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사실 모르는 분들이 더 많습니다. 이 배우가 코미디를 정말 잘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한다는 사실을. 코미디를 잘한다는 사실이 비밀일 수도 없고, 숨길 일도 아닌데 말입니다. 이 배우가 스스로가 그걸 숨긴 것도 아니고, 반대로 그걸 드러낸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걸 우리가 잘 모르고,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건 아마도 이것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배우, 여배우 입니다. 그리고 이 배우, 미스코리아 출신입니다. ‘미스코리아’란 타이틀, 이 여배우의 선입견을 만들어 버리는 아이러니입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이 여배우의 코미디 연기가 갖는 순도와 타격감은 더 높고 강하게 다가오는 듯합니다. 그걸 이원석 감독과 이 감독이 만드는 신작 영화의 제작사 대표는 제대로 간파하고 있었던 했습니다. 이 감독의 신작 영화 속 여주인공 0순위를 ‘이 여배우’로 확정하고 기획과 제작을 진행했답니다. 그리고 이 여배우, 이 영화의 투자가 완료될 때까지 의리와 신뢰를 지키며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 의리와 신뢰는 영화 속 결과물로 드러났습니다. 완성된 영화 속 이 여배우가 만든 캐릭터는 한국영화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코미디의 색깔을 완성 시켰습니다. 이 영화, 최근 개봉한 영화 ‘킬링 로맨스’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인공, 여배우 이하늬 입니다. 이하늬가 코미디 연기에서 대체 불가의 존재감으로 자리하고 있단 사실. ‘킬링 로맨스’를 보시면 확인이 가능합니다.
배우 이하늬.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킬링 로맨스’, 언론 시사회 이후 쏟아진 평가는 ‘강력한 호불호’에 대한 언급이 가장 많았습니다. 이 영화를 연출한 이원석 감독은 데뷔작 ‘남자사용설명서’를 통해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한 연출자입니다. 연이어 선보인 ‘상의원’ 역시 데뷔작에 비해 상당히 큰 폭의 톤 다운을 펼쳤다고 하지만 일반적인 장르물에선 보기 힘든 표현이 가득했습니다. ‘킬링 로맨스’는 그런 이원석 감독의 장기가 모두 집중된 가장 강한 작품입니다. 이하늬의 평가는 이랬습니다.
“전 이 영화가 정말 잘 됐으면 좋겠어요. 특히 MZ세대가 이 영화에 어떻게 반응할까. 그게 진짜 궁금해요. 이제 한국 영화 시장에서도 이런 영화 한 편은 좀 나와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희 영화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제2, 제3의 킬링 로맨스가 나왔으면 해요. 처음 보시는 분들은 강한 치약맛의 민트초코가 생각 나실 거에요. 근데 민트초코가 첫 맛이 힘들지 한 번 맛 보면 자꾸 생각 나잖아요. 딱 저희 영화가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배우 이하늬.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킬링 로맨스’는 정말 강하고 심상치 않은 장면들로 가득합니다. 설정 자체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일단 타조가 날라 다닙니다. 이 정도라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납득이 되실 겁니다. 그래서 이하늬와 함께 촬영한 또 다른 주인공 이선균에게도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정말 촬영하기 힘들었던 장면’이 있었는지. 이선균은 딱 한 장면이 있었다고 꼽았습니다. 이하늬에겐 어떤 장면이 있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선균 오빠 인터뷰 봤어요(웃음). 근데 다들 영화가 많이 세다 하시는데, 오히려 감독님이 많이 톤 다운을 시킨 게 상영 버전으로 알고 있어요. 저한테 촬영 못할 장면은 없었는데 좀 힘들었던 건 ‘귤 학대’ 장면이었어요. 사실 그 장면이 시나리오에선 오렌지였어요. 그런데 실제 오렌지로 하면 큰 사고가 날 듯 해서 귤로 바꿨 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오렌지로 그냥 할 걸 그랬나 싶기도 해요(웃음).”
배우 이하늬.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킬링 로맨스’, 분명 내용적으로는 코미디가 맞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코미디는 절대 아닙니다. 우선 이하늬가 연기한 ‘황여래’가 자신의 남편 ‘조나단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게 이 영화의 기본 뼈대 줄거리입니다. 남편 죽이기 과정을 통해 벌어지는 웃긴 상황과 웃픈 과정을 이원석 감독 특유의 B급 정서에 오롯이 녹여내 만들어 진 영화가 바로 ‘킬링 로맨스’입니다. 아무리 영화이지만 쉽게 몰입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황당하다 못해 기상천외한 상황의 연속이니 말이죠.
“상상하신 것과는 달리 완성 버전의 영화 속 상황은 시나리오에 자세하게 설명된 게 아니었어요. 뭐랄까 그냥 이런 식으로 시나리오에는 써 있어요. 제가 영화에서 어떤 가사를 통해 랩을 하는 장면은 시나리오에는 그냥 ‘랩을 한다’ 딱 이렇게만 있었어요. 그런 게 한 두 개가 아니었어요. 그건 반대로 말하면 배우가 연기를 하는 데 굉장히 자유로울 수 있단 거잖아요. 저나 선균 오빠나 정말 애드리브가 많았어요. 감독님이 진짜 마음껏 풀어 주신 거에요.”
배우 이하늬.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그런 애드리브의 연속과 이어짐 속에서 만들어 낸 ‘황여래’란 캐릭터. 극중 이하늬가 연기한 ‘황여래’ 역시 일반적 느낌의 캐릭터는 절대 아니었습니다. 어떤 개연성 측면에서 따진다면 황여래는 판타지의 영역에서나 해석이 가능할 수 밖에 없는 캐릭터였습니다. 이하늬가 이해하고 받아 들이는 과정에 따라서 연기의 필터링이 어떤 결과물을 걸러내는지가 결정될 듯했습니다. 이하늬의 대답을 들어보면 이랬습니다.
“개연성의 영역에서 해석이 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잖아요(웃음). 여래 같은 경우 먹는 것 하나까지도 남편 조나단의 통제 속에서 몇 년을 살던 인물이에요. 아마 신경 쇠약이 걸려서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겠죠. 불안하고 힘든 상황 속에서 또 한 편으론 남편의 가스라이팅에 조련 되는 느낌까지. ‘넌 다시 연예계로 돌아가 봤자 조롱 거리 밖에 안돼’라고 속삭이잖아요(웃음). 어우 진짜 못 됐어(웃음). 그냥 인물을 이해하면 안되는 캐릭터였어요. 상황에만 집중하면서 그때 그때 연기를 했던 것 같아요.”
배우 이하늬.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속 캐릭터 적으로는 그랬지만 사실 이하늬는 ‘킬링 로맨스’ 속 ‘황여래’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겁니다. 영화 속 황여래는 초절정의 인기를 누리며 살다가 결혼과 동시에 대중의 시선에서 사라진 여배우입니다. 대중의 관심과 비난 모두에서 지쳐갈 때쯤 결혼이란 도피처를 이용해 벗어난 인물입니다. 물론 이하늬는 결혼을 통해 사랑하는 남편을 만났고, 온 우주의 기운이 집중된 새로운 생명(딸)과 함께 하는 지금이 매일매일 기적이라고 눈을 반짝입니다.
“사실 상황적으로만 보면 여래의 모든 게 공감이 너무 됐죠. 저도 한 때 너무 오버워킹을 하다가 부러진 적이 있어요. 당시에 1년 동안 제대로 침대에서 잠을 자본 게 한 손에 꼽을 정도였어요. 그리고 그런 시간 속에서 가야금 박사과정까지 밟았어요. 그러다 건강에 이상이 왔었죠. 쉴 때는 쉬어야 하는구나. 그걸 진짜 제대로 배웠던 시기였어요. 그땐 정말 지금 생각해 보면 아찔해요.”
배우 이하늬.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이하늬는 ‘킬링 로맨스’를 통해 뭔가 이미지를 변신한다거나 작품적으로 도전을 해야겠단 생각을 한 것은 절대 아니랍니다. 그는 자신의 배우적 커리어는 사실 생각하지 않았답니다. 단지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오는 것,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이 영화에 출연해서 꼭 세상에 이 영화가 나오는 것. 그게 자신의 순수한 진짜 목적이고 목표였다고 합니다. 꼭 한 번은 극장에서 이 영화를 관람하고 경험하기를 추천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랍니다.
“뭔가 거창하게 배우로서 뭘 이뤄보고 새로운 뭔가를 해보려 했다. 그런 이유나 목적은 없어요. 제 배우로서의 커리어에 대한 생각도 없었어요. 진짜 오롯이 이 작품이 가장 중요했어요. 이런 영화가 한국영화 시장에 이제는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호불호가 확실하게 갈릴 것이란 점은 인정하지만, 분명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이원석 감독이 만든 판타지의 세계에 동승해 보세요. 절대 실망하지 않을 경험이 되실 겁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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