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하청노동자의 눈물①)산재의 대물림, 정규직에서 하청으로
반도체 호황에 초대받지 못한 노동자들
32년 협력업체 근무하다 폐암4기 진단
14년 화학물질 취급 ‘악성 뇌종양’ 사망
7년 클린룸 청소 뒤 유방암…산재 인정
직업성암에 해당…산재 불승인은 ‘여전’
2026-04-01 06:00:00 2026-04-01 06:00:00
대한민국 수출 역군이자 첨단기술 상징인 반도체 산업. 눈부신 호황의 이면에는 유해물질에 노출된 채 일하는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2013년 화성공장 불산누출, 2018년 기흥사업장 이산화탄소 유출사고, 2024년 기흥사업장 방사선 피폭사고까지, 반복된 사고의 피해자는 협력업체 노동자였습니다. 김용균씨 사망 이후 2020년 산재 예방을 위해 원청 책임과 처벌이 강화된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지만 ‘위험의 외주화’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정규직 반도체 노동자들의 산재 문제는 오랜 싸움을 통해 피해보상 및 작업환경 개선 등이 이뤄져 왔지만 계약 만료 통보만으로 일터에서 사라지는 하청·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재해 문제는 가려져 있습니다. 원청에서 하청으로 대물림되는 반도체 산재의 현실과 안전 책임이 옅어지는 하청 노동의 구조, 반도체 산업 안전을 위한 대안을 세 차례에 걸쳐 심층 보도합니다._편집자
 
[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지난 겨울에는 항암 치료로 손발이 부어서 양말이 맞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맨발로 다녔습니다. 작업장에서 냄새나 분진은 실과 바늘처럼 늘 따라 다녔어요. 돈을 벌어야 가족들이 먹고 사니까 참고 일했는데 폐암 4기라니 참담하죠.”
 
반도체 하청노동자 ㅂ씨가 지난 3월4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반올림 집회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현기증에 병원갔더니 '폐암4기'
 
지난 4일 만난 반도체 하청노동자 ㅂ(64)씨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습니다. 25살때인 1986년 삼성코닝에서 처음 일을 배운 그는, 브라운관 전후면 유리 공정과 성형, 연마 후 검사, 접착공정에서 19년을 일했습니다. 이후에도 삼성전자 기흥·화성사업장의 그린센터·UT동·그린3동 등에서 세정과 폐기물 처리 하청노동자로 7년 일했습니다. 슬러지 탈리와 분진 청소, 기계·배관 청소, 슬러지 운반이 그의 업무였습니다. 인듐과 강산성류, 중금속, 분진 등 유해물질 속에 그가 벌어야 할 밥이 있었습니다. 그 세월 동안 그의 소속은 시설 관리업체인 ㄴ사에서 환경미화시설기업인 ㅇ사까지 십여차례 바뀌었습니다.
 
“반도체 공장은 겉으로 보기엔 깨끗하지만 팹 안은 다르거든요. 제가 일한 곳은 분진이 정말 심했어요.” 보호 장비는 허술했고, 2인 1조로 교대하며 폐기물과 슬러지를 다루는 동안 동료들끼리 “유해물질이니 조심하자”는 말이 오갔지만, 위험을 대비하기엔 닥친 일을 해결하는 게 먼저였습니다.
 
어느날 그는 갑작스런 현기증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폐암 4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2022년 9월이었습니다. 이미 뇌와 뼈, 림프절로 암이 전이된 상태였습니다. 가족력은 없었고 수년 전 담배도 끊었습니다. 지난해 9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요양급여를 신청했지만, 반년 넘도록 연락이 없습니다.
 
지난 3월4일 기자와 만난 ㅂ씨가 700만원이 넘는 진료비 영수증을 보여주고 있다.(사진=뉴스토마토)
 
당장 병원비부터 걱정입니다. 표적항암제를 포함한 치료비로만 매달 800만원이 들어가는데 건강보험 긴급 의료지원을 받는다 해도 본인 부담이 550만원에 달합니다. 그는 “누군가에겐 큰 돈이 아닐 수 있겠지만, 반도체공장 하청 노동자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라며 “평생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남은 건, 병뿐이고 모아놓은 돈도 바닥이라 하루하루가 막막하다”고 했습니다.
 
불산사고 현장이 남편의 일터
 
“일이 고되다보니 단순히 번아웃인 줄 알았죠. 이렇게 갈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남편의 산재를 인정받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게 너무 힘들고, 남편이 그냥 일하는 도구로만 취급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파요.”
 
지난달 25일 이뤄진 통화에서 ㄱ(38)씨는 한숨처럼 말했습니다. 남편 ㅇ씨는 지난 2010년부터 2024년까지 14년 동안 삼성전자 화성 사업장에서 설비공사 및 유지보수 협력업체인 ㅎ사 소속으로 일했습니다. 반도체 공정의 ‘화학물질 심장부’인 CCSS(Central Chemical Supply System·화학물질 중앙 공급 시스템)룸이 그의 일터였습니다. CCSS는 반도체 생산라인과 떨어진 별도 공간에 위치하지만, 생산라인으로 공급되는 불산·황산·질산·불화수소, 각종 유기용제와 혼합물 등 독성·부식성·인화성 화학물질이 고순도로 저장·관리되는 장소입니다. 2013년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두 차례 발생한 불산 누출 사상 사고 현장도 CCSS였습니다.
 
ㅇ씨는 이곳에서 화학물질을 충전하고 설비를 유지보수하는 일을 했습니다. 2013년 이전에는 일반 마스크만 착용한 채 화학물질에 노출됐고, 사고 이후 전면형 마스크(일명 ‘노랭이’로 불림)를 착용하기 시작했지만 ‘장시간 작업하면 땀 때문에 밀폐력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아내는 “노랭이에 작업복까지 입고 일하면 순식간에 속옷까지 땀으로 다 젖는다”던 남편의 말이 떠오른다고 했습니다. 
 
지난해 7월 뇌종양 투병 중에 숨진 ㅇ씨가 생전 병상에서 10년 근속상을 들고 있는 모습.(사진=유족 제공)
 
컨디션이 계속 안 좋다던 남편에게 아내는 육아휴직을 권했습니다. 2024년 2월, 휴직 중이던 남편은 악성 뇌종양(교모세포종) 진단을 받았습니다. 항암치료를 받던 이듬해 7월, 아들(10)과 딸(8)을 남겨둔 채 결국 42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이들 생각에 담배도 피우지 않던 아빠였습니다. 가족력은 없었습니다. 아내ㅇ씨는 “CCSS룸에서 화학물질을 섞다보면 새로운 물질이 만들어지고, 이런 복합 노출이 결국 남편의 몸을 망가뜨렸다”며 “스스로도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고 여긴 남편은 신입사원에게 ‘우리 일은 매우 위험하니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렇게 남편과 아빠를 잃은 유족에게 회사의 사무적인 태도는 상처로 남았습니다. “회사에서는 산재를 인정하지 않으려 그저 ‘유감’ 정도로만 표현을 하더라고요. 사측은 산재 신청 과정에서도 변호사를 선임해 근로복지공단에 반박 의견을 제출했고, 이를 재반박한 상태에요.”
 
6년7개월 만에 인정된 산재
 
이름에 걸맞지 않게 노동자들에게 더 엄격한 근로복지공단의 ‘관행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손윤화씨는 청소 협력업체 소속으로 2011년부터 유방암 진단을 받기 전인 2018년까지 삼성디스플레이 아산공장에서 일했습니다. OLED 생산라인 클린룸과 하부층을 오가며 공정에서 발생한 먼지와 약품을 닦거나, 약품이 묻은 설비와 바닥을 정리하고, 찐득하게 굳은 물질을 아세톤 등으로 제거하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쓰레기 수거와 화학물질 배관 노출 점검도 그의 몫이었습니다.
 
“방진복을 입고 라인에 들어가는 순간 컨디션이 확 떨어졌던 기억이 나요. 환기를 한다고 하지만 가루와 이물질이 공기 중에 떠다녔는데, 라인에서 떨어진 이물질을 청소하는 게 일이었어요.”
 
손윤화씨가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는 모습. (사진=손씨 제공)
 
2019년 1월 유방암 진단을 받고 그해 3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요양급여를 신청했습니다. 2년7개월이 지난 2021년 10월에 나온 공단 역학조사 및 심사결과는 불승인이었습니다. “같이 일했던 동료 중 야간 근무를 했던 사람은 공단에서 산재로 인정받았는데, 나는 주간 근무라 심사도 오래 걸린 데다, 결국 불승인됐어요.” 교대제에 따른 야간노동은 발암 요인으로 간주하면서도, 유기화학물질 노출은 여전히 업무상 인과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셈입니다.
 
납득할 수 없던 그는 두달 뒤인 12월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11월 법원은 공단의 불승인 결정을 취소하고 드디어 손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재판부는 OLED 생산라인 클린룸과 하부 RP층을 오가며 수행한 청소 업무 특성상 전리방사선, 극저주파 자기장, 벤젠, 포름알데히드, 산화에틸렌 등 유해물질에 상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며 유방암 발병과 업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손씨는 그렇게 6년7개월만에서야 자신의 암을 산재로 인정받았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이자 동료고 식구인데, 우리는 정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어요. 산재 인정이 됐다고 끝이 아니라, 하청 노동자들도 존중받는 안전한 환경이 마련돼야 합니다.”
 
(인포그래픽=뉴스토마토)
 
취재과정에서 ㅂ씨와 ㄱ씨는 이름과 회사명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여러차례 부탁했습니다. 혹시나 산재 승인 과정에서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당할까 두렵기 때문이었습니다. 노동자들에게 산재 인정은 너무도 멀고 어려운 일입니다. 산재보험은 수년째 대규모 흑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정당한 보상을 받아야 할 노동자들이 산재로 인정받지 못하거나(숨은 산재), 보상이 지연되면서 발생한 비용 절감 때문이라는 지적이 줄곧 제기돼 왔습니다.
 
앞선 2018년 고용노동부는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 등 ‘직업성 암’에 걸린 경우, 산업재해 인정을 받을 때 업무관련성 판단 과정을 간소화하기로 한 바 있습니다. 이미 법원과 근로복지공단에서 업무와의 연관성이 입증된 병(백혈병, 다발성 경화증, 재생불량성 빈혈, 난소암, 뇌종양, 악성 림프종, 유방암, 폐암)에 대해 역학조사 절차를 생략하고 어떤 공정에서 일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산재로 인정해주기로 한 것입니다.
 
하지만 <뉴스토마토>가 만난 3명의 하청노동자들에게 산재 승인의 문턱은 여전히 높았습니다. 반도체 하청노동자가 오늘도 자신의 산재를 입증해야 하는 한국사회에서, 3개월 연속 200억달러(30조원) 수출을 달성한 K반도체는 영업이익 300조원 시대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암투병으로 부어있는 손윤화씨의 발(사진=손윤화씨 제공)
 
지난 2008년 황유미씨 사태 이후 반올림에만 211명의 노동자가 산재를 신청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직업병 의혹에 대해 재발방지를 약속한 이후에도 산재 위험은 줄지 않았습니다. 반도체 산업이 고도화될 수록 유해성을 파악하지 못한 채 더 많은 화학물질이 혼합돼 사용되는 상황에서, 과거 정규직 오퍼레이터나 엔지니어가 짊어졌던 산재의 비극은 하청노동자에게 번지고 있습니다.
 
*2회에선 하청노동자에게 더 취약한 반도체 공장의 노동구조와 함께 정부와 기업 자료를 통해 산재 피해자들의 질환과 업무 연관성을 역추적합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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