터트리게 하는 ‘영웅’ 속 최고 명장면으로서 존재해야 마땅해 보인다.
영화 '영웅' 스틸. 사진=CJ ENM
‘영웅’은 안중근 의사, 그의 일대기 가운데 가장 뜨거웠던 삶을 담아냈다. 이 영화가 담아낸 의사 안중근은 영웅이다. 하지만 극중 안중근은, 그리고 실제 역사 속 안중근은 그 시절을 살아낸 모두가 영웅이라 말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영웅이라 말하고 있다. 영웅의 울림, 어쩌면 이 시대가 필요한 가장 순수한 진정성일지 모른다. 오는 21일 개봉.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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