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노동의 그늘)⑤"수면장애에 임신순번제란 말까지"…야간노동자 '건강권 대책' 한목소리
25일 국회서 '야간노동자 건강권 증언대회' 열려
노동자들, 인력 부족·연속 근무제 폐해 지적 나와
"불필요한 야간노동 줄이고 규제 법안 마련해야"
2025-11-25 15:34:37 2025-11-25 15:34:37
[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제 친구는 불가피하게 야간 전담을 하게 됐는데 불면증이 생겼다. 수면제 복용은 기본이고 자기 전에 술을 마셔야 잘 수 있을 정도로 수면장애가 심각해졌다. 혹시라도 부서에서 임산부가 생기면, 임신하지 않은 간호사들은 밤 근무 일수가 기본 6일 이상으로 늘어나고, 임신을 준비하는 '예비 임산부' 간호사들은 병동 내 인력 공백을 걱정하며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임신 순번제라는 말까지 나온다."
 
아주대학교병원에서 6년간 야간 교대 근무를 해온 정윤지씨는 "간호사의 야간노동은 시간 단위로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어 쉴 틈 없이 일하는 것이 기본"이라며 "내가 일하는 병동은 섬망 환자가 많아서 밤새 횡설수설하며 침상에서 내려오는 환자를 처치실로 빼 간호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환자의 안전과 다른 환자들의 수면권을 지키기 위해 밤새 긴장을 놓을 수 없는 고강도 노동"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마저도 연차가 낮아 업무가 미숙하거나 해야 할 일이 많으면 식사도 못하고 연장근무가 발생하는 일이 허다하다"며 "밤 근무 다음날 '오프'는 쉬는 날이 아니라 오로지 다음 근무를 위한 수면시간"이라고 했습니다.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야간노동자 건강권 증언대회'에선 정씨를 포함해 공항 보안경비원과 환경미화원, 제과제빵사, 택배노동자 등이 참석해 야간노동 실태와 건강상 위험성에 대해 직접 발언했습니다. 이번 증언대회는 야간노동으로 인한 과로사 등 잇따른 사건사고가 사회적 문제로 불거지면서 야간노동 규제와 실질적인 대안 마련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취지로 진행됐습니다.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야간노동자 건강권 증언대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보안경비노동자 소형은씨는 2005년 3월부터 인천국제공항에서 보안경비 업무를 맡으며 3조2교대 근무로 연속 야간노동을 해왔습니다. 소씨는 "가스분사기와 무전기를 차고 순찰을 돌고 민원인을 상대하면 하루 평균 주간은 15㎞, 야간은 20~25㎞ 정도로 3만보 이상 걷게 된다"며 "보안경비원에게 족저근막염은 익숙한 산업재해인데, 연속 야간노동까지 겹치면서 장기근속자들은 고혈압을 달고 산다"고 했습니다.
 
실제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에 따르면 인천공항 자회사 노동자들의 뇌심혈관 질환 유병률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올해만 해도 뇌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고가 3건이나 발생했습니다. 지난 3월부터 8월까지 자회사 노동자 5명은 야간 근무 중 사망하거나 추락사하기도 했습니다. 소씨는 "신규 입사자들도 기대와 다른 노동환경 때문에 금방 회사를 떠난다. 퇴사율이 높다 보니 보안경비업무의 경우 늘 정원 대비 90% 정도의 인원으로 일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연속 야간노동 형태 때문에 남은 직원들의 노동강도는 더 높아지는 악순환의 반복"이라고 전했습니다.
 
이봉근 공공연대노조 정책실장은 생활폐기물을 수집·운반하는 환경미화원의 야간노동 실태에 대해 발언했습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절반가량이 여전히 야간 수거 방식을 유지하고 있고, 법에 규정된 3인1조 원칙도 강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현장에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또 민간위탁 구조가 인력 충원과 안전 조치를 막는 원인으로 언급됐습니다. 파주 지역에서 일하는 한 환경미화원은 "새벽 6시 근무 시작이지만 시간 안에 구역 청소를 다하기 위해선 출근시간보다 1~2시간을 먼저 출근해야 한다"며 "그렇게 하더라도 '자발적'으로 일찍 출근한 걸로 간주돼서 시간 외 수당도 없다"라고 토로했습니다.
 
택배노동자들이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동십자각 앞에서 열린 ‘과로사 없는 택배 만들기 시민대행진’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잇따른 산재 사고가 발생했던 SPC삼립 노동자들은 야간노동과 인력 부족을 제빵 공장의 위험 요인으로 지적했습니다. 최종흥 화섬식품노조 SPC삼립지회 조직부장은 "야간노동은 집중력과 판단력 저하로 사고를 부르는 고위험 상태"라며 "한 명이 두 세명의 업무를 떠맡는 구조 속에서 중대재해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어 "6일제에 가까운 장시간 야간노동이 만성피로를 심화시켜 사고 위험을 더 키우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날 증언대회에 참여한 이혜은 한림대 의과대학 교수는 "야간노동이 생체리듬 교란을 통해 암·심혈관계 질환과 정신건강 악화 등을 유발한다"면서 "불필요한 야간노동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교수는 "야간노동이 더 위험한 노동이라는 건 공식적으로 인정된 상황"이라며 "이 때문에 해외에선 야간노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나라들이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분명 생명과 안전 등 불가피한 영역들이 존재하지만, 지금 한국에서 이뤄지는 야간노동의 상당 부분은 기업의 효율과 소비자 편의를 위한 노동으로 보인다"고 강조했습니다.
 
민주노총은 향후 △연속 야간근무 폐지 △교대제 개편 △인력 충원 △휴게·위생시설 의무화 △중대재해 예방인력 배치 등 야간노동 규제 방안을 위한 구체적인 입법을 촉구한다는 계획입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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