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의 러시아 재발견 26화)이르쿠츠크 역사 산책
입력 : 2020-03-23 08:00:00 수정 : 2020-03-23 08:00:00
어느 크리스마스 날 저녁, 낫과 망치와 별이 그려진 소련의 국기가 내려가고 러시아의 삼색 국기가 올라갔다. 지난 세기 인류는 사회주의 혁명의 성공을 경험했지만 그 세기가 저물 무렵 이 첫 실험의 실패도 목격해야 했다.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USSR)이 사라지고 새로운 러시아가 역사에 등장했을 때, 타국의 사람들은 충격과 호기심으로 이 세계사적 사건을 지켜보았고 러시아인들은 혼돈과 기대, 희망과 절망의 시간 속에 던져져 있었다. 강산이 두세 번 바뀔 동안 커다란 변화를 겪어온 러시아인들, 그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1993년, 사람만 기억하다
 
1993년 1월 할머니의 수프를 제안한 소녀가 이들 중에 있다. 뒷편 오른쪽에 보고야블렌스키 성당이 보인다. 사진/필자 제공
 
기억이란 참 흥미롭다. 인터넷이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세상이 된 지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닌데, 2019년 여름의 이르쿠츠크에서 스마트폰으로 길을 찾고 사진을 찍다 보니 예전에는 도대체 낯선 곳을 어떻게 다녔을까 자문을 하게 된다. 1993년 1월 이르쿠츠크에서 여행안내서를 들고 다니며 거리의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이번과 같은 장소를 찾아간 적이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것이다. 무엇을 보러 갔는지도 잊었고 ‘사진기’로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도 잊었지만, 어렵게 찾아낸 그 사진들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과의 만남만큼은 기억 속에 따뜻하게 남아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준 감동 때문일 것이다. 
 
삐오네르 궁전을 나와 또 한참을 걷다가 길에서 만난 소녀들과의 대화가 그랬다. 그들 중 한 명이 말했다. “배가 고파요? 우리 할머니는 요리를 잘 해요. 할머니가 집에 맛있는 수프를 끓여 놓았는데 같이 가서 먹을래요?” 새해 연휴라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아 내가 종일 굶었다는 사실을 알고 제안한 것이었다. 물론 따라가서 민폐를 끼치진 않았지만,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한 끼 챙겨주려는 마음이 어찌나 고마웠던지! 그때 그 재잘거리던 사랑스러운 소녀들은 2019년 여름 그 또래 소녀의 어머니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새로운 만남들
 
2019년 여름의 보고야블렌스키 성당. 사진/필자 제공
 
‘1661년 이르쿠츠크의 창건자’로 안가라 강변에 세워진 카자크인 야콥 빠하보프의 동상을 지나고 ‘모스크바 개선문’도 지난다. 오래전의 그 겨울처럼, 보고야블렌스키(‘주의 공현’, 동방 정교회에서는 ‘성삼위일체’) 성당과 스빠스까야(구세주) 교회도 지난다. 그리고 그때도 방문했으나 기억하지 못한 즈나멘스키(성모 표징) 수도원을 다시 찾았다. 시베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 중 하나로, 1689~1693년 사이에 처음 세워졌을 땐 목조 건물이었지만 18세기 중반 석조 건물로 바뀐 여성수도원이다. 
 
이곳을 찾는 외국인들에겐 아마도 데카브리스트의 지도자였던 트루베츠코이의 아내와 자녀들의 묘가 관심을 끌 것이고, 정교 신자인 러시아인들에겐 이르쿠츠크와 네르친스키의 제2대 주교였던 성 이노켄티(요안 네루노비치, ?~1747)의 묘가 중요할 것이다. 그밖에도, 18세기에 쿠릴 열도와 알류샨 열도를 탐험한 상인 셸리호프의 무덤과 2015년에 이곳에 묻힌 러시아 농촌소설의 대표적 작가이자 환경보호론자인 발렌찐 라스뿌찐(1937-2015)의 무덤도 발견할 수 있다. 
 
데카브리스트 트루베츠코이의 아내 예카테리나 트루베츠카야와 세 자녀의 무덤. 사진/필자 제공
 
하지만 나는 수도원에 들어가기 전 집시 모자인 27세의 크리스티나와 다섯 살 된 그녀의 아들 이고르를 먼저 만났다. 노보시비르스크에서 태어난 그녀가 이 수도원 앞으로 오기까지 아마도 여러 일들이 있었으리라. 정교회 사원 앞에서 구걸하는 이들을 보게 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1993년 1월에는 보지 못했고 흔한 일도 아니었다. 수도원을 나올 때는 다시 22세의 젊은 엄마 아냐를 만난다. 그녀의 팔에는 11개월 된 둘째딸 까쨔가, 옆에는 네 살 된 큰딸 스네좌냐가 서 있다. 아냐는 러시아인 어머니와 우즈베크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이르쿠츠크 토박이다. 이런 만남은 이후 예카테린부르크의 성당들 앞에서도 계속되었다. 각자 다 사정이 있고 사연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모습과 관련해 90년대 초에 친구 스베따가 보였던 반응이 생각난다. 어느 날 우리는 모스크바의 길거리에서 아기를 안고 구걸하는 젊은 여성을 보았다. ‘사회주의 종주국이었던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건지...’ 무거운 마음으로 탄식하는 내 앞에 친구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어떻게 엄마가 아기를 이용해 구걸을 할 수 있지? 재교육센터에 보내야 해!” 처음엔 놀랐지만 생각해 보니 친구의 반응이 납득됐다. 그녀가 교육을 받았던 소련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눈앞에 벌어진 것이다. 게다가 나의 어쭙잖은 동정심보다는 장기적인 대책 마련의 차원에서 친구의 말이 더 일리가 있을 수 있었다. 물론 더 이상 그런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즈나멘스키 수도원 입구. 왼쪽의 남성 신자가 들어가기 전 절을 하고 있다. 나는 오른쪽에 보이는 크리스티나 모자와 수도원 방문에서의 첫 대화를 나누었다. 사진/필자 제공
 
즈나멘스키 수도원에서 마주한 역사
 
이 수도원의 뜰에는 데카브리스트인 베차스노프, 빠노프, 무하노프의 비석도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데카브리스트 봉기는 1825년 12월 러시아 제국의 귀족 청년 장교들이 입헌 군주제 또는 공화제를 수립하고 농노 해방을 비롯한 러시아의 개혁과 근대화를 실현하고자 일으킨 혁명적 사건을 가리킨다. ‘데카브리스트’는 러시아어의 12월, 즉 ‘데카브릐’에서 따왔다. 이들은 1812년 말 러시아 원정에 실패하고 퇴각하는 나폴레옹 군대를 추격해 파리에 입성한 후 여러 달 동안 머물면서 프랑스와 서유럽의 자유주의 사상을 접하게 된다. 이에 자극을 받아 귀국 후 비밀 결사 조직을 만들고 러시아의 개혁을 도모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이후 시베리아로 유형을 간 그들이 이르쿠츠크에 새로운 문화를 꽃피웠다는 사실 역시 잘 알려져 있다.
 
즈나멘스키 수도원의 뜰에서 한 수도사가 성경책을 들고 왕복을 반복하며 수행을 하고 있다. 사진/필자 제공
 
그런데 즈나멘스키 수도원에 비석이 보이는 데카브리스트 베차스노프와 무하노프의 무덤은 1930년대에 유실되었고 빠노프와 앞서 언급한 여행가 셸리호프의 무덤은 손상되었다고 한다. 소비에트 연방 최초로 수력 항공 서비스를 제공했던 수상 비행기의 기지가 수도원의 성벽 안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즈나멘스키 수도원은 1920년대에 수리점과 차고로 사용되기도 했다. 항공 기업 ‘이르쿠츠크 수력 공항’은 1928년에서 1941년까지 이르쿠츠크~보다이보와 이르쿠츠크~야쿠츠크 노선을 운항했다. 1945년 수도원 내의 교회와 개별 건물들이 신자들에게 반환되었지만, 1953년까지 8개의 항공기 격납고와 2개의 항공기 수리점이 그곳에 있었다.
 
정교 문화와 역사적 관점에서는 수도원과 데카브리스트의 묘지가 훼손되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었을 것이고, 사회주의 조국의 건설과 번영을 추진하는 입장에서는 수상 비행기의 운항으로 인민의 생활 여건을 개선했으니 자랑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사실, 수상 비행기 기지를 이 수도원에 건설한 이유는 반(反)종교적 선전 때문만이 아니라 부두와 철도가 가까워 통신의 근접성 때문이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현재의 즈나멘스키 수도원에는 1990년 이래 이르쿠츠크의 초대 주교인 성 이노켄티(이반 꿀치쯔키)의 유물도 보관되어 있다. 
 
1930년대 중반 '이르쿠츠크 수력 공항'의 모습. 사진/위키미디어 커먼스
 
내일을 위한 건설 속에 침수되는 어제의 삶
 
러시아 할머니 두 분이 몹시 경건하게 성 이노켄티(요안 네루노비치) 주교의 묘를 참배하고 있다. 독실한 정교 신자들로 보인다. 나는 수도원 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러시아인 단체 방문객을 이끄는 안내자의 설명에 귀를 기울인다. 그룹이 이동하려는 찰나 재빨리 양해를 구하고 이해 못한 내용을 그녀에게 질문했다. “이노켄티(네루노비치) 주교의 무덤은 2001년에 이곳으로 이장됐어요. 브라츠크 수력 발전소가 건설되면서 침수될 위기에 놓였었거든요.” 브라츠크 수력 발전소는 이르쿠츠크 주의 도시 브라츠크의 안가라 강에 있는데, 1954년부터 준비를 시작해 1957년 첫 번째 고전압 송전선이 완성되었다. 
 
성 이노켄티(요안 네루노비치) 주교의 묘를 참배 중인 두 할머니 중 한 분이 이마를 대고 기도하고 있다. 사진/필자 제공
 
이노켄티(네루노비치) 주교는 성직자들을 위한 학교와 많은 교회들을 세운 인물로, 그가 이르쿠츠크에 있는 동안 동부 시베리아에서의 선교 사업이 크게 증가했다. 그는 시베리아 토착민들에게 정교를 전파하기 위해 현지 언어로 설교할 것을 제안했던 사람이다. “발렌찐 라스뿌찐이 당시의 일에서 모티프를 얻어 쓴 소설이 <마쪼라와의 이별>(1976년)입니다.” 그녀가 덧붙였다. 나중에 찾아보니 그녀의 말대로 이 소설은 마쪼라 마을이 수력 발전소 건설로 인해 수몰될 위기에 처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마을이 물속에 가라앉고 마을 전체가 새로운 곳으로 이주를 준비하는 상황 속에서 전통적인 정신적 가치들도 그와 함께 침수되는 것이다.
 
막간을 이용해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들려 준 여행가이드는 그런데 슬라브 러시아인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이 부랴트-러시아 혼혈이라고 밝혔다. “부랴트어는 모르지만 나는 내가 부랴트인이라고 생각해요.” 그녀의 말이다. 통성명도 하지 못한 채 그녀는 곧장 자신이 맡은 그룹으로 달려갔다.
 
소설 '마쪼라와의 이별'을 쓴 작가 발렌찐 라스뿌찐의 묘. 러시아에서는 망자에게 짝수의 꽃을 바치고 산 자에게는 홀수의 꽃을 선물한다. 사진/필자 제공
 
박성현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역사학 박사(percepti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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