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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시론)하늘 아래 당당한 공복을 만나고 싶다

2017-01-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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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재벌 총수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기득권 세력의 반격을 의심하는 이들도 많다. 그럼에도 주목할 것은 김기춘, 조윤선의 구속이다.
 
평생 따뜻한 곳에서 귀족적 삶을 즐기던 당대의 ‘엘리트’들은 그렇게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문화예술인을 피아로 구분하여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집행했던 음험한 권력 농단의 결과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아직은 무죄 추정을 받는 피의자 신분이지만, 관련자들의 확정적 진술과 객관적 물증에 비추어 범죄사실의 증명이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그 수많은 시간 동안 거듭된 부인과 교묘한 말솜씨로 ‘법꾸라지’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 이들이기에, 동정을 받지도 못하는 것이 딱할 뿐이다.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사리를 분별하지 못한 채, 여전히 이상한 장외변론에 열중하며 일체의 법적 절차에 비협조로 일관하는 피의자 및 피소추인 신분의 권력자는 아직도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혐의로 진행되는 탄핵심판 절차에 확실한 증거를 통해 직무수행의 정당성과 적법성을 입증하기 보다는 그저 지연전술로만 일관하는 현실이 무엇보다 확실하게 그의 거짓을 반증하고 있다.
 
헌재에 증인 39명을 무더기로 신청한 것은 속이 뻔히 보이는 술책이다. 게다가 청와대가 미르·K스포츠재단과 관련한 핵심 인물에게 검찰에서 특정한 진술을 하라고 회유했다는 증언까지 잇따라 나온다. 국회 청문회와 검찰 조사에서 청와대에 유리하게 거짓말을 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게다가 청와대가 작성한 대응문건에는 먼저 검찰 조사를 받은 이들의 진술내용이 그대로 담겨 있고, 이를 기초로 답변할 내용까지 보냈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박근혜 정권에게 헌법과 법률은 그저 장식물에 불과하거나,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갖다 붙이는 견강부회식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 있을까. 사정이 이러하니 그간 청와대 직원들이 일관되게 보인 도피나 지연출석, 요지부동의 허언들의 배경에 누가 있는지 능히 짐작이 갈밖에.
 
하물며 행세깨나 했다는 이들이 권력에 빌붙어 저지른 범행을 참회하기는커녕, 교육부의 감사나 국회 청문회 과정은 물론, 구속되기 전후를 불문하고 막무가내식 부인으로만 일관하는 모습은 가히 엽기적인 수준이었다. 대학의 총장과 학장을 지냈다는 이들의 도덕성은 학생이 끌려나오는 영상을 보면서도 일체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던 표정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니 오늘날 소위 엘리트라 자부하는 지식인과 관료의 자세에 대하여, 그 추하디 추한 모습에 대하여 옛 성현의 말씀을 반추할 수밖에 없다.
 
사생취의(捨生取義)라는 말이 있다. 맹자가 “삶도 내가 원하는 바요, 의(義)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이 두 가지를 모두 얻을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하겠다.[生亦我所欲也 義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라고 가르쳤던 데서 비롯되었다. 구차한 삶 보다는 의로운 죽음을 택하며 값진 목숨을 바쳤던 의인(義人)들이, 특히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국가를 되찾아주기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투사와 민주열사들이 오늘의 상황을 본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회의와 분노를 넘어 허탈감과 자괴감에 허허로운 웃음을 지을지도 모를 일이다.
 
뿐만 아니다. 맹자는 “왕·관리·백성, 위 아래가 저마다 이익을 추구하면 나라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 반면 군주가 어질면 모두가 어질게 되고 군주가 의로우면 모두가 의롭게 된다.”라고 하면서, “누구나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 마음으로 정치를 행한다면 천하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움직이는 것처럼 쉽게 다스릴 수 있다.”, “인(仁)은 사람의 마음이자 편안한 집이요, 의(義)는 사람이 가야 할 바른 길이다.”라고도 했다. 세월호 참사를 놓고 보인 대통령의 모습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왕정시대에도 당연한 도리를 현대 민주국가의 지도자가 배반했으니 반드시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만 한다. 
 
조선의 실학자 최한기 선생은 『인정(人政)』이란 저술을 통해 “惟以至公無私 立於光天和日”이란 말로 관료의 자세를 설파했다. 오직 지극히 공평하여 사사로움이 없는 마음으로 빛나는 하늘, 화창한 태양아래 당당히 서라는 당부이다. 수천년을 거슬러도 오늘의 참담한 현실은 너무도 부끄러운 것, 이제 우리도 빛나는 하늘 아래 당당히 설 수 있는 공복(公僕)을 만나고 싶다. 분명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다.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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