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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권대원 해중실업 대표 "5·24로 막힌 대북교역 재개될 날 꿈꿔"
1990년대 한약재 시작으로 대북사업 시작…"북 민경련 통해서 아닌, 자유교역 이뤄져야"
북 평양대동강식품공장 등에 투자 경험…"아바이순대·절임식품 등 북한 내 생산" 복안도
2018-06-11 06:00:00 2018-06-11 06:00:00
[뉴스토마토 최한영 기자]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해제를 거쳐 남북 경제협력이 재개될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국책 연구기관들이 북한경제 관련 보고서를 계속 내놓고, 상당수 대기업 내에 남북경협 태스크포스(TF)가 설치되는 등 물밑 움직임도 활발하다.
 
1990년대 초반부터 대북사업을 해온 해중실업 권대원 대표 역시 최근 북한 관련 뉴스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한약재를 시작으로 농·임산물과 장류, 수산물 등 다뤄보지 않은 물품이 없는 권 대표지만, 이명박정부 출범 2년 후 내려진 5·24 조치로 대북 교역길이 갑자기 막히면서 수십만달러 규모의 설비와 된장 등 생산물품이 묶여있는 상태다. 권 대표는 “대북사업 초기만 해도 정부가 대북사업자들을 격려하고 행정적 지원도 많이 해줬다”며 “정부 약속만 믿고 사업을 한 결과 상황이 이렇게 됐다”고 토로했다.
 
문재인정부 출범 후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권 대표는 “문 대통령 취임 후많은 대북라인 등을 통해 연락이 오는 등 변화가 감지된다”고 설명했다. 4월 말에는 중국으로 급히 출장도 다녀왔다. 권 대표는 “대북사업 과정에서 북한 내에서 직접 생산하는 ‘생산단위’들에 실질적인 도움을 줘야 한다”며 “과거처럼 북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을 통해서가 아닌, 자유로운 교역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1990년대 초반부터 대북사업에 종사해온 권대원 해중실업 대표가 인터뷰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한약재 시작으로 장류·수산물…안다뤄본 품목 없어”
 
본래 한약 유통업에 종사했던 권대원 대표는 친지의 소개로 199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대북사업에 뛰어들었다. 권 대표는 “자연산 한약재인 ‘백봉령’(한반도 내에서 자생) 샘플을 1988년 서울올림픽 후 친지를 통해 우연히 받게 됐는데 품질이 아주 좋았다”며 “어렵게 반입한 백복령을 좋은 가격에 팔게 된 후 다른 한약재와 농·임산물, 수산물, 장류 등으로 품목을 넓혀갔다”고 설명했다. 1998년 항아리 50개 구입 비용을 지원한 것을 시작으로 평양대동강식품공장 등에 투자도 하게 됐다. 북측 소유 건물·토지에서 임가공(일정한 값을 받고 물품을 가공)으로 생산한 장류·김치를 국내에 반입하기 위해 설비를 지원하는 형태였다.
 
다른 물품들을 다루는 과정에서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1994년 전후로 쥐눈이콩(검은약콩)을 수입할 때 높은 관세가 부과되는 것을 모르고 들여온 것이 문제가 생겼다. 이를 조정받는 과정에서 감독 기관이 인천세관과 통일부, 농림부, 농수산물유통공사 등으로 바뀌었다. 문제를 해결하는데 수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이듬해 물수건을 들여오는 과정에서는 북측에 일거리를 더 많이 주기 위해 어느정도 조직된 원단이 아닌 원사(실)을 보낸게 탈이 됐다. “원사를 준 후 그쪽에서 직조해 온 것을 보니 너무 상태가 안좋았다. 중국산과 비교해 품질 차이가 몇 배가 나니 한국에서 아무도 안사는 것이다. 거래처에 겨우겨우 가격을 맞춰주고 일일이 배달까지 하면서 팔 수 있었다.”
 
북한산 문어를 들여올 때의 기억도 잊지 못한다. “중국 출장 중에 거래처로부터 ‘빨리 일본으로 들어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일본에 문어와 성게알이 와있는데 보고 사가라는 전화였다. 구정을 앞두고 있었고 국내 시세도 좋아서 괜찮겠다는 생각에 일본 하카다항으로 향했더니 북측 배가 정박 중이었다. 문제는 당시가 한겨울인데다, 김영삼 대통령 취임초기 일본 방문과 겹치며 일본 경찰들이 북한 화물선 앞을 24시간 지키며 물품을 내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선상에서 육안검사를 하고 계약을 했는데 이후 문제가 생겼다.” 냉동 상태였던 20kg 문어 한 박스를 녹이면 통상 17kg 전후로 무게가 나와야 하는데 권 대표가 매입한 것은 10kg도 되지 않았다. 북한 냉동시설이 좋지 않아 문어가 녹고 얼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문어는 질겨졌다. “돈을 벌기는커녕, 3년 후에 스페인 라스팔마스 수산물 업체에 톤당 3400달러에 산 문어를 1000달러에 팔고 말았다”고 그는 회상했다.
 
이같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사업을 이어갔다. 현재 주력식품이 된 된장·고추장 등은 중국 출장 중 북한에서 운영하는 중국 연길 소재 호텔 대표를 통해 우연히 접해보고 시작하게 됐다. “국내에서 토속적인 장맛을 보기 어려웠고, 있다 해도 너무 비쌌다. 맛을 보고는 ‘이거다’ 싶어서 시작하게 됐다.” 이후 허수림 북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베이징 총대표의 주선으로 대동강식품공장을 소개받아 설비투자가 이뤄졌다.
 
5·24 조치로 설비·제품 북한에 남아…‘북한상품을 어떻게 파느냐’ 경찰 조사도 수차례
 
그러던 중 날아든 5·24 조치는 말 그대로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었다. 이전부터 그런 조짐은 있었다. 2007년 말부터 권 대표는 생산한 된장의 유기농 검증을 준비 중이었다. “이를 위해 처음에는 한국농산물품질관리원 유기농검증팀의 방북을 요청했다. 그러자 북한에서는 ‘왜 남측 정부에서 우리 땅을 검증하느냐. 남측 정부 사람이면 안된다’며 반대했다. 우여곡절 끝에 세계유기농업운동연맹(IFORM)을 통한 검증은 허락돼 방북신청을 넣었는데, 통일부에서 몇 번이고 ‘곤란하다’는 답이 왔다. 당시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시절이었다.”
 
2008년 1월16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원회는 통일부를 폐지하고 ‘외교통일부’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는 이명박정부가 통일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됐다. 권 대표는 “이전까지 통일부에서 북한 책을 구해달라거나 사례집을 써달라는 요청이 올때마다 다 해줬다”며 “그런 것이 소용없었다. 수 차례 항의를 해도 안풀리더라”고 회상했다.
 
2년 후 2010년에는 5·24 조치가 내려졌다. “5·24 1년 전부터 통일부나 지인들이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말을 많이 했다”며 “6개월 전부터는 투자한 것을 빼라는 말까지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숙성이 필요한 장류 공정 특성상 권 대표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나마 갖고 있던 물건을 파는 과정에서 수 십차례 경찰 고발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5·24로 대북교역 길이 막혔는데 어떻게 북한 제품을 파느냐며 신고가 들어간 모양이다. 교역 중단 전 남아있는 제품들을 합법적으로 파는 것을 증명하는 서류를 보여줘도 그 때 뿐이었다. 전국의 경찰청 보안과에서 다 다녀갈 정도였다. 수 개월 전에는 바다건너 제주경찰청 보안과에서도 조사가 나왔다.
 
남북경협기업비상대책위원회·금강산기업협의회 소속 기업인들이 정부 대책마련을 촉구하며 철야 농성 중이던 지난해 1월6일 홍용표 당시 통일부 장관(왼쪽 다섯번째)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에서 여섯번째가 권대원 대표. 사진/뉴스토마토
 
이같은 고초에도 불구하고 권 대표는 대북사업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권 대표는 “주위 대북사업자들끼리 ‘우리가 다시 해야한다’는 말을 한다”며 “한 동료사업자는 몸이 좋지 않은 고령의 나이인데도 중국 단둥 출장을 다녀온다”는 말로 현재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함경도 아바이순대 등 다양한 전통 식품을 북한에서 임가공 생산하고, 대북교역이 막히면서 현재 중국에서 들어오는 절임식품을 북한을 통해 해야하는 등의 복안이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향후 대북사업이 재개되는 과정에서 권 대표는 대북사업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이전보다 자유로운 교역이 이뤄져야 한다는 희망을 강력하게 나타냈다. 권 대표는 “북한과 교역을 할 때 우리는 관세청에서, 북한은 민경련에서 원산지를 확인한다”며 “정부 당국자들을 통해 거래가 이뤄지면 실제 북한에서 물품을 생산하는 생산단위들에게 도움이 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지금과 같은 시스템으로는 교역성과가 일부 소수에게만 집중된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의 생산단위와 직접 거래가 이루어져야만 품질도 좋아지고 인도주의 차원이나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하는 이야기가 이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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