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시절 바다란 존재는 나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물놀이를 좋아했지만 계곡이나 수영장을 가는 정도였다. 세상이 놀이터인 것처럼 온 동네를 까불고 다닌 까까머리 시절 이야기이지만 바다에서 헤엄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수영을 좋아했지만 바다 수영이 위험하다고 여긴 건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1975년작 스릴러 영화 <죠스> 때문으로 기억한다. '제발 물속에 들어가지 말라'는 주인공의 외침에도 물에서 솟구쳐 집어삼키는 거대한 백상아리의 극적 긴장감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의 재미를 제법 알아가던 소년 시절 기억이지만 뇌리 속 공포감을 제대로 선사한 명작이기도 하다. 더욱이 식인 상어를 제거하기 위한 해양 생물학자 매트 후퍼(리차드 드레이퍼스)의 활약은 인간과 식인 상어 간 극적 재미를 더했다.
인간의 갈등 구도를 그릴 때마다 해양 전문가의 말을 듣지 않는 머저리들의 답답함은 고구마 100개를 삼킨 듯, 동시대 어린 관람객들 모두가 느낀 트적지근한 꼬임이었다.
하지만 공포는 두려움 따위나 무서움을 불러오지 않았다. 되레 바다를 향한 호기심을 자극했고 '딥 블루 씨'를 탐구하고픈 10대를 지나 지금은 무릎 관절에 좋다는 상어 연골 건강기능식품과 관절염 치료로 쓰이는 연어 성분의 주사를 맞고 있으니 말이다.
우스개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바다는 우리 일상생활의 밀접함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바다, 머지않은 미래의 바다는 위기에 처했다. 해수면·해수온 상승 등 기후위기, 해양 산성화, 해양 폐기물로 인한 바다 황폐화 가속, 해양생물 자원 감소,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오염 등 바다를 지켜야 한다는 외침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해양행동, 슈퍼사이클이 온다』라는 저서를 펴낸 이상길 해양수산부 과장은 일상생활 속 바다의 가치를 생명체 호흡의 필수인 '공기'에 비유한다.
그는 "우리는 그것이 너무나 당연해서 그 소중함을 잊고 지내는 것처럼 우리 국민에게 바다는 일상과 경제생활을 떠받치는 결정적인 천연 인프라"라고 서술하고 있다.
흔히 아마존을 '지구의 허파'라고 하지만 숲의 산소 공급량에 비해 바다의 식물성플랑크톤이 생산하는 산소 공급량이 지구 산소 공급의 50% 이상을 담당한다고 지목한다.
육상생물이 살아가는 데 필수인 담수는 또 어떠한가. 비구름은 지구 표면의 70%를 덮고 있다. 지구상 물의 97.5%, 즉 바다에서 증발한 수증기로 이뤄졌다는 점을 꼬집고 있다.
대자연의 메시지를 들고 나온 재난 영화 <투모로우>는 아무런 피해 없이 지구의 자원을 마음대로 쓸 권한이 있다는 인류의 착각이 '오만'이라고 말한다. 영화 속 대사는 21년이 흘렀어도 보전의 확장성을 무색하게 하는 영원한 시류로 남아있다.
'제10차 아워오션 콘퍼런스(OOC)' 개막의 의미도 이런 맥락과 무관치 않다. 하나의 바다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한 국가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만큼, 모두의 행동을 강조하는 '아워 오션, 아워 액션'은 그만큼 의미하는 바가 크다.
대한민국은 1996년 해양수산 통합 행정 체계를 구축한 이후 종합적인 해양 정책을 통해 해양의 보존과 이용 간의 조화를 실현해왔다. 지속가능한 해양의 선도 사례는 전 세계적 행동으로 옮겨져야 한다. 빈 수레만 요란한 그들만의 리그로 멈춘다면 천연 인프라의 보고가 아닌 죠스와 같은 두려움이 인류를 집어삼킨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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