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인 줄 알았다?…대법, '가짜 마약 배달책도' 실형
2025-11-28 10:58:48 2025-11-28 10:58:48
[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최근 대법원은 국제우편물에 실제 마약이 들어 있지 않더라도, 그것을 마약이라고 믿고 수거·배달했다면 마약류 불법거래 방지에 관한 특례법(마약거래방지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요즘 마약류 범죄 적발 소식에서 마약 배달책(드라퍼)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마약 판매상이 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고용하는 마약 배달책을 뜻합니다.
 
구자현 검찰총장 직무대행(사진왼쪽 세번째)을 비롯한 합수본 관계자들이 21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검찰청에서 열린 마약범죄 정부합동수사본부 출범식에서 현판 제막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피고인은 2024년 7월쯤 구인·구직 채널을 통해 알게 된 마약류 판매상으로부터 일정한 보수를 받고, 판매상이 수입한 마약류가 들어있는 국제우편물 상자를 수거하는 드라퍼로 일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피고인은 두 차례에 걸쳐 국제우편물 상자를 수거한 혐의를 받습니다. 그런데 처음 수거한 상자에는 장난감만 들어있었고, 두 번째로 수거한 상자에는 2500만원 상당의 마약이 들어있었습니다. 
 
피고인은 처음 수거한 국제우편물 상자는 약물 등 마약으로 오인될 외관이 아니므로 마약거래방지법 제9조 제2항이 규정한 '약물 또는 그 밖의 물품'에 해당하지 않고, 마약류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 소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두 번째 상자에 가액 500만원 이상의 마약류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해 가액에 따라 가중처벌 할 수 없다고도 주장했습니다.
 
1심에서는 피고인의 혐의가 모두 인정된다고 보고 피고인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습니다. 마약거래방지법 제9조 제2항이 약물이나 그 밖의 물품이라고 규정해 물품의 외관이 마약으로 오인될 수 있는 것이면 물품의 내용이나 성질을 제한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피고인이 범행 이전에 상선과 나눈 대화에서 이미 마약류 거래와 관련된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고 진술한 점, 인터넷에 국제우편 배송조회나 드라퍼를 구하는 취지의 검색어를 검색했던 점 등을 고려하면 상자에 마약류가 들어있다고 인식하면서 상자를 수거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봤습니다. 마약류가 내용물임을 인식하고 우편물 상자를 수거한 행위는 마약거래방지법상 소지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겁니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정범죄가중법) 제11조는 소지·소유·재배·사용·수출입·제조 등을 한 마약 및 향정신성의약품의 가액이 500만원 이상 5000만원 미만이면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형을 가중합니다. 1심은 이러한 가중처벌의 기준이 되는 마약 및 향정신성의약품의 가액은 객관적 기준에 따라 엄격하게 해석해야 하고, 미필적 고의라도 있었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피고인이 미필적으로라도 500만원 이상의 마약류를 수수한다는 결과 발생 가능성을 인식하고도 결과 발생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가 있었어야 한다는 겁니다.
 
1심은 피고인이 포함된 대화방에서 마약류에 관한 대화가 오갔고, 우편물 수거의 대가로 50만원에서 100만원가량을 제안받은 적이 있는 점, 처음 받은 상자에서 장난감을 해체해 마약류를 찾아내려 한 사실, 상자의 크기가 알약 수백 개가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정도인 점 등 여러 사정을 고려했을 때 피고인이 마약류의 거래량이 500만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하면서 용인했다고 판단했습니다.
 
피고인이 1심 판결에 불복해 사실오인, 법리오해, 양형부당 등을 이유로 항소했지만, 2심도 1심 판결을 긍정했습니다. 피고인이 처음 수거한 국제우편물 상자에 들어있던 장난감 안에 마약류가 들어있다고 인식하고 소지한 이상 마약거래방지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봤습니다. 특정범죄가중법에 따라 가액 500만원 이상인 경우로 판단해 가중처벌 한 부분도 문제가 없다고 봤습니다.
 
대법원도 2심의 판단이 맞다고 보고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했습니다. 대법원은 마약거래방지법이 국제적으로 협력해 마약류와 관련된 불법행위를 조장하는 행위 등을 방지함으로써 마약류 범죄의 진압과 예방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입법취지와 목적 등을 고려할 때, 마약거래방지법 제9조 제2항은 마약류 범죄를 범할 목적으로 실제로는 마약류가 아닌 약물이나 그 밖의 물품을 마약류로 인식하고 양도·양수 또는 소지하는 경우를 처벌하는 규정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해당 규정의 문언상 마약류 인식의 대상으로 ‘약물이나 그 밖의 물품’이라고 규정하고 있을 뿐, 그 물품의 형상, 성질 등을 제한하고 있지 않으므로 어떠한 물품이라도 마약류로 인식됐다면 이 사건 조항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은밀하게 이뤄지는 마약류 범죄의 특성상 일반적으로 상자 등의 내부에 든 상태로 유통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러한 경우라도 마약류 자체만 유통되는 경우와 비교해 그 행위의 위험성 및 처벌의 필요성 등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본 겁니다.
 
최근 마약류 범죄가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법원은 마약류 범죄가 개인을 넘어 사회 전반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므로 엄벌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마약류 범죄는 법으로도 촘촘히 규제하고 있는데, 마약이나 향정신성의약품 등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마약류관리법)에 따라 그 취급 및 관리에 대해 정하고 이를 위반한 사람을 처벌합니다. 특정범죄가중법은 마약류관리법을 위반한 경우 그 마약 등의 가액이 500만원 이상이면 가액에 따라 가중처벌 합니다.
 
마약거래방지법은 마약류 범죄로 얻은 재산, 그 범죄의 보수로 얻은 재산이나 이로부터 유래한 재산 등의 은닉, 가장, 수수 등을 처벌하고, 마약류로 인식하고 물건을 교부받았다면 실제로 마약류가 아니라도 처벌하도록 규정합니다. 고수익 알바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고 내용물과 상관없이 물건을 전달만 하면 된다는 안일한 판단으로 드라퍼의 역할을 하게 되면 중한 처벌을 받게 되므로 마약류 범죄에 연루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합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