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주무기관 한국거래소, 책임은 안진다
특례상장 33%…연 30억원 매출액 미달
이노그리드, 상장 번복 사태에도 책임전가만
2024-06-26 06:00:00 2024-06-27 15:17:36
 
[뉴스토마토 김보연 기자] 한국거래소가 다음달 코스닥 기술특례 상장을 앞두고 있던 이노그리드의 상장 예비심사 승인을 취소하면서 회사의 소액주주들과 벤처금융 및 전문투자자들의 피해가 우려됩니다. 이미 예비심사에 통과한 기업에 대해 한국거래소가 심사 효력을 불인정한 것은 1996년 코스닥 시장이 문을 연 이래 처음 있는 일입니다.
 
업계에서는 파두의 뻥튀기 상장 사태 이후 기술특례상장 요건으로 심사를 신청한 기업들에 대해 거래소의 심사 기조가 보수적으로 바뀐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이를 두고 '구더기(파두 사태)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격'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기술특례 상장제도 자체에 대한 비판 목소리도 큽니다. 엄격한 상장 제도를 통과했다고 믿고 투자한 투자자들만 손해보는 시스템을 금융당국이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한국거래소가 다음달 코스닥 기술특례 상장을 앞두고 있던 이노그리드의 상장 예비심사 승인이 취소하면서 소액주주들과 벤처금융 및 전문투자자들의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기술특례상장 33% 상폐 위기
 
실제 지난해말 연결 기준 지난 2019년 기술평가특례, 성장성특례로 상장한 기업 21곳(이전상장 제외) 중 33.33%에 해당하는 7개 기업이 매출액 30억원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최근 사업연도 매출액 30억원 미만은 한국거래소 코스닥 시장 관리종목 지정 사유 및 퇴출 요건 가운데 하나인데요. 이들은 5개 사업연도 미적용이나 유예 기간은 지난해로 끝났습니다. 이같이 상장사들의 실적 부진으로 투자자들의 피해가 늘고 있지만 정작 상장을 시켜준 거래소는 뒷짐만 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를 두고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는 "거래소는 밸류업을 명목으로 시장을 띄우는 데만 상장 요건을 다양화시켜서 빠른 상장을 시켰는데 그 과정에서 놓친 점이 상당히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이어 "알고도 지금까지 뒀으면 범죄고 몰랐다고 해도 면피가 되는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감사원 등에서 소상히 들여다 볼 시점이라고 판단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지난 18일 상장예비심사 승인 취소를 당한 이노그리드의 경우 회사 안팎으로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올해 1분기 기준 완전자본잠식 상태인 이노그리드는 상장을 통해 모은 자금으로 재무구조를 개선할 계획이었지만 좌절됐습니다. 회사에 투자한 소액주주와 VC들도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됐습니다. 
 
이노그리드는 증권신고서를 7차례나 정정하면서 상장 심사 기간에만 1년 가까이 소요된 바 있습니다. 기술특례 상장 기준이 까다로워진 탓에 오랜 심사기간을 거친 것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감독원에 이어 거래소로부터 철퇴를 맞은 것 입니다. 거래소가 상장 예심 효력을 불인정하는 결정을 내린 건 최대주주의 지위 분쟁 관련 사항을 심사 신청서에 누락했다는 이유입니다. 
 
700명 소액주주·VC 투자 회수 어쩌나 
 
파두 사태의 후폭풍이 이번 사태로까지 이어지자 700여명에 가까운 소액주주와 벤처캐피탈의 투자금 회수 방안이 막히는 것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실제 지난해 말 기준 이노그리드에 투자한 1%미만 소액주주는 모두 691명으로 이들이 갖고 있는 주식은 105만7057주로 전체 주식의 26.91%에 달합니다. 더불어 지난 2022년 60억원 규모의 시리즈 B단계에서 JB인베스트먼트, 한국투자증권, 엘에스증권, 오픈워터인베스트먼트 등이 투자에 참여하면서 이노그리드가 유치한 투자금도 모두 161억원이나 되는데요. 이들의 투자금 회수에 차질이 생길 우려가 커졌습니다.
 
이노그리드 측은 최대주주의 지위 분쟁 관련 사항이 회사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크지 않은 상황이라고 항변합니다. 캐나다에 가 있는 전 최대주주는 지분을 전혀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래소, "파두 사태 이후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
 
이와 관련 거래소도 큰 문제가 아니라고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데요. 오히려 본인들의 효력정지 처분에 대해 이노그리드가 재심 신청한 것을 두고 괘씸죄를 물을 것이란 전언입니다.  
 
사진은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김명진 이노그리드 대표가 발표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이노그리드 제공)
 
거래소 한 관계자는 "재심 여부 결정도 거래소 권한이기 때문에 (재심을 통해 심사 승인을 하는 것이) 효력 불인정에 대해 인정하는 것이라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중요 사항 기재 누락이 별거 아닌 것으로 치부된다고 해서 거래소가 재심을 통해 심사 승인을 다시 해준다는 것은 원칙에 위배한다"고 전했습니다.
 
업계에선 거래소의 심기를 거스른 이노그리드의 대응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재 누락에 따른 효력 불인정은 표면적인 이유"라며 "재심 신청해도 통과 안될 개연성이 높은데 이노그리드 측이 눈치없이 일을 키우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투자자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IPO를 목표로 비상장주에 투자한 투자자들 입장에선 초유의 승인 불인정 사례가 치명적"이라며 "단순 중요사항 누락이면 기재 정정을 통해 개선을 하면 되지, 효력 정지는 너무 과한 조치로 보이며, 파두 사태 이후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김보연 기자 boye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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