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이건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에서 ‘이 감독’ 외에는 연출할 수 있는 감독이 없다. 이미 답은 나온 시나리오였다.” ‘킬링 로맨스’를 제작한 영화사 이창 김성훈 대표. 그는 ‘공조’ 1편과 ‘창궐’을 연출한 현직 영화 감독입니다. 그는 ‘킬링 로맨스’를 기획했고 제작했습니다. 그가 처음부터 이 시나리오를 기획 개발하면서 점 찍은 연출자는 딱 한 명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아니 지구상에서 딱 한 사람뿐 이었답니다. 개인적으로 대학 동문이기도 하고 또 친한 영화계 동료이자 형이라고 부르는 연출자. 바로 이원석 감독이 그 주인공이었답니다. 이원석 감독은 충무로에서 가장 자기 색깔이 확고하고 뚜렷한 연출자입니다. 그의 데뷔작 ‘남자사용설명서’는 2013년 개봉한 이후 지금까지도 가장 독보적인 B급 코미디로 주목 받고 있습니다. 이 감독이 개인적으로 주류 트렌드에 많이 타협을 하고 이듬해 선을 보인 차기작 ‘상의원’마저 심상치 않은 색채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감독은 뭔가 더욱 더 갈증이 심해졌었나 봅니다. 무려 9년 만에 공개한 신작 ‘킬링 로맨스’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원석이란 감독은 점찍고 시작했지만 그의 손에 탄생된 결과물은 더욱 더 ‘이원석’ 스러워졌습니다. ‘킬링 로맨스’는 그 자체로 이원석의 모든 영화적 상상력이 집대성된 놀이터에 가깝게 탄생됐습니다. 이 영화, 이원석 감독 그 자체입니다.
이원석 감독.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일단 ‘킬링 로맨스’가 언론 시사회를 통해 공개가 된 뒤 강력한 호불호 반응이 나왔습니다. 모두가 예상한 대로 ‘이원석의 영화다’라는 반응이 가장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 반대에 속하는 의견 가운데에는 ‘이 영화를 대중들이 따라갈 수 있겠는가’라는 반응도 꽤 많았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 감독의 데뷔작 ‘남자사용설명서’는 이 영화에 비하면 ‘로맨틱 멜로’ 장르라고 불러도 될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평가에 이원석 감독은 정말 박장대소를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평을 인터뷰에서 들어서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웃음). 우선 전 ‘킬링 로맨스’를 너무 평범하고 대중들이 굉장히 쉽게 따라갈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제 기준에선 굉장히 쉬운 영화라고 여겼죠(웃음). 근데 정말 솔직히 말하면, 저도 시나리오 받고 ‘이건 모 아니면 도다’라고 하긴 했어요. 하하하. 일단 와이프는 이해를 못했고, 딸은 정말 재미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된 거 아닌가요. 하하하.”
이선균과 이하늬가 이 영화에 애정을 갖고 출연을 결정한 것은 이미 너무 많이 알려진 얘기입니다. 이원석 감독에 따르면 사실 진짜 걱정했던 부분은 따로 있었답니다. 이 감독 그리고 제작사 대표가 정말 고민했던 부분은 바로 내용입니다. 기본적으로 아내가 남편을 죽이기 위해 다른 남자와 공모를 합니다. 장르적으로는 코미디가 강합니다. 하지만 이런 스타일 탓에 스릴러적 부분도 있습니다. 물론 그것 역시 이원석 감독의 스타일로 변화돼 있습니다.
영화 '킬링 로맨스'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진짜 제작사 분들하고 ‘잘못되면 이민 각오하자’라고 하면서 했어요(웃음). 이 영화가 풀어가는 방식이 코미디 적인 게 많은 거지, 사실 평범한 얘기는 아니잖아요. 일단 남편을 죽인다는 소재의 얘기, 이병헌 감독의 ‘바람바람바람’이 교본이라고 생각했어요. 코미디로서 소화가 불가능한 얘기를 코미디의 온갖 것을 다 동원해 불편함이 없이 만들었잖아요. 그걸 떠올리고 고민하다가 얻은 결론이 ‘동화’였어요. ‘옛날 옛적에~’라는 얘기로 시작하는 동화 콘셉트라면? 딱 맞겠다 싶었죠.”
그래서 나온 방식이 ‘킬링 로맨스’에서 선보이는 ‘동화 읽어주는 외국인’ 콘셉트였습니다. 그의 데뷔작 ‘남자사용설명서’와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킬링 로맨스’가 처음부터 이런 흐름은 아니었습니다. 처음 이원석 감독 손에 왔을 때는 아주 평범한 ‘스탠다드’한 느낌의 시나리오였답니다. 하지만 그가 연출 제안을 받으면서 ‘하고 싶은 것 다 해라’라는 제작사의 권유에 정말 마음껏 활개를 치면서 자신의 모든 걸 다 담아봤답니다. 당연히 상영 버전은 아주 ‘약간’ 타협을 좀 했다고 웃습니다.
“동화처럼 만든다고 했지만 진짜 내가 만들고 싶은 느낌은 따로 있었어요. 막연하게 상상하는 게 있는데, 제가 영화를 되게 늦게 알았어요. 전 원래 광고를 공부했어요. 미국에서 공부를 하는 데 그 당시 내가 사는 동네에 지금은 아주 유명한 낡은 극장이 있었어요. 그 극장에 2주에 한 번씩 금요일 밤이면 남자들이 망사스타킹을 신고 그렇게 빽빽하게 줄을 서서 영화를 봐요. 영화를 보는 내내 대사가 안 들릴 정도로 떼창을 하고. 그 영화가 ‘로키 호러 픽처 쇼’에요. 딱 그걸 상상하면서 만든 거 같아요.”
이원석 감독.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이런 의도 때문인지 ‘킬링 로맨스’에는 노래가 아주 중요한 포인트로 역할을 합니다. 흡사 뮤지컬 영화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로 흥겨운 상황을 많이 만들어 냅니다. 특히 극중 등장하는 노래 가운데 귀에 익은 히트곡 몇 곡은 이 영화에 합류하게 된 과정 자체가 ‘영화’적입니다. 이원석 감독은 ‘킬링 로맨스보다 그 노래를 사용하게 된 과정이 더 영화적이다’고 웃었습니다.
“우선 H.O.T의 ‘행복’은 무슨 딱 맞는 노래가 없을까 이선균과 고민하고 상의하다가 강남의 유명한 냉면집이 있어요. ‘우선 밥이나 먹자’라고 하면서 그 집에서 냉면 먹다가 이선균이 문득 ‘H.O.T의 행복 어때?라고 하더라고요. 가사를 떠올려 보니 딱이에요. ‘너무 좋다’라고 했죠. 근데 허락을 받아야 하잖아요(웃음). 근데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우리 먹는 테이블 건너 건너편에 장우혁씨가 있었어요. 근데 이선균이 또 우혁씨하고 친하더라고요. 바로 얘기가 된 거죠. 하하하. 그리고 대한민국 최고의 자뻑 노래가 없을까. 딱 한 곡이 있었죠. 제 생각에 ‘레이니즘’보다 더한 자뻑 노래는 없었어요. 근데 또 이하늬가 비씨의 아내 김태희씨와 친하잖아요. 그것도 그렇게 얘기가 돼 삽입이 된 거죠. 하하하.”
‘킬링 로맨스’ 속 또 다른 핵심 포인트를 꼽자면 단연코 ‘타조’를 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영화를 두고 황당하고 또 ‘이원석스럽다’고 하는 이유 중에 결정적인 표현이 바로 타조입니다. 이 영화가 얼마나 판타지스러운지를 얘기할 때 ‘타조가 날라 다닌다’고 얘기를 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그리고 ‘킬링 로맨스’ 속에 등장하는 ‘타조’는 실제로 날라 다니기도 합니다. 모두가 이원석 감독의 상상력입니다.
영화 '킬링 로맨스'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사실 타조는 제가 생각한 게 그 섬에 사는 원주민이었어요. 그걸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하면서 만든 캐릭터가 타조였어요. 한 가지 재미있는 걸 말씀드리면, 극중 타조의 울음 소리가 만든 소리 같으세요?(웃음). 배우 심달기씨 목소리에요. 정말 조금도 손을 안댄 오리지널 그대로의 심달기가 표현한 울음소리에요. 하하하. 원래는 저희가 굉장히 연구를 많이 했는데, 저희가 만든 타조 소리는 너무 욕처럼 들리더라고요. 근데 어느 날 현장에 온 심달기 배우가 ‘제가 해볼까요’라고 했는데 너무 잘하는 거에요. 바로 썼죠. 하하하.”
누군가는 이원석 감독 그리고 그의 영화에 대해 ‘B급’이라고 평가합니다. 영화 장르적으로 B급은 이른바 ‘병맛 코미디’를 부르는 대명사로 활용됩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선 ‘격이 한 단계 낮은’으로 풀어서 보는 시각도 분명 존재합니다. 이원석 감독은 외모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비주얼을 자랑합니다. 그리고 개그맨을 능가하는 입담도 갖추고 있습니다. 분명 심상치 않은 연출자 입니다. 그런 모든 것이 그에게 B급이란 단어를 안겨 준 듯합니다. 이원석 감독, 사실 기분이 언짢을 수도 있지만 그는 오히려 훈장처럼 느껴진다고 여기는 듯합니다. 이원석 감독 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이원석 감독.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B급이 나쁜가요? 계급을 무너뜨리고 완벽한 것을 무너뜨리는 재미. 그게 B급이 아닌가 싶어요. 전 제 감성이 B급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뭐랄까요. 비트는 게 저의 영화라고 할까요. 웨스 앤더슨 감독처럼 비주류 정서로 영화를 만들어 주류로 발돋움 시키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킬링 로맨스’도 기존 주류를 전부 비틀어 버린 내용이잖아요. 분명 이 영화는 낯설 겁니다. 하지만 익숙한 걸 만들어 선보이는 건 제 역할은 아닌 거 같아요. 이런 방식도 충분히 재미가 될 수 있단 걸 보여 주고 싶어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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