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금융권, 포용금융이 민간 압박으로
2025-11-19 13:56:54 2025-11-19 14:06:26
금융권이 다시 정책의 무게를 실감하고 있다. 취약계층 지원이라는 대의를 내세운 금융당국의 요구가 연일 강화되면서다. 금융당국은 지난 18일 5대 금융지주와 은행연합회, SGI 서울보증과 '포용금융 소통·점검회의'를 열고 기관별 포용금융 지원 현황 및 계획을 점검했다. 겉으로는 취약계층 지원 확대를 위한 협력 요청이지만 금융권 내부에선 '요청이 아니라 사실상 지시', '정책 실적을 위한 동원'이라는 표현들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온다. 
 
문제는 이 흐름이 한두 차례의 이벤트성 조치가 아니라는 데 있다. 앞서 금융당국은 5대 금융지주에 508조원 규모의 생산적 금융 투입 계획을 발표하도록 유도했다. 
 
특히 금융사 자체 전략이 아닌 '정책 목표'에 발맞추기 위해 조달과 여신 계획을 대대적으로 조정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당국의 개입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은 장기 자본 배분을 기반으로 움직인다. 방향을 틀려면 비용이 생기고 그 비용은 결국 누군가의 부담이 된다. 이처럼 금융당국의 조치가 잦아지고 강도가 높아지면서 금융권에는 새로운 부담이 쌓이고 있다. 리스크 관리와 수익성 모두를 충족해야 하는 '이중 부담'이 커진다는 현실적 지점이다. 
 
취약 차주 대출, 재기 지원 프로그램, 금리 감면, 소액연체 완화 등 포용금융 관련 요구는 대부분 금융사의 리스크 비용을 높이는 조치다. 이를 감수하면서도 수익성 방어를 해야 하니 은행들은 과거보다 훨씬 더 정교한 조정작업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당국의 메시지는 '금융이 공적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방향성에 방점이 찍히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자력 돌파하기 어려운 취약층을 지원하는 것은 당연히 사회적 역할이지만, 강제로 찍어누르려 해선 안 된다. 금융사는 사회복지기관이 아니다. 지나친 정책 역할 부과는 장기적으로 금융사들의 건전성을 해치고, 그 충격이 다시 금융소비자에게 되돌아오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더욱이 금융당국의 정책 요구는 단기간 성과를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금융사들이 정책 실적을 내기 위해 리스크를 완충하는 안전판을 희생하게 만드는 구조로 이어진다. 은행권의 순이익이 정치·사회적 이슈가 될 때마다 금융당국이 직접적인 조정 신호를 보내는 방식이 정례화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책 목적을 위해 민간 금융사를 사실상의 공공기관처럼 활용하는 셈이다. 
 
금융이 정책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지나치게 동원되면 결국 자율성과 책임의 균형이 무너진다. 시장보다 규제가 경영을 좌우하는 비중이 커지는 상황인 '관치금융' 논란 역시 피해 갈 수 없다. 이 흐름이 지속하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주체는 금융소비자다. 금융사는 리스크 비용이 증가하면 최종적으로 이 비용을 대출 금리나 수수료, 신용평가 기준에 반영할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당국의 목표 설정이 아니라 민간 금융사가 스스로 포용금융 모델을 설계하고 구현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그래야 정책 실적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자생적인 포용금융이 가능해진다. 포용은 명분일 뿐 압박이 수단이 돼선 안 된다. 지금처럼 이중 리스크를 금융사에 떠안기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장기적으로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되는 것은 결국 우리 모두다. 
 
임유진 금융팀장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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