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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어주는기자)"'장애인' 우리와 다른 생각하는 '어린왕자'일 뿐"
10년간 발달 장애 아들 키워 온 류승연씨…‘차가운 시선’ 딛고 ‘함께 사는 세상’ 말하다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류승연 지음|푸른숲 펴냄
2018-04-05 18:00:00 2018-04-05 18: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2009년 9월 어느 날, 내 인생의 궤도는 180도 바뀌었다. 태어나는 순간 ‘에’ 라고밖에 숨을 쉴 수 없었던 아들은 자신의 인생뿐 아니라 엄마의 인생도, 가족의 인생도 모두 바꿔놓았다.”
 
발달 장애 아들 동환을 키워 온 류승연씨는 10년 전의 그 날을 이렇게 회고한다. 대학 졸업 후 자신감 있게 정치부 기자 생활을 하던 그에게 찾아온 ‘인생 2막’이었다.
 
애초부터 그에게 장애란 지나치게 낯선 ‘세계’였다. 받아들일 수 없는 ‘벽’이었다. 지하철 역에서 장애인을 마주치면 재빨리 걸음을 옮겼고, 전염병 환자라도 되는 듯 보았다. 말도, 행동도 자신과 사뭇 다른 그들에게 그는 그렇게 두려움을 느끼며 자랐다.
 
그러나 동환을 낳고부터는 모든 게 달라졌다. 아들이 장애인이란 이유로 가족 모두 차가운 시선을 감내해야 했다. 고개를 숙인 죄인처럼 살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점차 당당했던 자신은 지워지고 있었다. 과거 자신이 했던 행동들이 평생을 속죄할 수 없는 죄책감으로 느껴졌다.
 
신간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은 그런 그의 뒤바뀐 인생 경험에 대한 진솔한 고백이다. 동시에 여전히 장애에 우호적이지 않은 세상에 대한 '고함'이다. 아들 동환을 키우며 본 세상의 냉정하고 차가운 시선을 바로 잡기 위해 그는 펜을 들고 이 책을 썼다.
 
저자의 아들은 4살 때 지적 장애 판정을 받았다. 더 클 때까지 지켜보자던 의사로부터 “아깝게 됐네”라는 말을 들은 뒤였다. ‘좀 느린 아이’에서 ‘진짜 장애인’이 된 순간 저자와 남편은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무엇보다 마음이 조급했다. 이제 진짜 장애인이 되었는데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를 가서 어떤 치료들을 받아야 하는지 막막했다.”
 
저자는 처음 확진 판정을 받았을 때 조바심이 들었다고 술회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서울대 박사로 만들겠다는 꿈을 품고 방법을 찾았다. 백방으로 노력하면 사람 구실할 수 있다는 말에 비싼 돈을 내고 여러 치료실도 전전했다.
 
그러나 그런 목표는 아이 동환의 꿈이 아닌 엄마의 욕심이었다. 그리고 장애를 고쳐야 할 ‘병’으로 판단한 자신의 편견도 서려 있었다. 그보다는 아이의 행동 속도를 세심히 관찰하면서 함께 나아가는 방향이 좋았다. 윗도리 스스로 입기, 포크로 반찬 집어 먹기 등 현실적 목표를 세웠다. 전시회, 물놀이장을 가고 등산을 하며 사회 속에서 행복을 경험하게 했다. 이를 통해 저자는 장애가 ‘병’ 아닌 ‘하나의 특성’ 임을 알고 자신의 욕심을 내려 놓는다.
 
그러나 아이가 커가면서부터는 세상의 ‘차가운 시선’에 다시 맞서야 했다. 낯선 장소를 찾을 때 나타나는 ‘부적응 행동’(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발생하는 문제 행동) 때문이었다. 심리적 표현을 몸짓으로 나타내는 동환 만의 신호였지만 학교에서든, 공공장소에서든 눈초리는 따가웠다. 저자는 “유치원 때야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가 크지 않았지만 초등학생이 되니 모든 게 달라졌다”며 “그때 아이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에 매몰돼 필요 이상으로 남을 의식하며 고개를 숙이고 살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저자는 당차고 씩씩하게 세상과 ‘정면 대결’을 했다. 학교에서는 아들 이름으로 동환의 친구들에게 상황을 설명시켜주는 편지를 돌렸고, 동환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자립할 수 있도록 장애 정책에 관심을 갖기도 했다. 여러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지만 그는 그러한 과정 자체가 아들과 장애를 가진 모든 이들의 행복을 위한 일이라 믿는다.
 
책은 한국 장애 복지의 열악한 현실도 면밀하게 짚어내고 있다. 장애등급 평가의 모호한 기준, 장애에 대한 전문적 식견을 갖춘 장애 컨설턴트의 공급 부족, 맞춤 특수 교육이 시행되지 않는 공교육 시스템의 문제, 올바른 활동 보조인 제도 정착 등 자신의 경험에 기반한 실제 문제들이다. 그는 “모든 장애인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복지제도 확충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며 “장애인 정책에 관심을 갖고 사회의 인식 변화를 위해 노력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한다.
 
아들 동환은 엄마를 변화시켰다. ‘장애’에 편향적 시선을 내리꽂던 그를 세상에서 가장 작고 약한 존재로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세상의 힘 없는 존재들을 돌아보게 됐다. 그리고 그들이 결코 다르지 않음을, 우리와 같은 존재임을 깨닫게 됐다.
 
저자가 책 전반에 걸쳐 모든 장애인들을 ‘어린왕자’에 비유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저자의 말마따나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먼 우주에서 온 것인지도 모른다. 지구의 생활 양식을 천천히 습득한다는 점에서 우리와 속도만 다를 뿐.
 
“나는 바란다. 대한민국의 많은 어린왕자들이 무사히 지구에 안착할 수 있기를. 지구 적응에 실패해 ‘나 홀로 행성’ 안에 갇혀 버리거나 우주로 떠나 버리는 선택을 하지 않게 되기를. 그렇게 되도록 지구인들이 조금만 더 호의적인 시선으로 그들을 지켜봐 주기를. 나는 간절히 바란다.”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사진/푸른숲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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