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서귀포 바닷가 절벽에서 매 성조가 사냥을 위해 나서고 있다.
매(Peregrine falcon, Falco peregrinus)는 인류에게 자유와 힘의 상징입니다. 하늘 높이 솟구쳤다가 순식간에 급강하하여 사냥하고, 가파른 절벽에 둥지를 틀며 하늘과 바다를 호기롭게 넘나드는 이 사냥꾼의 모습은 고대부터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경외심을 불러일으켜 왔습니다. 매는 사냥감을 향해 발톱을 내리꽂을 때에는 그 속도가 약 390km에 달하는데,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새로도 명성이 자자합니다.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는 “갈매기는 자신을 방어하려 하지만, 송골매는 결코 빈주먹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1 ”고 했습니다. 사냥감을 단숨에 제압하고, 부리의 치상돌기로 목의 등골을 공격해 즉사시키는 매의 위용을 엿볼 수 있는 구절입니다. 아! 매는 ‘송골매’라고도 부릅니다. ‘송골(Songquor)’은 강하고 빠른
맹금류를 일컫는 몽골어에서 유래한 말로, 원나라를 거쳐 한반도로 전해져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습니다.
송골매, 한마디로 강인하고 빠른 새! 하지만 이 새는 인간의 농약 개발로 개체수 감소라는 큰 위기를 겪었습니다. 일찍이 미국의 생물학자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은 『침묵의 봄(Silent Spring)』에서 살충제 DDT 살포의 위험성을 경고했습니다. 카슨에 따르면 인간이 해충 방제를 위해 살포한 DDT는 곤충과 식물에 축적되고, 이를 먹는 작은 새나 물고기들의 체내에 쌓입니다.
이는 먹이사슬의 연쇄 작용에 따라 상위 포식자일수록 DDT가 체내에 고농도로 축적되어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는 까닭입니다. 당시 DDT는 새들의 칼슘 대사를 방해했고, 그로 인하여 새들의 알껍질이 얇아져서 무수한 새들이 알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비극에 처했습니다. 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매의 알들이 부화하지 못했고, 개체수는 크게 줄었습니다. 이에, 현재는 여러 나라에서 DDT 사용을 금지하는 정책을 시행하였고, 감소했던 매의 개체수가 서서히 회복되고 있습니다.
제주 해안가 절벽에서 매 수컷이 어린 새들에게 먹이를 잘게 찢어 먹이고 있다.
최근 한반도에서는 제주도와 부산 태종대, 서해의 굴업도와 연평도 등 사람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해안 절벽과 섬 지역에서 적은 수의 매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지난 10여 년 간 한반도에서 발견된 매 둥지는 50여 개 남짓입니다. 매 한 쌍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제주의 가파른 절벽 위에 둥지를 틀고, 어린 새 두 마리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부부는 교대로 사냥을 나가고, 어린 새들을 먹이느라 쉴 새 없습니다. 와중에도 노오란 눈테에 반짝이는 예리한 눈빛, 무엇이든 강력하게 움켜쥔 날카로운 발톱 등 말 그대로 매서움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합니다.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도, 쏜살같이 절벽 아래로 뛰어듭니다.
활짝 편 날개는 순간 M자 형태를 이루며 빠른 속도로 수면을 가로지릅니다. 순식간에, 다시 절벽으로 돌아온 매의 발에는 파랑새가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습니다. 둥지로 돌아온 암컷 매는 능숙하게 파랑새의 깃털을 뽑고, 살점을 발라 어린 새들에게 먹입니다. 어린 새들은 부리를 크게 벌리고 서로 앞다투어 먹이를 받아먹습니다. 일각도 채 되기 전에 두 마리의 어린 매들은 파랑새 한 마리를 해치웁니다. 배가 부른 어린 새들은 둥지 가장자리에서 배설하고 몸을 털며 휴식을 취합니다. 암컷 매는 남은 찌꺼기인 뼈와 깃털을 물고 둥지 밖으로 나갑니다. 이렇게 매 부부는 하루 종일 먹이를 가져옵니다.
둥지에 들어올 때마다 먹이가 된 새들의 깃털이 바람에 흩날려 눈송이처럼 나풀거립니다. 절벽 위에서 어린 새를 기르고, 하늘과 바다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사냥하는 매라는 생명을 오랜 인류의 일원으로서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한때 농약 살포로 존재 자체의 위기를 겪었지만, 깎아지른 절벽 끝에서 바람을 헤치며 옹골지게 자유로운 모습으로 하늘을 비행하는 매! 오늘도 어느 하늘을 비상하고 있을 매들이 안녕하기를 바라며, 총총!
글·사진= 김용재 생태칼럼리스트 K-wild@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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