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미국 3시, 중국 9시, 한국 1시"
2025-06-26 06:00:00 2025-06-26 06:00:00
"왜 중국을 집적거려요. 그냥 '셰셰' (하면 되고), 대만에도 '셰셰' (하면 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2024년 총선 시기인 3월22일 충남 당진에서 한 발언. 6·3 대선 선거운동 기간인 5월13일에도 대구에서 "(당진에서 내가) 틀린 말 했나. 외교는 언제나 국익 중심"이라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념적 친중은 아니다. 2022년 2월8일 중국 어선 불법 조업을 두고 "격침해버려야 한다"고 한 적도 있다. 2016년 12월20일에는 사드 시한부 배치론을 폈다. 각각 '반중 정서'와 '보수층 지지'를 의식한 결과겠지만 이념적 친중이라면 할 수 없는 말들이었다. 당진 발언에도 정치·경제적 전략이 깔려 있었다. 문재인정부 시절엔 반중 정서가 고조된 반면 윤석열정부 시기엔 중국을 경시해 경제가 망가졌단 세간의 원성이 자자했다. 더구나 당진은 서해안에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셰셰'를 외교론보단 경제론으로 들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발언이 '동아시아에서 다들 잘 지내보자' 수준을 벗어났다는 데 있다. "대만해협이 어떻게 되든 뭔 상관 있나" "대만과 중국이 싸우든지 말든지"란 입장은 문재인정부 노선과도 다르다. 문 전 대통령은 2021년 한미 공동선언에서 중국 비판을 감수하며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를 언급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양안 관계는 물론 우크라이나에서도 손 떼자는 식이었다. 최소한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은 명확히 반대하는 것이 한때 원조를 받던 '신흥 중견 국가'의 도리인데도 말이다. 
 
'중국(러시아)의 비위는 거스르지 말자'란 기조는 실용주의도 될 수 없다. 자유 진영 신뢰만 저버리는 게 아니다. 중국(러시아)도 거저 굴러오는 한국에겐 사의와 대가를 전하지 않는다. 지난 10여년간 한국 외교 악순환을 복기해보라. 중국 전승절 기념식 참석, 한일 지소미아 종료 등으로 미국과 자유 진영은 한국의 진의를 의심했다. 그러다 '현타'가 온 한국이 핸들을 꺾으면 중국은 더 크게 화를 냈다. 한국은 양쪽에게 기회주의 국가로 낙인찍혔다. 소위 균형 외교로는 양손의 레버리지를 다 놓치고 균형도 잡을 수 없다. 
 
한국은 어차피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한다. 미국의 사드 추가 배치나 장거리 미사일 배치를 유도하지도, 쿼드나 오커스 같은 역내 안보 협력체에 가입하지도 않았다. 우크라이나에도 살상 무기는 지원하지 않았다. 중국과 러시아가 계속 한국의 이런 노선을 활용하겠다면 한국이 자유 진영 일원이기에 그 역할이 있단 이치부터 인정해야 한다. 한국도 자신이 자유 진영이기에 중국이나 러시아에 이득을 줄 여지가 있다고 내세워야 한다. "미국이 3시고 중국이 9시면 우리는 1시나 1시 반."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2021년 발설했던 명언이다. 
 
새 한국 정부 노선에 세계적 이목이 쏠린 가운데 이 대통령은 나토 정상회의 불참을 결정하고 위 실장이 대신 참석하기로 했다. 사유는 '중국(러시아)과의 관계'가 아닌 '중동 정세 악화'이고, 일본과 호주 정상도 불참하기에 부담은 얼마간 덜었다. 다만 거대한 숙제는 남아 있다. 한국이 자유주의 국제 질서보다 지정학적 논리에 기울어진 것 같단 의심을 해소하며, '오목'을 벗어나 ‘바둑‘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은 '동맹'뿐 아니라 '자주'에도 필요한 일이다. 미국을 누그러뜨릴 힘도 결국 자유주의 국제 질서에서 나온다. 여기서 겉돌면 미국에 '할 말은 하는 것'도 힘겨워진다. 1시쯤에는 있어야 한다. 
 
김수민 정치평론가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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