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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다야니 ISD소송' 끝까지 깜깜이…"뒤집기 힘들 것"
패소 결정 한달만에 대응 방향 공개…전문가들 "국민혈세 낭비하는 꼴"
2018-07-04 19:19:12 2018-07-04 19:19:12
[뉴스토마토 이종용·정초원 기자] 정부가 4일 이란의 다야니 가문이 2010년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과정에서 자산관리공사(캠코)에 몰수당한 계약금을 돌려달라며 제기한 '투자자-국가간 소송'(ISD)에서 패소하면서 항소심 성격인 취소 신청 등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금융권과 법조계에서는 사실상 단심제로 끝나는 중재판정에서 우리 정부가 이번 판결을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결국 국제 통상 및 소송 전문기관이 아닌 금융당국이 ISD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은 점이 소송 전략 수립에 실패한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ISD 소송과 관련해 정부가 '비밀주의'를 고수해온 깜깜이식 대응도 도마위에 올랐다.
 
다야니 ISD 소송은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기업들이 연쇄 부도를 겪자 정부는 부실채권을 정리하기 위해 ‘부실채권정리기금’을 조성했다. 조성 당시 금액 규모는 20조5000억원으로 자산관리공사(캠코)가 기금 운용 관리자로서 실무를 담당했다.
 
부실채권에는 대우전자도 포함됐는데, 신설법인(굿컴퍼니)과 잔존법인(배드컴퍼니)으로 나누는 과정에서 대우전자는 ‘대우일렉트로닉스’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신설법인에 대해서는 채권을 발행해 주식으로 변환하는 출자 전환을 진행하면서 대우일렉트로닉스의 주식도 생겨났다.
 
정부는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대우일렉트로닉스 지분 매각을 추진했다. 결국 2009년 11월에 들어서야 주채권은행이던 우리은행 주도로 지분 매각이 이뤄졌다. 2010년 4월 채권단은 이란의 다야니가가 대주주로 있는 가전회사인 ‘엔텍합’을 우선 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2010년 11월 채권단과 다야니는 5778억원 규모 매매계약을 체결했고, 다야니 측은 계약금 578억원을 채권단에 우선 지급했다. 그러나 그해 12월 채권단은 투자확약서 불충분을 원인으로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다야니 측은 서울중앙지법에 매각 절차 진행 금지 관련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대우일렉트로닉스는 2013년 동부그룹에 팔리게 됐다. 채권 매각이 종료되자 캠코는 2013년 2월 부실채권기금을 모두 청산하고 잔여 재산을 정부에 반환했다.
 
다야니 측은 2015년 9월 우리나라 정부를 상대로 국제중재를 제기했다.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이란 투자자에 대해 한-이란 투자보장협정(BIT)상 공정 및 공평한 대우 원칙 등을 위반해 손해를 입혔다는 주장이었다. 다야니는 약 935억원 상당의 보증금 반환을 요구했으며, 지난달 6일 국제 중재판정부는 캠코가 우리 정부의 국가기관으로 인정된다는 점 등을 이유로 대한민국 정부가 청구금액 935억원 중 약 730억원 상당을 다야니가에 지급하라는 판정을 내렸다.
 
우리 정부가 ISD에서 처음으로 패소하면서 정부의 소송 대응 과정이 부실했던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당장 ISD 대응조직 구성에 대한 적절성이 논란이다. 다야니가 ISD 소송은 금융위가 주무 부처인데, 금융위는 국제 통상 및 소송 전문기관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ISD 소송 패소 판결이 나온지 한달여만에 취소소송 등 향후 대응 방향을 공개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문제는 국민들이 국제 소송에서 정부가 잘 대응하고 있는지 판단하기에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는 점"이라며 "정부 판단의 논거나 근거가 되는 자료들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취소 소송은 이번 중재판정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미다. 정부가 취소 소송을 제기하면, 이번 판결에서 결정된 730억원은 취소 소송이 끝날 때까지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취소 소송의 길이 열려있지만 성공 가능성이 높진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취소소송은 법률 적용의 오류 등을 다투는 소송이 아닌, 중재판정 자체의 절차상 하자 등을 따지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송기호 변호사는 "국제중재는 기본적으로 단심제이기 때문에 확정이 된 상태로 봐야한다"며 "취소라는 것은 지극히 예외적으로 관할이 잘못됐다든지, 자격없는 중재인이 중재를 진행했다든지 등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 확정된 판결에 대한 취소 신청은 단지 그 집행만을 일부 유예하는 정도일 것"이라고 말했다.
 
최원목 이화여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취소 신청 절차는 절차상 명백히 잘못된 경우를 위해 마련된 것이고 일반적인 재심처럼 재판 결과를 뒤엎기 위해 만든 절차는 아니다"며 "이 상황에서 취소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정부가 승소 가능성도 없는데 소송비용만 계속 늘리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이종용·정초원 기자 yo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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