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원전立國의 꿈)④원전 명분 못 살리고 반핵운동만 키워
2013-11-07 16:36:05 2013-11-07 16:39:41
[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원자력발전소 비리의 가장 큰 피해자는 누구일까? 발전소가 운전을 멈추는 바람에 전력난을 겪고 언제 원전사고가 또 터질지 몰라 불안에 떤 국민이 가장 큰 피해자일 것이다. 어려운 여건에도 성실하게 일했지만 파렴치한 동료 때문에 원전마피아로 몰린 원전 공기업과 납품업체 직원 등도 피해자라면 피해자다.
 
정부도 원전비리 때문에 손해를 봤다. 원자력에 대한 국민 신뢰가 낮아지면서 반핵운동만 거세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부족한 지하자원을 고려하고 에너지자원의 자주개발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원전의 필요성을 줄기차게 주장했지만 원전사고 때문에 이제는 오히려 원전을 줄이자고 나서야 할 판이다.
 
◇'1차 에너지기본계획'과 '2차 에너지기본계획 민·관 워킹그룹 정책제안' 비교(자료=산업통상자원부)
 
실제로 정부는 최근 '2차 에너지기본계획 민·관 워킹그룹 정책제안'을 발표하며 2035년까지 원전 비중을 22%~29%로 유지하기로 했다. 5년전 1차 에너지기본계획을 세울 때 원전 비중을 41%까지 늘리겠다던 계획에서 크게 물러난 것. 아직 2차 에기본이 확정 안 됐지만 정책제안만 보면 정부의 원자력 정책은 국민적 신뢰를 단단히 잃은 셈이다.
 
◇원전 필요하다면서 관련 대책은 부실한 정부
 
굳이 옛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1986년)와 후쿠시마 원전사고(2011년) 등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원전에 대한 위험성은 일찌감치 알려졌다. 원자로의 핵분열을 이용해 전력을 생산하는 원전은 발전 과정에서 방사선을 방출하는데 인체가 방사선과 접촉할 경우 세포변이가 일어나 암이 발생하거나 유전자 변이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또 원전이 100만개가 넘는 부품으로 구성됐고 핵분열 과정은 폭발성이 높아 단순한 실수 하나라도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아울러 원자로를 식히는 냉각수가 바다나 지하수로 흘러들면 자칫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방사능 오염을 일으킬 수 있는데다 다 쓴 핵연료는 수만년 넘게 사라지지 않고 남기 때문에 핵폐기물을 처치하는 것도 문제다.
 
◇옛 소련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현장(上)과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현장(下)(사진=국제원자력기구(IAEA))
 
그러나 1978년 국내 원전이 처음 지어진 후 요즘처럼 정부의 원전 정책이 신뢰를 잃은 적은 없었다. 이에 에너지 전문가들은 "정부의 안이하고 관성적인 태도가 가장 큰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정부는 전력수요가 증가하고 대체에너지가 부족해 원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지만 각종 사고와 비리, 부정부패 등을 일으켜 국민 불안감만 키웠다는 것.
 
7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관계자는 "위험성이 큰 원자력 발전은 안전하지도 않고 장기적 대안도 아니다"며 "정부가 이런 사실을 인식하고 관련 대책을 마련한 후 원전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데 지금은 일단 발전부터 하고 보자는 식"이라고 우려했다.
 
원전 가동은 물론 건설에도 반대하는 반핵론자들이 주장은 더욱 분명하다. 환경운동가 출신인 정의당 김제남 의원은 "한국수력원자력 비리와 일본 후쿠시마 사고는 원전사고로 얼마나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며 "신규 원전 건설계획과 노후 원전 수명연장 계획을 즉각 철회하고 이를 2차 에기본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찬성과 반대 입장(자료=뉴스토마토)
 
김 의원은 또 "핵발전은 생명과 공존할 수 없다"고 전제한 뒤 "전력난과 원전 문제가 악순환의 고리를 반복하는 현실에서 벗어나려면 핵발전에만 매달리는 정부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에너지 산업과 경제, 문화 등 사회 전반에서 혁신적인 전환의 노력이야말로 이번 2차 에기본 수립에서 가장 중요한 전제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반핵운동 중심지 밀양 "정부 정책이 산으로 가고 있다"
 
최근 반핵운동이 가장 크게 일어난 곳은 밀양 송전탑 사태로 유명세를 겪는 경남 밀양시다. 신고리 원전3·4호기에서 생산한 전력을 경남과 수도권 일대로 송전하려면 밀양시 단장면과 산와면, 상동면, 부북면 등에 송전탑을 설치해야 하지만 정부는 송전탑 공사를 반대하는 주민의 반대로 8년 넘게 공사를 진척시키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송전탑 공사를 위해 공권력을 투입, 밀양 주민들의 생존권과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여론까지 생기면서 반핵운동은 점점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다. 뉴스토마토가 밀양에서 만난 주민들 중에는 원전의 필요성을 인정하며 송전탑 공사에 찬성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주민이 원전과 송전탑 공사를 반대하며 정부를 강하게 성토했다.
 
◇밀양 송전탑 공사 반대현장(사진=뉴스토마토)
 
밀양 주민을 비롯 밀양에서 반핵운동을 펼치는 시민단체들은 "정부 정책에 원칙이 없어 그야말로 정책이 산으로 가는 꼴"이라며 "지하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발전량에 비해 값이 싼 원전을 짓는다는데 그러면서 신재생에너지는 왜 개발을 안 하냐"고 지적했다. 이들은 "오히려 역대 정권 들어 신재생에너지 관련 예산만 자꾸 줄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 자료를 보면 정부는 1차 에기본에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11%로 늘리겠다고 했지만 정작 이명박 정부에서 신재생에너지 공급은 0.32%포인트 오르는데 그쳤다. 관련 예산 역시 2011년 1조34억원, 2012년 9982억원, 2013년 8512억원으로 계속 감소세다.
 
세계적인 탈원전 추세에서 우리나라만 원전 비중을 늘리는 점도 문제다. 종교환경회의 관계자는 "현재 우리나라에 23기의 원전이 있어 국토 면적당 원전 수는 우리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독일과 스웨덴, 일본 등은 원전을 폐기하고 있는데 우리만 탈원전 추세에 역행하는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데도 정부가 계속 원전을 짓는데 대해서는 정부와 발전업계의 유착관계를 제기했다. 종교환경회의 관계자는 "전력수요가 줄어 발전소를 덜 지으면 에너지 공기업과 발전사는 돈을 벌지 못하기 때문에 정부로 하여금 전력위기설을 퍼트리고 원전 등을 더 짓게 한다"며 "권력과 자본의 유착 앞에 국민의 생명이 위협당한다"고 질타했다.
 
◇에너지원별 발전설비용량 비중(2013년 7월 기준)(단위: %)(자료=전력거래소)
 
◇"원전말고 안전, 송전말고 밭전(田), 공사말고 농사"
 
"원전말고 안전, 송전말고 밭전(田), 공사말고 농사" 이게 무슨 말일까. 이는 지금 밀양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로, 탈원전을 외치는 사람들의 구호다. 반핵운동의 주장은 간결하다. 원전보다 안전성을 갖춘 에너지로 발전하고, 송전탑 설치한다며 농민의 멀쩡한 생활터전을 해치지 말고, 주민이 공사반대 농성보다 농사에 집중하게 해달라는 것.
 
밀양 송전탑 공사가 진행 중인 밀양시 단장면 평리마을 주민 김모씨는 "농사짓고 살기 바빠 원전이니 송전탑이니 하는 것은 아무것도 몰랐는데 알면 알수록 정부가 고약하고 괘씸하다"며 "원전과 송전탑 등에 대해 정확히 알리고 이런 공사가 있으니 이러저러하게 해달라고 먼저 물어봤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울분을 터트렸다.
 
정부의 5년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에너지 정책과 그에 따른 갈팡질팡 횡보, 눈앞의 수익에만 급급한 에너지 공기업과 발전사의 밀어붙이기 행태가 반핵운동을 키운 셈. 여기에 원전비리와 각종 사고까지 겹치면서 원전 자체를 부정하는 여론까지 일어났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관계자는 "일본은 한때 원전을 50기까지 늘렸지만 동일본 대지진 후 원전 관련 대책 부실과 정부의 무원칙이 겹치면서 국민 불안감이 증폭됐고 탈원전 여론에 불이 붙었다"며 "우리나라도 국민적 합의 없이 원전을 늘리다가는 일본 꼴이 나고 천문학적 액수의 사회적 비용을 물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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