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사 경영체계 종식시킨다!"..SK 승부수
"수직에서 수평으로"..각사 '따로' 경영하며 위원회 통해 또 '같이'
2012-10-30 15:41:42 2012-10-30 15:43:26
[뉴스토마토 김기성기자] SK(003600)그룹이 수술대에 올랐다. 진단과 처방은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핵심은 지주사 중심의 현 경영체계에 대한 종식 선언이다. 지주사가 사실상 각 계열사를 관장하는 수직적 위계구조로는 더 이상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짙게 깔렸다.
 
때문에 각 계열사에 자율적 경영권한을 대폭 위임하는 동시에 각 사가 참여하는 위원회를 통해 상호 간의 시너지를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을 택했다. 수직에서 수평으로 이동함과 동시에 협의 체제는 좀 더 긴밀히 운용하겠다는 뜻이다.
 
혁신의 칼은 최태원 회장이 뽑아들었다. 결국 선택은 그의 몫이었다.
 
최 회장은 29일과 30일, 1박2일 일정으로 서울 광장동 아카디아 연수원에서 열린 ‘2012 CEO 세미나’에서 “각 사 중심의 수평적 그룹 운영체계를 통해 3차 도약을 해야 할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선언이었다.
 
최 회장은 “2002년부터 시작한 ‘따로 또 같이’ 경영을 통해 2005년 전 계열사의 흑자 전환을 달성했다”며 이를 1차 도약으로 규정했다. 이어 “2007년 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2단계 도약을 했다”고 말했다.
 
마지막 3단계 도약의 해법으로 “각 계열사 중심의 수평적 그룹 운영체계”를 제시했다.
 
최 회장은 그러면서 “지주회사 전환 이전부터 줄곧 고민해온 각 계열사 중심의 성장 플랫폼을 진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민이 줄곧 이어지고 있었음을 고백한 것이다.
 
최 회장이 제시한 방안은 ‘따로 또 같이 3.0’이다. 그룹 체계를 수평적 의사결정 구조로 혁신한다는 의미에서 이 같은 이름을 붙였다고 SK 측은 설명했다.
 
각 사 CEO들은 지난 9월부터 각 분과위원회를 통해 비공개리에 구체적 방안을 모색해 왔다. 다듬어진 안은 이번 세미나 주제로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 이후 각 사 CEO가 사별 이사회와 협의과정을 거쳐 이르면 11월말 새로운 그룹의 경영체계로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시행 시점은 내년 1월1일이다.
 
그렇다면 향후 SK그룹은 어떤 형태로 운영될까.
 
먼저 그간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던 지주사(그룹)가 그 권한을 내려놓는다. 최 회장의 결단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한 핵심관계자는 “지주사가 계열사를 장악했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권한을 분산시키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수직에서 수평으로의 전환”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대신 지주사는 그룹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위상과 역할이 축소된다. 더 이상 지주사가 각 사 위에 관여하고, 조정하고, 군림하던 기존의 수직적 의사결정 체계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전문경영인 체제에서 한발 더 나아가 권한까지 대폭 위임한다.
 
이 경우 각 사를 한데 묶을 컨트롤타워가 부재하게 된다. 때문에 위원회가 대안으로 제시됐다. 위원회는 5~6개 정도로 구성될 것으로 전해졌다. 각 사가 특성별 위원회에 참석해 그룹의 목표를 공유함과 동시에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유기적 관계를 맺게 된다고 관계자는 설명했다.
 
가령 글로벌 경영전략운영위원회의 경우 해외시장에서 뛰는 이노베이션, 하이닉스 등에서 CEO가 위원으로 참석한다. 이들은 자사의 이해를 강조하는 한편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타 사의 이익을 추구할 방향을 공동 모색하고, 이는 각 사의 경영지침이 되는 방식이다.
 
대신 위원회가 기존의 지주사 권한을 행사할 수 없도록 기구 성격을 철저히 제한한다는 방침이다. 한 관계자는 “상법상으로도 최고의사결정기구는 이사회”라며 “위원회는 법적인 기구가 아니다. 다만 테이블에서 각 사가 수평적으로 경영방향을 모색하는 참여의 장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그러면서 “기존 의사결정 체계와 방법을 종전의 지주사 중심에서 위원회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 3.0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각 사의 자율적 권한을 보장해주는 대신 이들을 유기적으로 묶을 위원회를 두는 게 새로운 경영체계의 본질이란 얘기다. 지주사의 폐해에서부터 논의가 출발한 만큼 기존의 지주사 성격은 전면적으로 벗게 된다.
 
결국 ‘따로’ 각 사를 경영하면서도 ‘같이’ 그룹을 목표를 추구하는, 그리고 운용방식은 철저히 수평적 구조에 기반을 둔다는 것이 이번 3.0의 핵심인 것이다.
 
SK는 이를 “각 사는 진화의 독립적인 주체로 ‘따로’ 경영을 강화하면서, 그동안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참여해 온 그룹(지주사)의 글로벌 성장전략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좋겠다는 관점에서 각 사가 중심이 돼 그룹 차원으로 구성하는 위원회 (설치)가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재계에서는 SK의 이번 변화를 '가히 혁명적 시도'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경제민주화의 핵심이 지배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재벌개혁에 있는 상황에서, 지주사 체제마저 수평적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SK의 의지에 모두들 혀를 내둘렀다. 동시에 여타 재벌그룹에 미칠 파장에도 촉각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현재 국내 10대 그룹 중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곳은 SK그룹과 LG그룹, 단 두 곳 밖에 없다. 삼성과 현대차, 롯데, 현대중공업 등은 모두 환상형 순환출자구조를 띠고 있다. 1% 내외의 지분임에도 불구하고 가공의결권을 바탕으로 사실상 전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정유(이노베이션)와 통신(텔레콤), 기존 양대 축에다 지난해 11월 반도체(하이닉스)를 편입하며 성장의 삼각편대를 완성한 SK그룹이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대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이번 CEO 세미나에는 최태원 회장을 비롯해 최재원 SK㈜ 수석부회장, 김창근 SK케미칼 부회장,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 김신배 SK㈜ 부회장, 박영호 SK차이나 부회장, 정만원 SK㈜ 부회장, 김영태 SK㈜ 사장, 구자영 SK이노베이션 사장, 하성민 SK텔레콤 사장, 이창규 SK네트웍스 사장, SK C&C 정철길 사장 등 SK 주요 경영진 30여명과 사외이사 20여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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