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문재정부의 ‘취업 청탁’ 의혹 첫 재판부터 검찰이 공소사실에서 허점을 드러냈습니다. 재판부가 검찰에게 핵심 공소사실인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위력 행사 방식'을 물었지만 검찰은 답변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검찰은 의견서에서 압수수색 날짜와 장소를 틀려 지적받기도 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9단독 임혜원 부장판사는 14일 업무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노 전 실장과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전직 대통령실 인사비서관 권모씨, 전직 국토부 운영지원과장 전모씨에 대한 1차 공판기일을 진행했습니다.
검찰은 이들이 국토부의 관리·감독을 받는 민간기업 한국복합물류에 위력을 행사, 2020년 8월 이정근 전 민주당 미래사무부총장을 상임고문으로 고용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김 전 장관과 전씨는 2018년 7월 또 다른 정치권 인사인 김모씨를 한국복합물류에 취업시킨 혐의도 받습니다.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해 1월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 관련 4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런데 공소를 제기한 검찰은 재판의 시작인 모두진술부터 가로막혔습니다. 파워포인트(PPT)를 활용한 방식으로 모두진술을 하던 중 공소장에 없는 내용을 말해 재판부로부터 저지당했습니다.
검찰은 “한국복합물류가 물류업무 관련 경험이 없는 정치권 인사들의 고용을 반대했다”면서 “국토부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업무수행 과정에서 불이익받을 것을 우려해 어쩔 수 없이 이들을 채용했다”고 말했습니다. 문제가 된 부분은 ‘불이익받을 것을 우려해’였습니다. 재판부는 “공소장에 없는 부분을 요지로 말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예민한 부분”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검찰은 공소장을 그대로 낭독하는 방식으로 바꿨습니다.
이번엔 공소사실 불특정이 문제가 됐습니다. 검찰은 “한국복합물류가 민주당 지역위원장을 겸직하는 이 전 부총장의 고용을 반대했음에도 노 전 실장이 고용을 관철시켰다”고 주장했습니다. 재판부는 “관철 방법이 (공소장에) 적시되지 않았다”며 “어떻게 위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냐”라고 물었습니다. 검찰은 “한국복합물류 반발이 있었음에도 노 전 실장이 계속 고용을 요구했다”고만 했습니다. 구체적인 일시와 방법 등을 말하지 못한 겁니다.
이에 재판부는 “관철시킨 방법·일시·태양(態樣)을 (공소장) 그대로 유지할지 석명을 구했다”고 검찰에 말했습니다. 검찰 공소장 변경이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노 전 실장은 이 사건에 대해 “윤석열정권의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직접 발언에 나선 노 전 실장은 “대통령 비서실장은 법령에 따라 인사추천위원장을 겸한다”며 “합법적인 업무인 인사 추천을 받는 행위를 청탁받았다고 음해하며 언론 공작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노 전 실장은 “이 전 부총장은 세 차례 구체적 직위에 자천했다”며 “그러나 자천은 모두 사용되지 않았다”고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노 전 실장이 이 전 부총장의 겸직 문제를 해결했다’는 검찰 주장에 대해 “(제가) 원내수석부대표를 했던 경험으로 (이 전 부총장에게 겸직이 가능하다고) 팩트체크한 것”이라며 “한국복합물류 등에 의견을 전달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노 전 실장은 또 “문재인정부는 (역대 정부 관행에도 불구하고 공기업 100개 합한 것보다 많은) 5대 금융지주회사와 2대 국민기업에 대한 인사권을 5년 내내 행사하지 않았다”며 “그런 문재인정부가 무엇하러 민간기업 인사를 방해하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김현미 전 장관 측도 검찰의 수사·기소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김 전 장관 변호인은 “한국복합물류는 2009년 1월 이명박정부 설립 이후 2020년 9월까지 국토부가 추천한 사람을 상근고문 자리에 채용하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며 “채용자 모두 물류 관련 경력이 없는데 유독 문재인정부가 추천한 사람만 선별해 기소했다”고 비판했습니다. 김 전 장관 측은 “정치적 목적이 아닌 원칙을 준수한 절제된 수사라고 평가할 수 있는지, 차별적 기소가 아닌 공정한 기소인지 심히 의심스럽다”고 강조했습니다.
검찰 의견서도 빈틈 투성이였습니다. 재판부는 검찰이 압수수색 날짜를 오기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전씨 측 변호인도 “날자뿐 아니라 노 전 실장 주거지에서 전씨 휴대전화를 압수했다고 나와있다”고 꼬집었습니다. 검찰은 다시 확인하겠다고 했습니다.
향후 재판에서는 이 전 부총장 녹음파일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검찰은 이른바 ‘이정근 게이트’를 수사하다가 그의 녹음파일을 단서로 이 사건을 인지수사했습니다. 문제는 이 전 부총장에게 수억원의 뇌물을 건넨 혐의를 받는 사업가 박우식씨가 이 전 부총장과 대화를 녹음한 파일입니다. 피고인들 측은 박씨가 휴대전화를 임의 제출하면서, 다른 사건 증거로 사용되는 데 동의했는지 알 수 없다며 위법한 수집증거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오는 9월29일 2차 공판기일에서 이 전 부총장과 사업가 박우식씩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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