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무실' 국민동의청원…"5만명 동의 받으면 뭐하나"
청원심사소위, 심사 외면…국민 청원 83% 폐기
박주민 "국민동의청원 제도 개선안 발의할 것"
2024-06-19 06:00:00 2024-06-19 06:00:00
 
 
[뉴스토마토 오승주B 기자] '국민동의청원'이 국회의 무관심 속에 외면받고 있습니다. 21대 국회에서 5만명의 동의를 받은 청원이 194건에 달했지만 상임위원회의 처리 비율은 17%에 불과했습니다. 21대 국회 종료와 함께 수많은 청원들이 휴지조각이 되고 만 것입니다.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는 국민동의청원을 개선해 국민의 청원권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18일 국회 등에 따르면 국민동의청원은 2020년 1월 10일부터 시행됐습니다. 과거에는 국회의원의 소개를 받아 문서로 작성한 청원서를 제출해야 했지만 2019년 4월 국회법이 개정되며 전자청원 도입의 근거가 마련돼 '30일 이내 5만명의 국민 동의'를 받으면 법률 제·개정과 공공 제도 및 시설 운영 등에 대한 청원이 가능해졌습니다.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를 통해 30일 동안 5만명 국민의 동의를 받으면 청원을 제출할 수 있다. (이미지=홈페이지 갈무리)
 
194건 중 처리율 17%…'국민동의'보다 '의원소개' 처리 더 많아
 
<뉴스토마토>가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청원을 집계한 결과 21대 국회 기간 총 1261건의 청원이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 올라왔습니다. 국민들의 관심이 국민동의청원에 집중되는 이유는 '입법'을 통한 변화가 가능한 유일한 민원 창구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8일 <뉴스토마토> 유튜브 '야단법(法)석'에서 국민동의청원에 이같은 민의가 표출되는 것에 대해 "본질적이고 시스템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입법을 통한 변화가 가장 효과적"이라며 "국회 청원이 실질화되면 느낄 수 있는 효능감은 매우 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국민동의청원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은 크지만 문턱은 높습니다. 동의 성립 기준이 10만명에서 5만명으로 조정되기는 했지만 5만명의 동의를 받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더 큰 문제는 동의 요건을 충족한 이후입니다. 국회로 넘어간 국민 청원의 처리율은 매우 저조한데요. 21대 국회 동안 접수된 총 1261건의 청원 중 동의가 성립된 청원은 194건으로 이 가운데 33건(17%)만이 처리됐습니다. 본 회의에 부의하지 않기로 한 청원이 24건, 대안반영폐기는 8건, 1건은 철회됐습니다. 나머지는 국회의원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됐습니다. 
 
21대 국회 기간 동의가 성립된 청원은 194건으로 이 가운데 33건(17%)만이 처리됐다. (이미지=뉴스토마토)
 
처리된 청원 중에서도 '의원 소개' 청원의 비율이 높았습니다. 국민동의청원은 국민 5만명의 동의를 얻어 청원이 성립되는 '국민 동의'와 국회의원 1명의 소개를 받아 성립되는 '의원 소개'로 나뉘는데요. 동의가 성립된 194건의 청원 중 국민 동의는 110건, 의원 소개는 84건이지만, 처리된 청원은 국민 동의 11건, 의원 소개 22건이었습니다. 국민 동의 처리율은 10%인 반면, 의원 소개는 26.2%로 의원 소개 처리율이 국민 동의 처리율의 두 배를 훨씬 웃돌았습니다. 국민의 목소리가 담긴 청원이 실제 입법으로 실현되지 않는 모습입니다.
 
"청원 채택되도 청원심사소위가 방치"
 
청원이 채택되더라도 청원심사소위원회가 해당 안건을 심사하지 않고 방치한 것이 이같은 결과를 초래한 주요한 배경으로 분석됩니다. 국회법에 따르면 청원 회부일로부터 90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되, 60일 범위에서 한 차례만 심사 기간 연장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거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구체적인 사유를 명시하지 않은 단서 조항이 청원 심사를 가로막았습니다. '장기간 심사를 요하는 청원은 특별한 사유가 있으면 의결로써 심사 기간의 추가 연장을 요구할 수 있다'는 조항이 '국회의원 임기만료일'까지 심사 기간을 무기한 늘려줬습니다. 임혜자 K-정책금융연구소 기획위원(전 청와대 선임행정관)은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발의한 법안이 아니기 때문에 심사에 소홀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국회의 '늦장 심사'를 두고 국회의원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새어 나옵니다. 지난해 11월 열린 국회 제1차 청원심사소위에서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은 '한국형 PPP(급여보호 프로그램)법의 임시국회 처리에 관한 청원'을 심사하며 국회의원들의 반성을 촉구했습니다. 장 전 의원은 "청원이 회부된 2021년 2월은 코로나 피해로 소상공인들이 고통을 겪던 시기였는데 청원을 심사하는 시점은 2023년 11월"이라며 "제때 심사하지 못해 시효가 다했으니 본 회의에 부의하지 않는다는 결정에 대해 반성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지난해 11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청원심사소위원회 모습. (사진=뉴시스)
 
국회의원 임기 종료와 함께 무더기 휴지 조각…"22대 국회에서 재논의돼야"
 
국회의원 임기 종료와 함께 국민동의청원이 무더기로 폐기되는 문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임혜자 기획위원은 "국회의원에게는 임기가 있지만 국민에게는 임기가 없기 때문에 국회의원 임기 종료와 동시에 국민동의청원이 사라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습니다. 21대에서 폐기된 청원이 최근 다시 등장하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일명 '도현이법'이라 불리는 '급발진 의심 사고 발생 시 입증 책임 전환을 위한 제조물 책임법' 개정에 관한 청원이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것입니다. 앞서 2023년 2월 28일 올라온 도현이법 관련 국민청원은 닷새 만에 5만명의 동의를 얻어 정무위원회로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여야 정쟁으로 인해 21대 국회 내내 표류하다 폐기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다시 처음부터 5만명의 동의를 모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다행히도 국회를 중심으로 국민동의청원 개선을 위한 움직임이 나오고 있으나 실현될지는 미지수입니다. 21대 국회에서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해당 국회 임기 동안 처리되지 못한 국민동의청원을 다음 국회에서도 심사할 수 있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장기간 심사가 필요한 청원의 심사 기간을 위원회 의결로 계속 연장할 수 있게 한 현행법 규정을 삭제해 청원 처리 지연을 방지하기 위한 내용입니다. 
 
박 의원 또한 청원의 심사 기간을 6개월 범위 내에서 한 번만 연장하고 이후에는 국민에게 반드시 답변을 제공하며, 청원인이 원할 경우 청원소위에 출석해 청원의 취지를 설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요. 하지만 두 개정안 모두 21대 국회에서 논의되지 못하고 임기 만료로 폐기됐습니다. 박 의원은 "국민의 청원권 확대를 위한 국민동의청원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는 내용을 담아 22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오승주B 기자 sj.o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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