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대지진 1년)⑤"딸아..아이 낳지 마"..지진보다 더 큰 '원전' 쇼크
여전한 방사는 공포.."10년 후 어떻게 될 지 몰라" 걱정
심각한 전력난..관련 기업 적자 행진
2012-03-11 06:04:00 2012-03-11 06:04:00
[뉴스토마토 김진양기자] 2011년 3월11일 진도 9.0의 대지진이 일본 동부를 강타했다는 충격도 잠시 이튿날 또 하나의 놀랄만한 소식이 이어졌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원자로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고 냉각시스템이 고장나 핵연료가 끓어오르며 연료봉이 녹아내린 것.
 
세계 2차대전 종전 시 원폭 피해로 핵에 대한 상처가 가슴 속 깊은 곳에 남아있는 일본인들에게 원전 사고는 지진보다 더 큰 정신적 '쇼크'를 불러왔다.
 
원전 반경 20킬로미터 안에는 사람의 출입이 금지됐지만, 이미 200명 가까운 사람들이 피폭당했다. 원자로를 식히기 위해 뿌려진 물은 지하수와 바다로 흘러들어 원전인근의 농수산물을 방사능으로 오염시켰다.
 
원전 사고는 인근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뺏고 일본 전역에 방사능 공포를 퍼트렸다. 나아가 원전 사용 중단으로 인한 전력난와 관련 기업의 적자 행진을 야기했다.
 
◇ '보이지 않는 적' 방사능..정든 고향 떠나
 
원전 사고가 발생한지 1년이 지났지만 후쿠시마 원전 인근에 살고 있던 주민들은 물론 일본 전역에서 방사능에 대한 경계심은 좀처럼 낮아지지 않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약 60km 떨어진 곳에 살고있는 오오카 요시코씨는 아직도 창문을 열지 않고 햇볕에 빨래를 말리지도 않는다. 딸에게는 아이를 낳지 말라고까지 했다. 모두 방사능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그는 "정부가 현재 방사능 오염 상태가 인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라고 했지만 "10년, 20년 후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니냐"며 걱정의 끈을 놓지 못했다.
 
현재 후쿠시마 원전 부근 반경 20km는 출입금지 지역으로 설정되어 원전 관리 인력 3000여명을 제외하고는 출입이 제한된 상태다.
 
허가 없이 마음대로 이 곳에 들어가면 일본 재해대책기본법에 의해 10만엔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형에 처해진다.
 
최근 일본 정부는 원전 사고 1주기를 맞아 일부 기자들을 대상으로 이 지역의 취재를 허용했다.
 
일본 산케이 신문의 한 기자는 "황폐하게 변해버린 오쿠마마치 입구에는 '원자력, 미래를 밝히는 신에너지'라는 팻말만이 남아 있었다"고 전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현재 정부와 도쿄전력의 대피령에도 11명의 주민이 고향을 떠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부분 노인인 이들은 원전사고 책임자인 도쿄전력 측이 수 차례 권유했지만 떠나기를 강력히 거부해 도쿄전력도 그들의 의사를 존중키로 했다.
 
이들을 제외한 약 8만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폐허로 변해버린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외지를 떠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전력공급 우려..정전 대란은 피해
 
원전 사고 이후 가장 크게 대두된 문제는 일본 내 안정적인 전력 수급이었다.
 
지난 6월 일본 정부는 전력 피크기를 기준으로 도쿄와 동북지방의 전력 부족분을 14.7%로 예상하고 여름 절전 목표치를 기존 전력사용량의 15%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산업계에서는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이유로 불만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당초 예상했던 심각한 정전 대란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여기에는 전기를 아끼기 위해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사용하고, 실내 온도를 28도 상향조정 하는 등 민간의 노력이 뒷받침됐다.
 
도쿄전력이 관할지역 내에서 충분한 전력공급이 가능한지를 알리는 '전기예보'를 시행한 것도 절전에 도움이 된 것으로 전해졌다.
 
◇ 日 전력회사 줄적자..도쿄전력은 국유화
 
원전 사고로 인한 운영중단에 일본 내 전력회사들은 줄줄이 적자를 면치 못했다.
 
도쿄전력, 간사이전력 등 일본의 5대 전력회사들은 지난해 결산결과 총 1조엔이 넘는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기업은 원자력 발전 정지에 따른 화력발전 연료비의 증가를 적자의 원인으로 꼽았다. 이들의 석유 사용량은 전년 동기대비 2.3배 증가한 958만㎘, 천연가스(LNG) 사용량은 1.3배 증가한 299만t으로 나타났다.
 
출처: 각사, 코트라글로벌
 
한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경영위기에 빠진 도쿄전력은 정부의 품으로 돌아가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일 아사히신문 등 일본 주요 언론에 따르면 에다노 유키오 경제산업성 장관은 도쿄전력에 1조엔의 공적자금을 투입할 것을 시사했다.
 
공적자금 투입 후 의결권의 3분의2 이상이 정부로 넘어가게 되면 도쿄전력은 사실상 국영회사로 전환되는 셈이다.
 
다만 도쿄전력은 의결권을 넘겨주는 것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부의 공적자금 지원 계획이 발표된 이후 도쿄전력 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도쿄전력의 지분의 3분의2를 장악한다는 것은 경영권을 잡게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는 도쿄전력 측이 원하지 않는 바"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주요 외신은 경영진들이 "정부의 도움 없이는 배상액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해 정부의 출자액을 받아들인 것으로 전했다.
 
◇ 글로벌 원자력 안전 경종..日 2기 외 두 폐쇄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청정에너지로 각광받으며 전 세계에서 붐을 이루고 있는 원자력발전 산업에도 경종을 울렸다.
 
지난해 3월 사고 발생직후 원전의 안전성 문제가 대두되며 독일은 1980년 이전에 건설된 7개 원전을 폐쇄할 것이라고 발표했고 유럽연합(EU)은 역내 원전 안전성 테스트를 실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중국 역시 새로운 안전 규정이 만들어질 때까지 신규 원전 승인을 보류한다고 밝혔으며 프랑스는 원자력 발전 비중을 기존의 75%에서 50%로 줄이겠다고 전했다.
 
원전의 직접적인 타격을 입은 일본의 발걸음도 바쁘다.
 
일본은 지난달 총 54개에 이르는 원전에 대해 스트레스 테스트를 진행했으며, 테스트에 합격한 2기를 제외한 나머지 원전의 운영을 모두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사고 발생 1년이 지난 지금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는 여전히 원자력을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보며 안전한 원전 건설을 강조하고 있다.
 
닐스 보모르 노르웨이 원자력안전 전문가는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진정한 후폭풍은 몇 년 후에나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일부 국가에서는 여전히 국민들의 원자력의 안전성과 관리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높다"며 "이로 인해 원전 건설 비용이 올라 향후 관련 산업의 최대 과제가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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