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덕훈·박혜정 기자] 경제와 민생 살리기가 새 정부의 가장 큰 국정 과제로 부상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경기부양 정책과 더불어 이번에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력 집중 현상을 완화하고 재벌 총수나 경영진을 견제할 수 있는 지배구조의 개선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한국경제의 고질적 병폐인 기업 지배구조 개혁을 통해 글로벌 경영 패러다임을 도입해야 모든 이해관계자가 기업과 함께 성장하는 토대가 마련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수출 경쟁력이 특정 품목에 쏠려 있는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서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도 더 폭넓게 이뤄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서울시내에서 본 마천루 모습.(사진=뉴시스)
“지배구조 개선, 지속가능 주춧돌”
대다수 경제전문가들은 세부 방법론에선 차이를 보였지만 총수 중심의 지배구조에서 반복돼 온 문제점을 이제는 타파해야 한다는 데에선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습니다. 특히 모든 이해 관계자의 가치를 존중하고 함께 성장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라는 글로벌 패러다임 전환에 맞게 새 정부의 기업 지배구조 선진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박종현 경상국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4일 출범할 새 정부는 기업 지배구조 선진화 정책의 기조를 단기적인 주주 가치 제고를 넘어 ‘지속 가능한 이해관계자 가치 창출’에 맞춰 재정립해야 한다”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 경영을 강화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모든 이해관계자가 기업 성장의 결실을 고르게 나눌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박 교수는 특히 지배구조 선진화 정책의 핵심 의제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행을 위한 법적 근거를 통합적으로 마련하고 민간 대기업 노동이사제 전면 확대, 사외이사 독립성 강화 등을 제안했습니다. 또, 지배주주의 사익 편취에 대한 초과이익환수제 도입 검토와, 이해관계자 소통 채널의 법적 지위 강화를 통한 투명성 확보, 사회적 책임 경영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등도 의제로 꼽았습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개혁 방안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한국 자본시장과 경제 전체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중요한 주춧돌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총수의 이해관계와 일반 주주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총수 중심의 지배구조부터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의견도 나옵니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이해상충이 되는 사안에 대해 일반 주주가 사전적으로 동의를 할 수 있게 하는 사전 동의권과, 사후 손해배상 청구권, 그리고 국민연금이 행동주의 펀드에 자금을 더 많이 위탁해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원칙)를 강화하는 것이 중점 추진해야 할 사안”이라며 “차기 정부가 이에 대한 종합 계획을 갖고 5년 동안 추진할 수 있도록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배구조 개선 방안으로는 ‘상법 개정안’이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꼽혔습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서 총수 일가가 승계 과정에서 기존 전체 주주의 이익과 무관하게 계열사를 분할·합병하고 주식 교환 비율을 정하는 등의 행동을 막아야 한다”며 “이후 가이드라인과 기준을 만들어 현실에 정착시키는 것이 현재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대기업 경제력 집중’…개선 시급
지배구조 개선 외에도 대기업 중심의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기 위한 재벌개혁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지정한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자산 5조원 이상) 92곳의 지난해 매출은 2007조7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 2549조1000억원의 78.8% 규모입니다. 특히 삼성·SK·현대자동차·LG·롯데 등 자산 기준 상위 5대그룹 매출액은 1025조원으로 지난해 한국 경제 생산의 약 40%를 차지했습니다.
정호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경제정책국 부장은 “이번 대선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근본적인 재벌개혁에 관련해서는 인식이 많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며 “새 정부가 기존 기업집단 출자구조를 개선하는 등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나 불공정 거래를 해소해야 우리 산업 내에서 다양한 경쟁 구도가 마련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앞서 경실련은 기업집단 출자구조를 모회사-자회사 2층 구조로 제한, 금산분리 강화,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 방지를 위한 디스커버리(특허침해 입증을 위한 증거수집) 제도 도입, 소수주주 다수결 동의제(MoM Rule) 상법 도입 등을 새 정부 핵심 개혁과제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학과 교수도 지속적 경제성장을 위해 재벌개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입니다. 그는 “재벌 기업이 자회사에 사익 편취를 위한 일감 몰아주기를 하니 새로운 사업이 클 수 없고 새로운 도전 기업이 생기지 못하고 있다”며 “제조업의 저성장으로 향후 새로운 성장 동력이 나와야 하는데 그러려면 재벌개혁을 통한 대기업 중심의 경제력 집중이 해소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경제력이 집중된 재벌이 사회적·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종의 ‘경제권력’ 상태를 해소해야만 신산업 동력이 마련된다는 것입니다.
경기 평택항에 수출용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사진=뉴시스)
수출 경쟁력, 특정 품목 쏠림 심해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에 가장 큰 위기로 작용하고 있는 글로벌 통상 환경 변화에 따른 정책 조언도 더해집니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관세 대응과 관련해 ‘협상의 연속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현재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 정책이 제동이 걸리는 등 변수가 생기고 있는데, 우리로서는 나쁘지 않다”며 “이 시간 동안 관세 여파를 차분히 조사·분석하고 비관세 조치에 대해 일정 부분 양보할 부분들을 국민들에 설득하는 시간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아울러 “글로벌 환경 변동성이 우리 경제에 더 큰 영향을 미치기에 새 정부가 통상 어젠다를 좀 더 가다듬는 정책 노력이 절실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수출 경쟁력이 너무 특정 품목에 의존도가 높은데 주력 제품이 10년이나 지금이나 거의 차이가 없다”며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다변화하해야 하는데 K푸드, K뷰티 등 특히 중소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정부가 비관세 장벽 길을 허물어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배덕훈·박혜정 기자 paladin7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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