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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미스프랑스는 얼굴만으로 뽑지 않는다
2018-12-18 06:00:00 2018-12-18 11:27:50
프랑스는 한국과 달리 매년 12월에 내년도 미인을 미리 선발한다. 지난 15일, 2019년 프랑스 최고의 미인을 뽑는 미스프랑스 선발대회가 북부도시 릴(Lille)에서 열렸다. 대회시작 이래 89번째 미스프랑스 왕관을 차지한 후보는 23세의 미스 타히티 바이말라마 샤브(Vaimalama Chaves)였다. 폴리네시아어로 ‘광천수’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바이말라마는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뚱뚱하고 못생겼다는 조소를 받았고 몬스터(괴물)라 불렸다. 나는 오늘 참을성과 강인함을 키울 수 있었던 그 생활에 감사한다”며 “인생에서 승리자와 패배자가 있다. 나는 집안의 실패자가 되고 싶지 않다”라고 술회했다.
 
바이말라마는 다소 특이한 인생 역정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프랑스 미인 선발대회 자체가 이색적이다. 먼저 미스프랑스 왕관을 쓰려면 문화일반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각 지방에서 뽑힌 30명의 미인들은 왕관을 쟁탈하기 위해 이 시험도 긴장 속에 치러야 한다.
 
시험문제로는 시사, 문화일반, 추론 등의 분야가 출제된다. 미스프랑스 선발 총책임자인 실비 텔리에르(Sylvie Tellier)는 “이 시험은 미스프랑스 후보자들을 징계하거나 제재하려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입상자를 골라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실 이 시험은 최종결승 진출자 12명을 뽑는 결정적 자료로 활용된다. 만약 한 후보가 평균치를 넘지 못하고 형편없는 점수를 받았다면 그녀는 최종 12명에 낄 수가 없다. 따라서 이 시험은 30명의 미인들에게는 ‘서스펜스’와 같다.
 
텔리에르는 TV 매거진(TVMag)과의 인터뷰에서 이 시험에 대해 “다양함을 주기 위해 단답형문제와 주관식 문제로 구성된다. 올해는 시사문제가 5문항 출제됐다. BFM TV나 LCI 라디오를 들은 사람이라면 모두 맞출 수 있을 것이다. 호기심 많은 여인들이라면 이 시험은 그리 어렵지 않다…이 축제에는 어려운 과학적인 문제나 수학 문제는 나오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올해는 총 42문제가 출제됐고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지난 11월11일은 프랑스의 어떤 기념일이었나> <2016년 국민투표로 유럽연합을 탈퇴한 나라는> <2018년 11월17일 프랑스의 수상이 된 사람은> <현재 산불로 5만5000헥타르가 전소된 미국의 주는> <2018년 7월15일 러시아 월드컵에서 프랑스와 결승전을 치른 국가는> <‘나는 고발한다’로 드레퓌스 대위를 변호한 작가는> 이 밖에 ‘hippisme’의 의미와 문법, 문학, 철자, 동의어 찾기, 동사변화 등이 출제됐다. 마지막 문제는 50개의 단어로 자신의 가장 큰 꿈이 무엇인지를 불어로 작문하고 영어로 번역하는 것이었다.
 
시험을 마친 프랑스 미인들은 밖으로 나와 마음의 짐을 던다. 미스 샹파뉴 아르덴(Champagne-Ardennes)은 “나는 여기 오기 전 예상문제를 뽑아 프린트하고 스포츠, 정치, 시사 상식문제 등 항목별로 분류해서 외웠다”고 설명했다. 미스 누벨 칼레도니아(Nouvelle-Caledonie)도 “시험 준비를 철저히했더니 내게는 간단하게 보였다”며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시험은 미스 프랑스가 얼굴로만 선발된다는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훌륭한 문화일반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문화일반 상식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미인들이어야 미스프랑스의 왕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을 준다. 우리는 흔히 미인선발대회 하면 얼굴 예쁜 사람들이 출전해 수영복을 입고 몸매를 과시하는 것을 연상한다. 미스 누벨 칼레도니아의 말처럼 ‘얼굴로만 뽑는다’는 이미지가 너무 크다. 이런 선입견을 깨기 위해서는 한국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문화일반 시험을 도입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최근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출전자들을 보면 미모뿐만 아니라 학력도 걸출하다. 과거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육체적인 아름다움만 갖추면 미스코리아가 된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 이런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미스코리아 대회를 좀 더 지적인 문화공간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프랑스처럼 문화일반 시험을 치를 수 있어야 한다.
 
올해 프랑스에서 출제된 문제들을 보면 그다지 까다로워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이 시험은 미인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이라면 적어도 최근 국내외에서 벌어지는 정치사회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소양을 갖추라는 주문을 하고 있다. 한국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이렇게 운용한다면 지금보다 더 큰 의의를 제공하고 대중의 이목을 끌지 않겠는가.
 
미스코리아 대회가 62년 역사를 거치는 동안 변화를 거듭해 왔지만, 그래도 아직 이 대회는 화려한 퍼포먼스에 집중하는 경향이 크다. 그저 해마다 열리는 식상한 대회가 아닌, 전 국민의 이목을 끄는 축제의 장으로 승화할 수 있도록 미스코리아 조직위원회는 이제부터라도 색다른 변신을 모색하기 바란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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