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버클리 연구진은 자체 개발한 AI 도구를 활용해 심전도에서 이전에 인식되지 않았던 신호를 발견했으며, 이를 통해 심장이 멈추기 전에 고위험군 환자를 더 정확하게 식별할 수 있게 되었다.(사진=Gemini 생성)
[뉴스토마토 임삼진 기자] 멀쩡하던 사람의 심장이 예고 없이 멈춰 사망에 이르는 '돌연 심장사(Sudden Cardiac Death)'. 매년 미국에서만 3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가는 이 침묵의 살인자를 예측할 수 있는 혁신적인 인공지능(AI) 기술이 개발됐습니다. 기존 검사법으로는 놓치기 쉬웠던 고위험군을 정확히 짚어내, 대규모로 생명을 구할 길이 열린 것입니다.
미국 UC버클리 공중보건대학 지아드 오버마이어(Ziad Obermeyer) 교수 연구진은 심전도(EKG)에서 돌연 심장사를 예측할 수 있는 미지의 신호를 발견해 내는 맞춤형 AI 모델을 개발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세계적인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 최신호에 실렸습니다.
맞춤형 AI 시스템 개발, 고위험군 선별 정확도 획기적으로 높여
돌연 심장사는 심장의 전기 시스템이 갑자기 오작동하면서 발생합니다. 노년층은 물론 건강해 보이던 젊은 운동선수에게도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체내 이식형 제세동기(ICD)를 삽입해 충격을 가하면 생명을 구할 수 있지만, 정작 어떤 환자에게 이 기기가 필요한지 미리 알아내는 것은 의료계의 고도의 '추측 게임'에 가까웠습니다.
연구진은 이 판도를 바꾸기 위해 방대한 데이터와 AI를 결합했습니다. 스웨덴의 통합 의료 시스템에서 확보한 44만 건 이상의 심전도 데이터와 사망진단서를 AI에 학습시켰습니다. AI는 건강한 사람, 위험군 환자, 그리고 향후 심장사로 사망한 사람의 심장 전기 파형을 철저히 분석해 패턴을 찾아냈습니다. 이후 미국 샌디에이고와 대만 타이베이 등 여러 국가의 환자 데이터를 통해 수년간 알고리즘의 유효성을 검증했습니다.
그 결과, 심장이 한 번 뛸 때 뿜어내는 혈액량을 측정하는 기존의 표준 임상 검사보다 AI의 예측력이 훨씬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기존 검사법으로 분류된 고위험군의 연간 돌연 심장사 발생률은 4.6%였으나, AI가 선별한 고위험군의 발생률은 7%에 달했습니다. 특히 AI는 기존 기준으로는 '저위험군'으로 분류되어 방치될 뻔했던 수많은 숨은 고위험 환자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의료기관에서 흔히 쓰이는 심전도 이미지만으로 이루어낸 성과입니다.
기존 검사법은 환자에게 복잡한 평가 과정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고위험군 판정을 받고 제세동기를 이식한 환자의 3분의 2가 실제로는 기기가 작동할 응급 상황을 겪지 않는 한계를 지녔습니다. 반면 진짜 위험에 처한 수천 명의 사람들은 자신이 위험하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매년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이기도 한 오버마이어 교수는 "이 문제가 비극적이면서도 AI에 딱 맞는 이유는 우리에게 이미 '제세동기'라는 확실한 해결책이 있기 때문"이라며 "미리 알기만 한다면 예방할 수 있는 안타까운 죽음이 너무나 많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이어 "AI를 통해 우리는 더 나은 의학적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장이 멈추기 전 환자에게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숨겨진 심장 생리적 기제까지 밝혀낼 것"
연구진은 이미 다음 단계에 돌입했습니다. 스웨덴, 대만, 미국의 의료 시스템과 협력해 병원 심전도 데이터베이스에 이 알고리즘을 도입하는 작업입니다. AI가 고위험군으로 분류한 환자에게는 의료진이 사실을 알리고, 웨어러블 패치를 제공해 심장 상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계획입니다. 일반인들이 자신의 위험도를 직접 평가하고 향후 AI 심전도 분석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연락처를 남길 수 있는 웹사이트도 개설했습니다.
이번 연구에 쓰인 양질의 데이터를 모으는 데만 꼬박 10년이 걸렸다고 밝힌 오버마이어 교수는 AI가 이끌 의학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내다봤습니다. 그는 "이러한 도구들을 통해 의학이라는 과학을 수행하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이 등장할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현실화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짜릿한 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임삼진 기자 isj202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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