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우선 굉장히 ‘웃긴’ 분, 맞습니다. 꽤 오래전 방송가 예능 작가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참고로 8090세대라면 ‘어디선가 봤던 얼굴인데’라는 느낌, 분명히 있을 겁니다. 과거 TV 예능 프로그램에 꽤 얼굴을 자주 비췄었으니까요. 요즘에는 과거 보다 좀 더 많이 출연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 때문에 ‘요즘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라고 말하기엔 그가 너무 유명하긴 합니다. 그리고 본인도 유명하지만 그의 와이프, 즉 아내가 더 유명해서 ‘OOO의 남편’으로 더 유명하기도 합니다. 당연히 과거에는 아내보다 그가 더 유명 했었습니다. 팩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역전됐습니다. 부부사이이지만 사실 남자로서 자존심도 좀 상할 법도 한데, 그는 너털 웃음입니다. 아마 이 얘기를 하면 그가 누군지 단 번에 아실 듯합니다. 그는 자신을 표현하는 데 ‘신이 내린 팔자’라고 부르며 행복한 웃음을 짓습니다. 요즘에는 ‘눈물 자국 없는 말티즈’라며 자신의 기꺼이 희화화의 대상으로 낮추는 것에 거리낌이 없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의 가벼운 듯한 언행도 그저 예능 이었을 뿐, 실제 프로의 현장에선 전혀 달랐다는 것에 놀랍기 그지 없었습니다. 영화 ‘리바운드’에 출연한 배우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를 존경하고 또 따르는 듯한 말을 쏟아냈습니다. 이쯤 되면 누군지 굳이 설명 안해도 될 듯합니다. 바로 ‘김은희의 남편’ 장항준 감독입니다. 그는 지난 5일 개봉한 영화 ‘리바운드’를 연출했습니다.
장항준 감독. 사진=미디어랩시소
‘리바운드’는 실화입니다. 2012년 고교 농구 전국대회에 출전한 부산 중앙고 선수들의 실화를 담아냈습니다. 실화를 모티브로 한 얘기가 아닙니다. 당시 중앙고 선수들 그리고 중앙고 선수들을 지도한 코치 실명이 고스란히 영화 속 캐릭터 이름으로 사용됐습니다. 영화 마지막에는 극중 배우들과 실제 인물들이 하나씩 교차 편집되면서 사실감을 전했습니다. 이 얘기, 완벽하게 실제 했던 얘기라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는 선언처럼 들렸습니다.
“사실 그게 제일 고민이었고, 반대로 그게 우리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고 출발한 영화에요. 실제 얘기는 들어보면 들어볼수록 더 영화 같았어요. 우리도 처음 듣고 나선 ‘너무 나간 거 아냐? 너무 작위적이다’고 웃었는데 그게 다 실화였다고 하니 너무 놀랐죠. 전 5년 전에 권성휘 작가가 쓴 시나리오를 받았고, 그걸 아내인 김은희 작가가 각색을 했어요. 실제 얘기를 인터넷 기사를 통해 본 뒤 피가 끓었죠. 이게 해보자 싶었어요.”
영화 '리바운드' 스틸. 사진=(주)바른손이앤에이
사실 장항준 감독은 이 얘기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답니다. 하지만 이 얘기가 실화 였었단 걸 알게 된 순간부터 묘한 끌림이 생겼다고. 특히 아내인 김은희 작가가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본 뒤 적극 추천을 했었답니다. 무엇보다 아빠의 일에 큰 관심을 두지 않던 딸의 조언이 마음을 때렸답니다. 평소 엄마나 아빠의 일에 이러다 할 대꾸를 하지 않던 딸이 이 영화 시나리오를 본 뒤 특별하게 한 말이 기억에 꼭 남았다네요.
“도대체 이 사람들은 뭔 생각으로 이렇게 농구에 미쳐 있었을까. 그게 궁금해 지기 시작 했었어요. 아직 연출을 할지 말지 결정은 안하고 있었는데 김은희 작가가 ‘오빠가 이거 해라’라고 권유를 하더라고요. ‘김은희가? 오호라’라고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죠(웃음). 근데 가장 결정적인 건 딸의 조언이었어요. ‘아빠, 이거 꼭 해라. 아빠가 안해도 난 이 영화, 누군가 꼭 만들어 줬으면 싶다’라는 말을 듣는데. 뭔가 뭉클하더라고요. ‘아빠가 할거야’라고 딱 선언했죠. 하하하.”
영화 '리바운드' 스틸. 사진=(주)바른손이앤에이
사실 ‘리바운드’, 제작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었던 영화입니다. 2012년 실제 얘기가 있었던 직후부터 영화화를 기획했지만 무려 11년이나 지난 2023년 영화관에 상영된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선 스포츠 영화, 국내 상업 영화 시장에선 크게 환영 받는 장르가 아닙니다. 그리고 배우들, 이른바 흥행 보증 수표라 불릴 만한 배우들이 없습니다. 전부 고교생이 실제 모델이기에 3040세대 배우들이 캐스팅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장항준 감독,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올 수 있게 큰 힘을 보태 준 넥슨 그리고 공교롭게도 배우 하정우의 이름을 거론했습니다.
“넥슨은 정말 감사한 회사에요. 일단 하정우씨가 저희 영화 공동제작사 대표의 친형이에요. 하정우씨가 이 시나리오를 그렇게 좋아해서 넥슨 쪽에 소개를 해볼까 싶다고 하셨다고. 당시 넥슨이 영화 사업을 준비 중이었는데 이 영화 시나리오를 보고 선택해 주신거죠. 당시 창립작 후보만 20여편이었는데 저희 작품을 선택하셨대요. 넥슨 쪽에서 저한테 ‘이걸로 돈 벌 생각 없다.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작품이었으면 한다’라고 하셔서 진짜 눈물 날 뻔 했어요. 넥슨은 이 영화가 제작될 때까지 ‘지원은 하되 간섭은 없다’를 몸소 실천하셨어요. 진짜 전폭적인 지원을 다 받았습니다.”
장항준 감독. 사진=미디어랩시소
넥슨의 전폭적인 지원 중 하나, 바로 예고편에도 등장하는 OST곡 ‘We Are Young’. 미국 밴드의 이 곡은 ‘리바운드’ 예고편에 등장해 찰떡 궁합을 자랑했습니다. 극중 중앙고 5인방 그리고 그들을 가르치는 강양현 코치를 연기한 배우 안재홍, 이들의 도전과 노력 그리고 그들이 흘린 땀을 의미하는 영화 전체의 흐름과 제대로 맞아 떨어지며 관객들의 가슴을 들끓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합니다.
“저도 그 곡이 참 마음에 들었어요. 우선 저희 현장 편집기사가 촬영이 끝나면 바로바로 편집을 했는데, 후반부를 찍을 때 어떤 음악을 쓸까 하다가 그 곡을 깔아 본 거에요. 너무 잘 맞더라고요. 그런데 문제는 너~무 곡 사용료가 비쌌어요(웃음). 그냥 깔끔하게 포기하게 되는 수준이었어요. 근데 그때 편집본을 보신 넥슨 쪽에서 ‘그 곡 사주겠다’고 연락을 주셨어요. 깜짝 놀랐죠. 그 곡의 분위기 그리고 가사까지 너무 잘 맞아 떨어져서 진짜 마음에 들었는데 넥슨의 지원에 다시 한 번 놀랐고 감사했죠.”
영화 '리바운드' 스틸. 사진=(주)바른손이앤에이
‘리바운드’, 농구 영화입니다. 영화 중반 이후부턴 실화에서 등장한 부산 중앙고의 전국대회 출전 경기가 펼쳐집니다. 중반이후부턴 사실상 농구 경기가 이 영화의 전부입니다. 영화관에서 직접 ‘리바운드’를 보고 있으면 실제 농구 경기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박진감이 넘칩니다. 장항준 감독은 이를 위해 특별하게 고안한 방식과 방법이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장 감독에게 직접 전해 들은 ‘리바운드’의 박진감 넘치는 경기 장면의 비밀입니다.
“당연히 경기의 박진감을 구현해야 하는데 배우들은 실제 선수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연습했죠. 무지하게 했어요. 그래도 자세 안 나와요. 농구는 자세가 나오는 데 1년 이상이 걸려요. 그래서 각각의 합을 만들어 냈어요. ‘이번엔 18번’ 이러면 ‘용산고와의 경기 후반 25분에 나온 내용’ 등으로 딱딱 나오게 만들어 버렸죠. 사실 다들 농구 경기 장면에 큰 기대를 안했대요. 근데 더 오기가 나서 진짜 잘 하고 싶었죠. 현장에선 진짜 촬영 감독님과 정말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만들어 냈어요. 농구 경기를 보시면 그렇다고 컷과 컷으로 나눠 찍어 연결한 것도 없어요. 우리만의 진짜 경기를 담아 보자 합심한 결과물입니다.”
장항준 감독. 사진=미디어랩시소
장항준 감독, 몇 년 동안 함께 했던 ‘리바운드’를 이제 떠나 보내야 합니다. 워낙 속에 담고 있는 얘기가 너무 많은 연출자라 그걸 풀어내면서 사는 데 힘을 얻는 스타일입니다. 빠르게 차기작을 준비할 듯 합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 김은희 작가의 히트작 ‘킹덤’ 시리즈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습니다. 장 감독은 자신의 신작 그리고 김은희 작가의 ‘킹덤’ 준비 과정을 전격 공개했습니다.
“‘리바운드’도 다른 걸 준비하다가 그게 엎어지면서 대타로 제가 들어가서 만들게 된 작품이에요. 뭘 준비한다고 말씀 드리기도 뭐하고(웃음). 말씀 드릴 수 있는 건 제가 꾸준히 한 장르를 못해요. 다음 작품은 전혀 다른 엑소시즘에 대한 얘기가 될 듯해요. 그리고 김은희 작가의 ‘킹덤’, 대충 전체 그림을 다 짜 놓은 상태에요. 이제 쓰기만 하면 될 거에요. 기대하셔도 됩니다(웃음).”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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