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전염병처럼 번지는 전쟁 기술의 시대
2025-06-20 06:00:00 2025-06-20 08:46:02
전쟁은 늘 진화해왔다. 그러나 지금의 진화는 그 속도가 다르다. 한 나라가 새롭게 도입한 전쟁 기술은 곧 다른 나라의 손에 들려 상대방의 목줄을 겨누는 무기로 곧바로 복제된다.
 
지난 6월 1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비행장에 1인칭 시점(FPV) 드론을 활용한 공습으로 전략폭격기의 3분의 1을 무력화시켰다. 피해 추산만 9조 원을 넘는다. 그런데 불과 보름 뒤, 6월 13일 이스라엘이 똑같은 방식으로 이란 방공미사일 기지를 타격했다. 전투기들이 테헤란 공습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바로 FPV 드론이 적 방공망을 사전에 무력화한 덕이었다. 두 작전은 ‘스파이더웹’과 ‘라이징 라이언’이라는 코드명을 갖고 있었지만, 실체는 놀라울 만큼 닮았다.
 
우선, 정교하게 융합된 정보전과 특수작전이다. 우크라이나는 상업위성과 오픈소스 정보, 은밀한 정찰 인력을 결합해 1년 넘게 공습을 준비했고, 이스라엘 모사드는 이란에 잠입해 고위 지휘관의 동선을 파악한 뒤 내부에 드론 발사 기지를 구축했다. 자국이 아닌 상대국의 심장부에서 출발하는 무인기. 이것이 오늘날 전쟁의 ‘뉴 노멀’이다.
 
무엇보다 FPV 드론은 전장의 판을 바꿨다. 러시아의 전략폭격기들이 주차된 채 파괴되고, 이란의 미사일 발사대가 붕괴되는 데 쓰인 이 저비용 무기는, 드론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1인칭 시점’의 조종과 정밀 타격 능력을 갖췄다. 조용히 침투해 소리 없이 타격하는 이 드론은 더는 장난감이 아니라 전장의 주인공이 되었다. 제어 가능한 자살무기이자, 적의 판단을 마비시키는 교란 장치로도 활용된다. 우크라이나는 이 무기로 러시아 공군을 후방 방어로 내몰았고, 이스라엘은 방공망을 마비시킨 뒤 침투로를 열었다.
 
이런 작전은 단순한 군사적 성공에 그치지 않는다. 상대국의 의사결정 체계를 무력화하고, 고위 지휘관을 숨게 만들며, 핵심 자산을 도피시킨다. 이는 단지 미사일이나 드론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전의 물리화’라 할 수 있다. 전쟁은 더 비정규적이고, 비재래식적이며, 심리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 모든 과정이 소수의 특수부대, 몇 개의 드론, 그리고 전자정보만으로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군집 전술(swarming tactics). 드론과 정보, 특수작전이 병렬적으로 작동하며 순간의 우위를 만들어낸다. 이는 미군이 수년 전부터 강조해 온 미래전 개념이지만 이제는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이라는 ‘작은 국가들’에 의해 실전에서 증명되고 있다.
 
문제는 이 기술이 중간 규모 국가들에 의해 효과가 입증되면서, 전쟁 기술의 문턱이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더 작은 국가, 더 빈곤한 세력, 심지어 테러 조직까지도 이 기술을 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전쟁의 문이 열렸고, 그 문은 닫히지 않는다. 미국은 이미 특수부대(SOF)와 저비용 자율무기체계를 장거리 정밀공격에 통합하려는 작업에 착수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기술을 통제할 정치의 부재다. 지금 정치권력자들은 이 신기술에 중독되고 있다. 멀리서 버튼 하나로 적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유혹, 병력을 보내지 않고도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는 환상, ‘희생 없는 승리’라는 판타지가 확산되고 있다. 이는 위험하다. 기술은 인간을 보호하는 수단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인간의 파괴 본능을 강화하는 플랫폼이 되고 있다. 드론은 어느덧 인간의 눈과 손을 대신해 적을 겨눈다. 정치가 그것을 통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조장하는 시대. 전쟁은 기술이 아니라 정치의 산물이어야 한다는 교훈은 무색해졌다.
 
이제 전쟁은 전염병처럼 번진다. 내일은 또 어디가 표적이 될지 알 수 없다. 전쟁은 복제되고, 모방되고, 증식된다. 문제는 그 기술에 탐닉하는 권력자의 심리다. 전쟁 기술은 지금, 호전성을 강화하는 가장 강력한 플랫폼이 되어가고 있다. 평화는 기술이 아니라, 기술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의지에서 시작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드론이 아니라, 더 깊은 숙고다.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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