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시론)‘갑질 싸가지’ 와 방탄 변호사들
2018-11-05 06:00:00 2018-11-05 08:33:27
국선 변호사와 사선 변호사의 차이는, ‘의뢰인을 선택할 권리’가 있느냐 없느냐에 있다. 
 
변호사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한 달에 한 건도 수임 못하는 변호사들이 생겨나자, 수임 걱정 없이 나라에서 일정 금액을 지원 받으며 ‘시키는 대로’ 사건을 맡는 ‘국선 변호사’가 인기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의뢰인’을 선택할 권리가 없기에 자신들의 평소 신념이나 가치관에 맞지 않는 피고인들도 변호를 할 수 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변호란 의뢰인과 변호인 사이에 신뢰가 있고, 변호인이 의뢰인의 상황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공감해야 효과가 극대화되는데, 국선의 경우에는 의뢰인도 변호사를 선택할 수 없고, 변호사도 의뢰인을 선택할 수 없어 참으로 형식적인 관계가 되기 싶고, 의뢰인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어려워 변호를 하는 내내 심적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 ‘의뢰인을 내 맘대로 선택할 수 있는’ 사선 변호사는 경우가 조금 다르다. 사회적으로 비판 받는 엽기적인 잘못을 저지른 의뢰인이나, 나도 이해 못할, 혹은 나도 용서하고 싶지 않은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의 변호는 안 맡으면 그만이고, 나에게 무례하게 굴거나 인신 모욕적 행동을 하는 진상 의뢰인은 사절하면 끝이어서 특별히 심적으로 곤란할 일도 없다. 피해자의 심정으로 그들을 욕하고, 일반 국민들과 같은 마음으로 그들의 행동을 비난해도 내적으로 불편할 일이 없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선 변호사들도 ‘의뢰인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돈’이 없을 때이다. 변호사는 사건 의뢰가 있어야 먹고 살 수 있는데, 사건이라고 하는 것이 내가 원할 때마다 벌어지는 것이 아니고, 내가 맡고 싶고 내가 잘 처리할 수 있는 사건이라도 그 사건을 저지른 당사자가 기꺼이 나를 찾아 사건을 맡아달라고 부탁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직원 월급·사무실 경비·세금 등등 사무실 유지와 생계유지에 필요한 최소 금액이 정해져 있는데, 이 번 달에 한 건도 사건을 맡지 못했다면 ‘의뢰인’을 가려 받을 처지가 안 된다. 싫어하는 사건, 힘든 사건도 어쩔 수 없이 맡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사선도 국선과 마찬가지로 ‘의뢰인 선택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의문은, 이렇게 어쩔 수 없이 생계유지를 위해 사건을 맡아야 하는 경우 말고, 스스로 의뢰인을 선택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 궁핍하지 않은 변호사들이 어째서 소위 말하는 ‘갑질 싸가지’를 적극적으로 변호하고 사회정의 실현을 방해하는가에 있다. 
 
국민들이 분노하는 소위 말하는 ‘갑질 싸가지’들은, 강자에게는 비굴하게 아첨하고 약자에게는 온갖 패악을 다 떨며 군림하는 인간들이다. 사람으로서는 감히 생각도 할 수 없는 인격 모독적 범죄를 저지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인사들이다. 별별 나쁜 짓을 저질러 놓고도 돈이면 모든 것이 다 된다는 생각으로 일관하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천민자본주의의 상징인 ‘돈’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타인에 대한 이해나 배려가 없다. 오로지 자기가 기준이고 오로지 자기가 신이고 자기가 세상의 모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이런 나쁜 짓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로부터 돈을 받고 그들을 보호해주는 방탄 변호사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족 전체가 회사 돈을 마음대로 써가며 직원들에게 패악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큰 공분을 샀던 '대한항공 모녀들 사건', 입만 열면 ‘정신병자 XX’를 외쳐대던 대웅제약 윤재승 회장 사건, 미스터 피자·호식이 두 마리 치킨 등 프랜차이즈 재벌 회장들의 엽기 행각, 교촌에프앤비 상무 권모씨의 직원 폭행 사건 모두 ‘방탄변호사들’이 뒷배가 되어 무혐의 내지는 약하디 약한 최소한의 처분으로 흐지부지 끝나 버렸다. 대한민국 최고의 학벌을 가지고 수십년 동안 쌓아 온 최고의 법 기술을 다 동원해서 방탄변호사들이 활동해 준 덕분에 ‘갑질 싸가지’들은 법망을 피해 도망 다니고, 그 행동에 상응하는 처분을 받지 않게 되었단 말이다. 
 
최근 불거진 양진호 위디스크 회장 역시 대형 로펌의 유명 변호사가 방탄 역할을 하며 ‘전과’ 하나 없이 패악질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방탄 변호사들이 ‘의뢰인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올바로 사용하기를 바라고, 사회를 무시하고 약한 자를 괴롭히면 그에 상응하는 제대로 된 처벌을 받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노영희 법무법인 '천일' 변호사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