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숨소리) 한강의 발레리나 큰고니
2025-12-15 11:03:04 2025-12-15 13:58:47
큰고니 가족이 충남 서산시 간월호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한반도의 젖줄 한강 하구에 위치한 파주, 김포로부터 서울을 지나 하남까지, 수도권은 사방을 둘러보면 온통 아파트 숲입니다. 세상이 온통 빌딩 숲으로 변해가고 있어도 미사리부터 팔당댐, 경안천에 이르는 한강에는 겨울철이면 큰고니(Whooper Swan, 국가자연유산 201호) 무리가 찾아옵니다. 특히 미사리에 조그만 섬처럼 남아 있는 생태공원 옆 한강변은 이들의 중요한 보금자리입니다.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를 질주하는 자동차 불빛도 이곳에서는 잠시 쉬어 갑니다. 얼마 남지 않은 조그만 강변 숲이 불빛을 가려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멀리 밤새 내려 비치는 아파트의 조명은 큰고니들의 편안한 밤을 앗아가버립니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해마다 잊지 않고 찾아오는 녀석들이 대견해 보입니다.
 
“꾸룩 꾸룩 꾸욱.”
 
미사리에서 100여마리 남짓한 큰고니들이 부르는 합창 소리입니다. 한강을 뒤덮은 물안개 속에서 살며시 모습을 드러내는 큰고니들의 우아한 자태는 언젠가 세종문화회관에서 보았던 러시아 볼쇼이 오페라단의 <백조의 호수>를 연상시킵니다. 선녀 같은 발레리나의 율동에 흠뻑 빠져 차이콥스키의 교향곡을 매일같이 반복해 듣는 분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발레리나의 원조가 바로 큰고니입니다.
 
흔히 백조라고 부르는 큰고니는 11월 말쯤 러시아 툰드라의 추위를 피해 우리나라 해안가의 호수를 찾았다가 이듬해 3월에 돌아가는 희귀한 겨울철새입니다. 겨울철이면 수많은 탐조객들이 하얀 천사 같은 이들의 평화로운 춤사위를 생생하게 담아내기 위해 갈대밭 속에 위장 텐트를 치고 녀석들이 가까이 접근하기를 기다립니다. 저도 한동안 이들에 매료되어 창원 주남저수지, 부산 낙동강 하구, 충남 천수만, 금강 하구를 안방처럼 들락거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녀석들을 기다리다 보면 동지섣달의 한기에 뼛속까지 파고들어 온몸이 웅크려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단잠에서 깨어난 선녀들이 얼어붙은 호숫가에서 물이 흐르는 호수 한가운데로 서서히 움직이며 하나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추위 속에서 떨던 지루함은 어느덧 사라져버립니다.
 
이들의 춤사위는 입춘이 지나 우수 무렵에 절정에 달합니다. 낮의 길이가 길어지면서 고향으로 돌아갈 채비를 서두릅니다. 첫 번식기를 맞이하는 새신랑들은 겨우내 점지해두었던 예비 신부에게 자신의 춤사위를 과시합니다. 유혹의 날개짓에 실패하면 자칫 혼자 몸으로 고향에 돌아가야 합니다. 다른 수컷이 얼쩡거리면 그 순하던 큰고니들도 야수로 변신합니다. 수컷의 우아하고 품위 있는 춤사위에 암컷이 감동하면, 그 커플은 긴 목을 구부려 사랑의 하트 모양을 연출합니다.
 
큰고니 한 쌍이 미사리 한강에서 하늘로 날기 위해 살얼음판 위를 달리고 있다.
 
큰고니의 힘찬 비상은 장관입니다. 크기 140~150cm, 몸무게 7~12kg에 달하는 육중한 몸매의 큰고니는 가벼운 새처럼 단숨에 하늘로 날지 못합니다. 육상에서 도움닫기를 하듯 수면 위 5~7m를 박차고 탄력을 받아야 비로소 하늘로 날 수 있습니다. 대형 종일수록 날기 위한 예비 동작은 힘차고 웅장합니다. 큰 비행기가 긴 활주로를 필요로 하듯, 큰고니도 비행 후 강물 위에 내려올 때 단숨에 내려앉지 않고 수상 활주로에 미끄러지듯 긴 제동거리를 둡니다. 이때 날개를 비행기처럼 수직으로 최대한 넓게 벌려 바람의 저항을 이용해 미끄러지는 거리를 단축합니다. 여객기의 이착륙 비행 공학은 바로 이 큰고니에게서 빌려온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찾는 고니류는 혹고니, 큰고니, 고니 세 종류가 있습니다. 보통 네댓 마리의 가족 단위로 생활합니다. 무리 중 머리와 목이 잿빛을 띠는 개체들은 태어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어린 새들입니다. 부리 위에 혹이 있는 혹고니가 가장 커 약 152cm에 이르며, 고니는 약 120cm 정도입니다. 갈대와 부들 같은 수생식물의 뿌리와 수서곤충을 먹고, 먹이가 부족할 때는 동물보호단체에서 제공하는 얇게 썬 고구마를 먹는 잡식성입니다. 먹이를 찾거나 채식할 때는 머리를 물속에 처박고 허리와 꼬리만 수면 위에 띄운 채 다리를 계속 저어 떠내려가지 않도록 합니다. 이 모습은 다소 우스꽝스럽지만, 마치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처음 등장한 수중발레(아티스틱 스위밍)를 보는 듯합니다.
 
고니류는 전 세계적으로 하늘·물·땅을 오가는 매개자로서 신비와 순수, 영혼을 상징하는 신성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큰고니는 동아시아 지역에 약 5만7000마리가 생존하며, 겨울철 우리나라에는 약 5000마리가 찾아옵니다. 그러나 습지가 줄어들고 수서생물이 감소하면서 큰고니의 개체 수 또한 해마다 줄어드는 현실입니다. 겨울철 수도권 한강에서 우아한 춤사위를 펼치는 큰고니를 우리 후손들도 계속 볼 수 있도록, 보호와 보존에 대한 깊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글,사진=김연수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 wildik02@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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