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도대체 어떻게 설명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이상합니다’가 가장 적절할 듯합니다. 하지만 이 문장도 충분치 않습니다. ‘기괴합니다’가 더 어울릴지 모를 듯합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보입니다. 그럼 ‘괴상망측하다’는 또 어떨까. 사실 어떤 평가와 어떤 수식을 가져다 댄다 해도 이 영화를 설명하기에는 충분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민하고 또 생각해 보면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 ‘미쳤거나’ 또는 ‘천재이거나’. 그리고 이 감독이 만든 이 영화. 되는대로 막 만든 결과물이거나, 아니면 고도의 계산이 깔린 가장 치밀한 설계의 완성이거나. 어디가 됐든 어떤 고민의 결론에 도달하게 됐든. 이 영화를 설명하는 표현과 방식 그리고 문장의 구성은 분명 ‘모자라’게 판단되기만 합니다. 앞선 설명의 주인공인 이원석 감독의 신작 ‘킬링 로맨스’를 본다면, 이 글 첫 문장에서부터 숨쉬고 있는 수식의 판단이 전부 모자라도 한 참 부족하단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밖에 없으실 겁니다. 그럼 답은 하나입니다. ‘킬링 로맨스’,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결과물입니다. 봐야 알 수 있고, 경험해 봐야 알 수 있습니다.
‘킬링 로맨스’, B급이란 단어가 현재까지 나온 이 영화 장르의 이름이지만 그것도 모자라 보입니다. 눈으로 경험한 이 영화 장르, 실질적으로 Z급 즉 끝판왕에 가깝습니다. 전체 설계는 만화 같지만 구체적 설계는 황당함을 넘어 ‘상상의 한계가 없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있는 힘껏 확장의 나래를 펼칩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꽐라’란 이름의 섬나라에 사는 환경운동가이자 재벌 ‘조나단’(이선균)과 ‘발 연기의 대가’로 불리는 여배우 황여래(이하늬). 두 사람은 운명적 만남 이후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됩니다. 여래는 대중의 비난과 조롱에 환멸을 느끼고 모든 것을 버린 채 조나단의 왕국에서 사는 것을 선택합니다.
영화 '킬링 로맨스'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그리고 7년이 흘렀습니다. 여래는 조나단의 사업차 한국에 오게 됩니다. 대중의 불편한 관심에 환멸을 느끼던 여래였습니다. 하지만 여래에게 7년은 그 환멸보다 더 지옥이었습니다. 운명적 사랑이라고 느꼈던 조나단에게 여래는 ‘예쁜 인형’이었습니다. 심지어 여래는 먹고 싶은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며 지냈습니다. ‘당신은 49kg일 때 가장 완벽하다’는 조나단의 대사가 이들의 관계를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문장입니다. 여래는 조나단의 인형이자 애완 동물이었습니다.
영화 '킬링 로맨스'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그런 여래가 도망칠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7년 만에 한국에 방문한 여래에게 오랜만에 영화 출연 제안이 옵니다. 잠자고 있던 배우 본능이 발동합니다. 조심스럽게 나단에게 복귀 의사를 밝힙니다. 하지만 당연하게 나단은 여래의 복귀를 반대합니다. 꿈을 꺾어 버립니다. 여래는 반항해 봅니다. 나단은 폭력과 놀이의 중간에 머물고 있는 무엇으로 여래를 조련(?)합니다.
영화 '킬링 로맨스'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모든 것이 좌절된 여래, 그런데 기회가 찾아 옵니다. 한동안 한국에 머물던 여래의 집 바로 옆집에 뜻밖의 인물이 살고 있습니다. 여래의 오랜 팬이자 그의 팬클럽 초창기 멤버인 대입 사수생 범우(공명). 여래는 범우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함께 나단을 죽이기로. ‘자신만의 여신’ 여래가 고통 속에 사는 것을 알게 된 범우는 그 도움의 손길을 잡습니다. 이제 두 사람의 ‘로맨스’는 상상이 아닌 ‘킬링’이 됩니다. 여래는 남편 나단을, 범우는 여래의 남편 나단을. 그리고 나단은 아내 여래의 꿈을. 각자의 킬링은 그렇게 로맨스처럼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영화 '킬링 로맨스'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텍스트로 읽어가는 ‘킬링 로맨스’ 그리고 시각적 결과물로 읽어가는 ‘킬링 로맨스’는 전혀 다른 ‘킬링 로맨스’입니다. 일단 앞서 언급한 텍스트 ‘킬링 로맨스’의 장르적 아우라는 기존 B급 장르에 가깝게 포장돼 있습니다. 가상의 섬 ‘꽐라’, 그리고 이 섬에서 사용되는 ‘꽐라어’, 남자 주인공 이름 ‘조나단’ 그리고 조나단의 주변 설정 등 모든 게 ‘만화’적입니다. 사실 문장과 글로 이 영화의 B급 정서와 만화적 상상력을 표현하는 것 자체가 ‘우화’입니다. 107분의 러닝타임 동안 단 한 차례의 ‘봤음직한’ 장면도, 기존 장르를 떠올리게 하는 표현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컷 단위로 이어지는 상상력의 경계 파괴는 머리를 어지럽게 할 정도로 ‘그 이상’을 보여 줍니다. 더 놀라운 점은 이 모든 게 컷 단위로 분활 돼 조합시킨 결과물이지만 너무도 매끄럽게 이어지고 있단 점입니다. 다시 말해 연출을 맡은 이원석 감독이 자신만의 장기를 제대로 살리려 무분별하게 마구잡이식으로 만들어 낸 장면의 연속이 아니란 점입니다. 개연성과 인과성을 따지기 보단 장면과 스토리의 흐름에서 괴이할 정도로 맞아 떨어지게 구성해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기상천외함은 힘을 바짝 주고 유지합니다. 인도 발리우드의 황당 코미디도 ‘킬링 로맨스’에겐 한 수 접고 가야 할 장면들이 꽤 많이 등장합니다. ‘킬링 로맨스’가 담고 있는 상상력 파괴의 한 토막을 공개하자면 타조가 날라 다닙니다. 진짜입니다.
영화 '킬링 로맨스'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이렇게 설명된 것은 ‘킬링 로맨스’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이 안에서 숨쉬는 배우들의 존재감은 더 설명되기 힘들 정도로 독창적입니다. 일단 망가집니다. 이선균과 이하늬, 지금까지 봐왔던 모습이 절대 아닙니다. ‘새롭다’란 단어로는 분명 부족합니다. 두 사람은 ‘킬링 로맨스’의 색깔을 드러내기 위해 가장 효과적 방식이 무언지를 고민한 듯 합니다. 조나단은 코믹과 스릴러의 경계에선 줄타기를 기가 막히게 한 듯한 느낌입니다. 일단 코미디가 이 영화 메인 코드입니다. 웃겨야 하고 황당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 정서는 할리우드 장르물에 더 어울리는 전 방위적 폭력의 감정이 뒤섞여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감정이 이질적이지 않게 녹아 있습니다. 이선균의 내공 그리고 이원석 감독의 색채가 ‘폭력적’이란 부정적 감정을 ‘킬링 로맨스’ 안에서 순화 시켜 버린 듯합니다. 이하늬의 코미디는 이미 정평이 나 있지만 ‘킬링 로맨스’에서 선보인 코미디는 코미디의 결이 수백 수천 수만 가지로 분화될 수 있단 걸 증명해 냈습니다.
영화 '킬링 로맨스'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사실 이 영화를 ‘병맛’ 또는 B급 장르로만 치부하기엔 그 경계의 선이 너무도 광범위해 어디까지 폭을 넓혀 내용적 그리고 연출의 포인트를 짚어 설명해 내야 할지도 고민하게 만듭니다. 연출을 맡은 이원석 감독은 충무로에서 가장 자기 색채가 뚜렷한 연출자 입니다. 그 색깔이 ‘킬링 로맨스’에선 스스로의 관리의 틀을 벗어난 채 활개를 칩니다. 그렇다고 무 분별해 보이진 않습니다. 관리의 틀을 벗어난 연출의 날뜀이 이 정도로 날 것 그대로 담긴 결과물임에도 불구하고 107분의 러닝타임이 하나부터 열까지 기상천외할 정도로 연결성을 갖고 흘러가는 것을 볼 때 한국 영화에서 장르적 분화의 틀 안에 ‘이원석’이란 새로운 이름표가 등장할 것 같단 확신은 분명해 집니다.
영화 '킬링 로맨스'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무엇보다 이 영화, 한국 상업영화가 갖고 있는 이른바 ‘강박적 틀’을 깼 단 것만으로도 존재의 가치는 ‘충분하다 그 이상’이라 평가해도 부족함은 없을 듯합니다. 덧붙이자면 ‘킬링 로맨스’, 전무후무할 정도로 새롭습니다. 그건 분명 보장합니다. 오는 14일 개봉.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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