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108배 사죄' 교장과 '난모른다' 대통령
2013-11-13 10:00:00 2013-11-13 10:00:00
[뉴스토마토 박수현기자] 울산의 한 사립고등학교 교장이 세간의 화제다. 같은 학교 교사 한 명이 그 학교에 다니는 자신의 딸 성적 조작을 위해 다른 교사 한 명과 모의했다가 적발된 것에 대한 사죄의 차원에서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108배를 올렸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한 기자는 한가지 의문에 사로잡혔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작금의 정치적 상황에 비추어 본다면 그 교장은 성적 조작 사건에 대해 사과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우선 경찰의 수사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겠다. 해당 학교 측은 두 명의 교사를 경찰에 고발했다.
 
그렇다면 교장은 자신이 최고 책임자로 있는 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수사 결과와 사법부의 판단을 지켜보자고 말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정권 국가기관들의 전방위 대선 개입 의혹에도 불구하고 "진행 중인 사법부의 판단과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는 입장인 것처럼 말이다.
 
또 교장이 문제의 교사에게 '당신의 딸을 위해 성적을 조작하라'고 지시했을 리도 만무하거니와, 이 사건을 사전에 전혀 인지하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이 가능하기에 사과할 필요는 전혀 없다.
 
박 대통령이 대선 전 국정원 등에게 여론을 조작해 선거에 개입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으니 문제 될 것도, 사과할 필요도 없다는 식이다. 교장이 굳이 사과해야 했는지 물음표를 달고 싶다.
 
ⓒNews1
 
딸을 위한 교사의 성적 조작에서 교장이 아무런 이익도 얻을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하면 사과를 한 교장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움을 느끼는' 윤동주 시인에 버금가는 도덕성의 소유자가 아닐까 생각된다.
 
적어도 "국정원으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않았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박 대통령보다는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가진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난 대선이 사실상의 관권선거로 치러졌다면 그러한 불법 행위로부터 이익을 얻는 사람은 박 대통령인데도 108배는커녕 사과의 한마디 없는데, 그 교장은 전혀 이득본 일도 없이 책임을 짊어졌다. 그러니 어찌 '양심의 과다'를 거론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감탄과 존경을 불러일으키는 두 가지 것이 있으니, 그것은 저 하늘에 반짝이는 별과 내 마음 속의 도덕법칙'이라고 한 독일의 철학자 칸트와 교장이 겹쳐 보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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