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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분양제, 건설 협력사에 공사비 전가 우려
외상거래 많은 업태…자금부담 떠밀기 쉬운 구조
2018-04-10 17:17:31 2018-04-10 19:55:47
[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하도급에 비용 부담이 전가되기 쉬운 건설업 구조가 후분양제 우려를 키운다. 그러지 않아도 건설사는 하도급 외상 매입 비중이 높게 나타난다. 준공 후 분양에 따른 공사비 조달 부담이 하도급 자금난으로 연결될 소지가 다분하다. 제도 도입에 앞서 갑을관계 개선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토교통부는 이르면 다음달 후분양 로드맵을 발표하겠다고 10일 밝혔다. 지난해 말 정부가 내놓은 후분양제 구상은 공공부문 단계적 의무화, 민간부문 자발적 도입 시 인센티브가 골자였다. 이번에 보다 구체화된 내용이 담긴다. 먼저 오는 16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가 후분양 의무화 법안을 다룬다. 공정률 80% 이상에서 후분양을 의무화하는 법안이다. 현행 선분양에서 하자 문제가 많고 분양권 전매 투기도 심각하다는 판단에서 발의됐다. 이에 정부는 후분양제를 도입하되 민간에선 자발적 도입을 유도하는 차선책을 쓰기로 했다. 공사비를 저리에 대출해주거나 보증한도를 늘려주는 인센티브가 예상된다.
 
후분양은 그러나 건설업계 자금조달 비용이 커지고 부채 부담이 증가하는 우려가 있다. 가뜩이나 건설업종은 원도급과 하도급 간 대금지연, 장기 어음결제 등 문제가 지속돼왔다. 후분양에 따른 비용부담이 하도급에 전가될 만한 구조적 취약점이다. 일례로 건설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조경시설, 시멘트, 건자재 등을 전문 건설사(하도급)에 발주한다. 이 과정에서 하도급 원자재나 물품 구입 자금을 미리 지급(선급금)한다. 건설사로선 운전자본이 늘어나는 요인이다. 따라서 후분양 시 자금 조달이 어려우면 선급금 결제일을 늦추려 할 수 있다. 협상력이 취약한 하도급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특히 건설사가 하도급 원재료나 부자재를 외상으로 매입하면 매입채무로 잡힌다. 건설업은 전통적으로 매입채무가 많다. 지난해 자산에서 매입채무가 차지한 비중을 조사한 결과, 삼성전자가 3.01%, 현대차가 3.64%, SK하이닉스가 1.67%였다. 이에 비해 건설사는 대부분 두 자릿수다. 현대건설 12.74%, 대림산업 12.08%, 포스코건설 12.59%, GS건설 18.12%, 현대엔지니어링 14.72%, 롯데건설 12.29% 등이었다. SK건설은 21.39%나 됐다. 그나마 대우건설과 현대산업개발이 각각 4.96%, 5.46%로 낮은 편이지만 업종 특성을 벗지는 못했다. 삼성물산은 3.64%로 양호했는데 건설과 상사, 패션사업이 결합된 구조라 단순 비교가 불가하다. 10대 건설사 개중에는 1년을 넘긴 장기 매입채무도 군데군데 보였다.
 
건설사는 매입채무로 운전자본을 줄이지만 거래업체는 유동성 위기에 빠지게 된다. 후분양으로 이같은 불균형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전문건설협회 관계자는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건설사들이 후분양제에 뛰어들 경우 하도급에 시공 자금을 제대로 안 주던가 대금 지급을 대물변제할 가능성이 있다”고 문제제기했다. 건설사 간에도 양극화가 심해진다. 하도급 업체들로선 시장 파이가 줄어들 불안요소다. 협회 관계자는 “선분양에 비해 후분양은 자금력 있는 업체들만 시장에 참여해 물량이 줄어드는 만큼 하도급 수주난이 심화된다”고 우려했다.
 
김준환 서울디지털미디어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건설사와 하도급 모두 리스크를 부담하거나, 공사비가 삭감되는 등 현재 기성하는 구도에 변화가 있겠다”며 “대출이 어려워 공급량이 줄고 중견급 이하 건설사들이 어려움을 겪는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자금 조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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