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운전 실력을 결정짓는 것, 액셀인가 브레이크인가
2025-08-06 06:00:00 2025-08-06 06:00:00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
올림픽 슬로건에도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이 바로 속도다. 인간은 왜 속도에 집착할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답은 역시 진화적 본능의 이유다. 원시 시대부터 빨리 달리는 것은 사냥에 유리하고 위험한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데 필수적인 자질이었다. 하지만 생존에 필요했던 속도의 시대를 지나 문명의 시대에 진입해서도 빠른 이동과 신속한 정보 처리를 위한 기술의 발전으로 속도의 욕망은 이어져왔다. 그러니 ‘더 빨리’는 자연의 본성인 듯하다. 
 
“우리는 승리할 수 없어.”
“도전하지 않으면 그렇겠지!”
그렇게 도전하여 세계에서 가장 빠른 레이싱 선수가 된 '소니'는 영화 <F1 더 무비>의 주인공이다. 과거에 잘나가던 선수였지만 큰 부상을 입고 은퇴 아닌 은퇴를 했다가 나이가 들어 마침내 재기에 성공한다는 뻔한 서사이다. 그럼에도 그의 도전과 승리는 충분히 아름다웠다. 관객의 아드레날린 분비는 단순히 속도감을 만끽하게 해주는 감각적인 연출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른 무언가가 추가되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전략’이다. 체스나 골프, 양궁 등 속도와는 상관없는, 오히려 속도의 반대편에 있는 스포츠의 핵심 가치 말이다. 
 
F1은 10개월에 가까운 기간 동안 총 24라운드를 경주하는 종목이다. 긴 레이스를 펼쳐야 하기에 제아무리 빨리 달리는 선수라도 속도만 중시해서는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F1이 팀 경기라는 점도 중요하다. 선수의 기량뿐만 아니라 차를 만들고 고치는 엔지니어, 데이터 분석 전문가 등 모든 사람들이 한 몸이 되어야 한다. 각 라운드에는 타이어 선택 및 교체 타이밍, 연료 관리, 날씨 변화 대응 등의 단기 변수가 존재하고, 선수의 부상이나 팀 전략의 수정 등 장기 변수도 만만치 않다. 긴 기간 동안 모든 변수들을 잘 통제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전략이 필요하다. 
 
이 스포츠가 흥미로운 점은 정치로 치면 대통령 선거와 닮아서이다. 대선은 당내 경선부터 6개월~1년 이상 준비해야 하는 선거이고, 경쟁 구도는 후보 개인의 대결이면서 정당 간의 싸움이기도 하니 F1과 정치는 여러모로 비슷하다. 이슈를 선점하고 위기에 대처하는 데에는 속도가 중요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은 단기간에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므로 작은 행보에도 온갖 정성을 다해야 한다. 
 
속도 중심 스포츠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사고이다. 고속 경쟁일수록 당연히 부상의 강도가 커진다. 단순 접촉만으로도 사망할 수 있다. 그런데 정치에 속도가 붙어 발생하는 사고는 이보다 더 심각하다. 선수와 팀의 실패로만 끝나지 않고 한 사회를 통째로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정치에서의 속도는 숙의가 필요한 수많은 정책들을 포퓰리즘화하고, 과정과 절차보다 승패에 더 집중하게 한다. 논리가 자리할 곳에 감정을 자극하는 말들이 똬리를 튼다. 이를 위한 최고의 전략이 ‘프레이밍’이다.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이다. 이 와중에 여당의 모습이 정말 가관이었다. 당대표 선거 기간 동안 양쪽 지지자들 사이에서 내내 오가고, 그 직전엔 갑질 의혹에 쌓인 국회의원을 보호한답시고 같은 당 보좌진을 향해 던져졌던 화살이 바로 ‘수박’ 논쟁이었다. 이제는 정치의 보통명사가 돼버린 ‘수박’. 프레이밍은 더할 나위 없이 간편한 공격 수단이지만 자기 진영을 스스로 갇히게 하는 틀로도 작용한다. 속도 스포츠에서 일어나는 사고의 대부분이 순간적인 판단 착오나 실수보다 승리에 대한 집착과 과욕의 결과가 아니던가. 그러니 속도를 다루면서 실은 속도를 경고하는 이 영화를 우리가 꼭 봐야 하는 것이다. 소니가 던진 이 말을 음미해보면서. 
 
“느리면 부드럽고 부드러우면 빨라져!” 
 
이승연 작가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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