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 그리고 7년)①(단독)'신생아 살해' 판결 20건 전수분석…11명 '중절시도'
2021년 1월1일부터 올해 1월30일까지 판결문 전수조사
피고인 21명 중 '90%' 여성…'임신중지 실패' 사유 다양
전문가들 "임신중지 문제, '개인 선택' 국한된 것 아니다"
"국회·정부 '입법 지연'…'제도 구축' 실패가 누적된 결과"
2026-02-23 06:00:00 2026-02-23 06:00:00
[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정주현 수습기자]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한 여성과 의사를 벌하는 형법(낙태죄)을 '헌법불합치'로 결정한 지 7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법과 제도는 여전히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임신중지를 시도했으나 실패한 여성들은 살인죄 등으로 처벌받고 있습니다. <뉴스토마토>는 낙태죄 효력이 상실된 2021년 1월 이후 발생한 신생아 살해 판결문을 전수 분석, 낙태죄 입법 공백 속에서 임신중지 실패가 어떻게 처벌로 이어지는지 추적했습니다. 변호사와 지원단체 활동가 등 전문가들은 국회와 정부가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대체입법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편집자) 
 
* 용어 설명: '낙태'는 인공적인 방법을 동원해 태아를 자궁으로부터 분리·사산시키는 행동을 뜻합니다. 해당 행위를 처벌하는 '낙태죄'는 2019년 4월 헌법재판소로부터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고, 2021년 1월1일부터 효력이 상실됐습니다. 대신 의료적 시술을 통해 태아를 사산시키는 것엔 '임신중절'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의료적 시술을 받더라도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국가의 보장 의무를 포함한 권리·정책적 개념을 강조할 땐 '임신중지'라는 말을 권장합니다. 이에 <뉴스토마토>는 이번 기획기사에서 형법상 죄명을 지칭할 땐 낙태죄를, 시술을 의미할 경우엔 임신중절을, 권리를 강조하려는 맥락에선 임신중지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2022년 진주(가명)씨는 19살이었습니다. 진주씨는 2022년 5월 임신한 사실을 확인하고 이 사실을 남자친구에게 전했습니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미안하다'는 말만 남긴 채 군에 입대해 버렸습니다. 연락도 끊겼습니다. 진주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지만, 혼자서 온전히 출산·양육을 부담하기 힘들다고 판단했고 결국 임신중지를 결심했습니다. 이후 진주씨는 인터넷을 뒤져 중절약을 구해 수차례 복용, 유산을 시도했습니다.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면 유산된다는 말을 듣고선 음주와 흡연도 해봤습니다. 
 
하지만 진주씨는 유산에 실패했고, 홀로 출산했습니다. 2023년 초 아무도 진주씨를 돌봐주지 않는 가운데 그녀는 17일 된 신생아를 돌보다가 아기 위에 이불을 올려놓고선 잠이 들었습니다. 깨어났을 때 신생아는 사망한 뒤였습니다. 진주씨는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2023년 6월 1심 재판부는 그녀의 행동이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의 아동학대살해라고 보고 징역 12년을 선고했습니다. 그해 12월 2심 법원은 진주씨에게 살인이 아닌 폭행죄를 적용, 징역 3년에 처했습니다. 이듬해 3월 대법원도 2심의 판단을 유지했습니다. 
 
진주씨의 비극은 단순히 그녀 만의 일로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2019년 4월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지 7년이 지났지만, 국회와 정부가 후속 입법을 제때 마련하지 않은 사이 임신중지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여성들은 영아살해·아동학대살해·살인 등의 혐의로 형사재판에 넘겨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9년 4월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서 낙태죄 처벌 위헌 여부를 밝히는 재판이 열렸다. (사진=뉴시스)
 
'신생아 살해' 피고인 90%는 여성…실형은 평균 '4년10개월'
 
<뉴스토마토>는 형법상 낙태죄의 효력이 상실된 2021년 1월1일부터 올해 1월30일까지 발생한 신생아 살해 사건 가운데 판결이 선고된 사건을 전수 조사했습니다. 확인된 판결은 총 20건이었으며, 피고인은 21명이었습니다. 피고인 가운데 19명(90.5%)은 여성, 나머지 2명은 남성으로 집계됐습니다. 21명 중 실형이 선고된 건 13명(여성은 12명)이었고, 평균 형량은 4년10개월이었습니다. 나머지 8명은 집행유예를 받았습니다. 
 
각 사건의 판결문에는 '임신중지를 시도했으나…'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아동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여성 피고인 19명 중 11명(57.9%)은 애초 임신중지를 시도·고려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인터넷에서 구한 중절약의 문제, 병원의 시술 거부,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 등의 이유로 임신중지에 실패한 걸로 나타났습니다. 임신 사실을 뒤늦게 인지했거나 부인한 정황이 확인된 건 4건이었습니다. 대다수 사건에서 여성 피고인(89.4%)은 홀로 분만했는데, 분만 및 범행 장소가 화장실이었던 사건도 15건에 달했습니다.
 
판례로 본 중지 실패…경제적 이유로 포기, '후기'라면서 거절
 
임신중지 실패에 이르는 경우는 다양합니다. 먼저 중절약을 복용했지만 실패한 사례입니다. 2021년 7월 임신 사실을 안 미혼의 여성 A씨는 경제적으로 양육할 수 없는 환경이라, 인터넷에서 구한 중절약을 상당기간 복용합니다. 하지만 해당 약은 가짜였습니다. 2022년 3월 A씨는 갑작스레 진통을 느꼈고, 사산은커녕 집 화장실에서 아기를 낳았습니다. 패닉에 빠진 A씨는 변기 뚜껑을 덮고선 도망쳤습니다. 결국 A씨는 영아살해미수와 영아유기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1심에선 징역 4년, 항소심에선 징역 2년을 받았습니다.  
 
수술비도 장벽으로 작용합니다. 기초생활수급자였던 B씨는 홀로 4명의 자녀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더는 자녀를 출산·양육할 수 없었지만, C씨는 2024년 9월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경제적 이유로 중절 수술은 물론 주기적인 산부인과 진료도 받지 못했습니다. C씨는 34주 차에 집 화장실에서 아기를 낳았고, 신생아를 봉투에 담아 유기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C씨를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에 처했습니다. 
 
중절 수술을 준비하다가 예상보다 일찍 분만한 경우도 있습니다. C씨는 2021년 3월 임신 사실을 알게 됐고, 중절을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수술을 위한 병원비를 마련하지 못해 중절 수술을 미루다가 예상일보다 빠른 32주 차에 화장실에서 분만하게 됩니다. 1심 재판부는 C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습니다. 
 
여성단체와 보건단체 등이 2022년 4월10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집회를 열고 유산유도제 즉각 도입, 임신중지 의료행위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재생산 및 성에 관한 건강과 권리 포괄적 보장 등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임신 후기라는 이유로 의료기관으로부터 중절 시술을 거부당한 사례도 확인됩니다. 2023년 7월 D씨는 임신 사실을 알고선 산부인과를 찾아 중절 수술을 문의했습니다. 하지만 병원에선 임신 주수가 29주 차이기 때문에 수술이 어렵다며 거절했습니다. 그는 인터넷으로 중절약도 구해 복용했지만, 그해 10월쯤 집 화장실에서 미숙아를 분만하게 됐습니다. 1심 법원은 D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고, 항소심서도 원심이 유지됐습니다. 
 
남성이 중절을 종용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2021년 4월 임신 사실을 알게 된 E씨는 교제 상대가 중절을 강요할까 두려워 임신 사실을 숨겼습니다. 하지만 상대는 끝내 E씨의 임신을 알아챘고, 중절을 강요했습니다. E씨는 중절 수술을 할 병원도 알아봤지만 임신 8개월 차에 접어든 탓에 거푸 거부당했습니다. 결국 E씨는 화장실에서 미숙아를 분만했고 변기에 방치, 신생아가 사망에 이르게 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E씨에 대해 "피고인은 아이를 출산하고 싶지만, 애인이 반대하자 순응하는 쪽을 택했다"며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습니다. 항소심도 원심을 유지했습니다. 애인 역시 재판에 넘겨져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았습니다. 
 
전문가들 "정부·국회가 법 만들었다면, 여성 형사처벌 없었다"
 
전문가들은 낙태죄 효력이 상실될 무렵 정부와 국회가 진작 제도를 마련했다면 여성들이 처벌받을 일은 없었을 것이라 지적합니다. 2019년 낙태죄 헌법소원 대리인단 중 한 명이었던 박수진 법무법인 혜석 대표 변호사는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입법과 보건의료 체계 지연의 '결과'가 형사재판 단계에서 여성 개인의 중범죄 책임으로 전가되고 있다"면서 "임신중지 문제는 개인의 선택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입법 지연과 국가의 제도 구축 실패가 누적된 결과라는 점에서 국가 책임을 더 무겁게 물어야 할 사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또 "제도적·현실적 이유로 임신중지에 실패한 경위가 확인됨에도 불구하고, 형사 책임의 판단은 여전히 출산 이후의 결과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면서 "지금의 이런 사법적 판단 구조는 헌재가 낙태죄 헌법불합치를 결정하면서 문제로 삼았던 '결과 중심·형벌 중심 접근'과 여전히 긴장 관계에 놓여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의 나영 대표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성들이 중절 수술을 병원에 문의했을 때 수술비가 100만원 이상이라는 답을 듣고선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이 중절을 위한 시간이 지체된다"며 "그 과정에서 임신 주수가 14주 차를 넘기면 의료기관에서 시술을 거부하는 일이 반복된다"고 했습니다. 이어 "임신 초기 단계에서 정확한 의료 정보와 합리적인 비용 체계가 마련돼 접근 장벽이 낮아졌다면, 애초에 후기 임신중지를 시도하는 상황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정주현 수습기자 givehyu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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