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원식 국회의장의 개헌 제안은 대선을 두 달 앞둔 시점에서 바람직하지 않았다. 2단계 개헌을 제안하면서 1단계에 난도 높은 '권력구조 개편'을 놓은 것도 악수였다. 그런데 그보다 더 부적절한 것은 더불어민주당 주류 정치인들과 강성 지지층의 반응이다. 개헌은 하는 것보다 막는 게 훨씬 쉽다. 동의하지 않거나 시간이 촉박하다고 생각하면 그냥 그렇다고 말하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내란 종식이 우선"이라는 '전가의 보도'가 난무했고 "우원식은 개헌 수괴"라는 음해까지 나왔다.
개헌 과제에는 내란 종식과 직결된 것들도 있다. 12.3 내란 사태는 계엄 규정(헌법 제77조) 개정의 이유 그 자체다. 국회에 계엄 동의권을 주거나, 일정 시간 내에 국회의 승인을 받지 못하면 계엄을 자동 해제하는 방안이 있다. 내란 범죄자를 끝까지 철저하게 응징하는 데도 헌정파괴 범죄자의 사면을 금지하는 제79조 개정이 필요하다. 헌법재판관 지명 등 한덕수 국무총리의 전횡은 대통령 권한 대행 관련 조항(제71조)을 도마 위에 올리기도 했다. 대통령이 파면된 경우 권한 대행은 국무총리나 국무위원이 아닌 국회의장이 하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닥치고 개헌 반대'에 묻혀버렸다.
민주당은 '내란 종식'에 전념해 온 집단이 아니다.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처리한 것은 (그것의 옳고 그름과 별개로 말하자면) 내란과 상관없는 사안을 내란옹호세력과 합의하고 내란 방관자의 협조를 얻은 결과다. 또 민주당은 12.3 사태 이후 내내 국민의힘과 '감세 경쟁'을 벌였다. 세금이 많아서 내란이 일어났나? 국민의힘 정부의 감세는 R&D 예산 삭감과 같은 정부 지출 위축,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 확대 등 불건전 재정을 초래했다. 민주당이 이를 계승하고 내란옹호세력과 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것도 내란 종식인가?
민주당 주류와 강성 지지층의 잣대는 명확하다. 자신이 허락한 것이 아니면 내란 종식 방해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종식하려는 것이 '내란'이 아니라 '내 란(나의 난리)'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재명 전 대표가 자신 최대의 난리였던 체포동의안 가결 사건에 대해 '민주당 내 일부가 검찰과 내통한 결과'라고, 스스로 밝혔듯 근거 없이 주장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체포동의안에 찬성한 민주당 의원들이야말로 윤석열 탄핵의 수훈갑이었다. 가결된 덕분에 구속영장이 기각되는 걸 확인할 수 있었고, 야당 대표 사법리스크가 총선까지는 가라앉았기 때문에 탄핵소추 의결정족수를 채울 수 있었다. 진정 내란 종식이 최우선이라면 "전화위복이었다"고 할 일이다.
"대선에서 윤석열을 지지했지만 탄핵 찬성에 나선 시민들께 감사드린다.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는 시민은 민주주의를 지탱한다." '듣보잡'인 나도 한 칼럼에 이렇게 적었지만, 민주당에서 이런 입장이 나온 적은 한 번도 없다. 심지어 윤석열을 찍지도 않은 시민들까지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 "지난번에 심상정 때문에 졌다." 당시 심상정 지지자들은 기본적으로 거대양당 거부층이었거니와 그 수는 민주당이 날려버렸던 지지율에 비할 바가 아니다. 서울중앙지검장을 검찰총장으로 직행시키지 않는다는 약속을 파기하며 윤석열을 승강기에 올린 것도, 인사청문회에서 윤석열을 위해 '피의 쉴드'를 친 것도, 문서위조범을 수호하다가 윤석열을 대선 주자로 띄운 것도, 모두 민주당이다. 어차피 결과가 뻔한 6.3 대선, 민주당은 이번 기회에 국민의힘의 존재를 빌미 삼는 습성부터 버리는 게 좋을 것이다. 국민의힘보다 낫다는 건 자랑이 아니다.
김수민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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