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ICD-11)에 따라 '게임이용장애'를 국내에 도입할 경우 게임 악마화가 심화돼 콘텐츠 산업 기반 자체를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게임특별위원회와 강유정·조승래 의원은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게임이용장애 도입, 왜 반대하는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 왼쪽부터 김정태 동양대 교수, 김동은 메제웍스 대표, 백주선 법무법인 대율 대표변호사, 황희두 게임특위 공동위원장, 강유정 의원(게임특위 공동위원장), 이민석 연세대 연구교수, 남윤승 OGN 대표,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 한승용 PS애널리틱스 최고전략책임자. (사진=게임기자단)
창작 생태계와 K콘텐츠 위기 우려
남윤승 OGN 대표는 28일 국회에서 열린 '게임이용장애 도입, 왜 반대하는가' 토론회에서 "1972년에 정OO 어린이가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며 "이 사건이 발생하고 나자마자 모든 언론 매체와 정부는 만화를 악마화하고 탄압에 들어갔다"고 말했습니다.
정OO 어린이는 '로봇 삼국지'라는 만화책을 읽고 장비 캐릭터가 부활하는 모습을 보고 환생을 믿게 됐으며, 이를 따라 하려다 숨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사건 이후 만화방 주인이 구속되고, 만화계 종사자 69명이 고발당했으며, 58개 만화 출판사의 등록이 취소됐습니다. 만화계는 스스로 자정운동을 벌여 2만권에 달하는 만화책을 모아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남 대표는 게임을 중독물질로 규정할 경우 이와 비슷한 사회적 낙인이 콘텐츠 산업 전반에 다시 퍼질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또 창작자들이 자기검열에 빠질 위험성을 지적하며, 콘텐츠 다양성과 경쟁력 약화를 경고했습니다.
김동은 메제웍스 대표는 디지털화로 모든 창작물이 결국 게임화되는 흐름에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김 대표는 "모든 IP는 결국 게임에 가서 닿는다"고 강조하며, 게임을 몰이해적이고 편의적으로 규정할 경우 K콘텐츠 발전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한국이 글로벌 콘텐츠 경쟁력을 갖춘 현재 시점에서 창작자를 홀대해 온 과거를 되짚고 더 큰 지원과 이해가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남윤승 OGN 대표는 게임중독 프레임 확산이 '만화 불태우기'와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사진=이범종 기자)
e스포츠 무너지고 개인 권익 침해
이민석 연세대 스포츠응용산업학과 연구교수는 e스포츠 산업 역시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이 교수는 "게임 이용장애 질병 코드는 이 스포츠의 현재인 산업 구조를 너무나도 약화시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교수는 또한 게임이 질병으로 인식되면 청소년 선수 육성 기반이 붕괴돼 '제2의 페이커' 같은 세계적 선수가 등장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백주선 법무법인 대율 대표변호사는 게임이용장애 도입이 개인 권익 침해로 이어질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백 변호사는 게임이용장애 진단 기준이 넓다고 본 이유로 "병적 행위와 일상적 몰입의 경계가 불분명하고, 문화적 연령 차이를 반영하지 못하며, 게임을 하는 이유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정의와 진단 기준이 넓게 되면 필연적으로 그 진단 결과가 자의적일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촘촘하고 다툼의 여지없이 잘 정리되지 않고서 질병으로 인식되는 질병 코드를 부여한다는 것은 신중하게 생각해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백 변호사는 진단이 남발될 경우 불필요한 약물 처방과 학교·가정의 과도한 개입이 정당화될 수 있으며, 사회 전반의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화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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