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난 난민심사제②)공무원 재량에 맡겨진 '난민통역인' 선정
통역인 "공무원이 전화나 메신저로 연락해 통역 요청"
전문가 "개인에 통역인 사용 권한 맡겨, 권력 비대칭"
'공공통번역 기관이 통역인 선발·배정' 사례 참고해야
법무부 "공정한 통역인 선정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
2025-07-07 06:00:00 2025-07-07 09:32:42
[뉴스토마토 강예슬 기자] 난민심사전담 공무원과 난민전문 통역인(통역인) 사이에 발생한 성비위 사건을 계기로 공무원 재량에 맡겨진 통역인 선정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현재는 공무원이 난민전문 통역인 명부를 보고, 자신의 재량으로 함께 일 할 통역인을 선택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공무원이 사적 감정을 갖고 특정 통역인을 계속 호출하는 게 가능한 겁니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통역인 입장에서는 공무원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 애쓸 수밖에 없어, 불합리한 요구를 받아도 거절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4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난민면접 조사 때 어떤 통역인을 부를지는 난민심사전담 공무원의 재량으로 결정됩니다. 
 
법무부는 난민심사 절차의 공정성과 전문성을 제고하겠다는 취지에서 20220년부터는 외부 전문기관의 교육·평가를 통과한 이들에게 '난민전문 통역인' 자격을 주는 인증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통역인에게 일감을 분배하는 과정에선 공정성·투명성 담보를 위한 제도가 아직 미비해 보입니다.
 
(이미지=연합뉴스)
 
A씨는 난민심사전담 공무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지난해 12월 사실상 해고됐습니다. A씨는 "출입국 직원들은 어떤 통역인을 부를지 스스로 선택한다"며 "대부분은 일정이 미리 주어지지만, 갑작스럽게 호출되는 경우도 있다. 전화나 메신저로 연락이 온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저와) 동일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통역인이 더 있었지만, 누구와 더 편하게 일할 수 있는지 따라 공무원 마음대로 호출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통역인 선정엔 객관적 기준이 없다는 주장입니다. 
 
이는 통역인 간 일감 불균등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익명을 요구한 난민 활동가는 "통상적으로 통역일은 '가는 사람'에게만 많이 가는 것 같다"며 "일을 하고 싶은데 못 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통역인뿐 아니라 공공서비스 통역 영역에서는 공무원(혹은 전문직)에 있는 분과 권력의 비대칭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습니다.
 
이지은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교수도 "통역인들의 일감을 추첨제가 아닌 이상 실무자가 직접 연락하는 현실에서 통역인이 늘 (실무자에게) 잘 보여야 하는 부담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심지어 수사기관 중에서도 가끔씩 여성 통역인들에게 추근대는 사례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난민심사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개별적으로 통역사를 컨택해서 일을 주는 방식이 문제"라며 "통역인이 통역을 잘하든 못하든, 어느 정도의 업무처리 능력이 있건 없건,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정할 수 있는 셈"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시간제 호출로 사람을 부리면서 이 사람을 쓰고 말고 할 권한을 개인 공무원 재량에 맡겨놓은 상황을 개선하고, 통역인의 고용안정 방안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2018년 9월16일 오후 서울 보신각 앞에서 난민인권센터 등 주최로 열린 '난민과 함께하는 행동의 날' 집회에서 한 이집트 난민 여성이 자신의 아이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연주 난민인권센터 변호사는 "면접실 안에서 난민심사전담 공무원과 통역인은 서로 견제해야 하고, 견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2018년 난민면접 조작 사건처럼 두 사람이 공모할 수 있는 관계가 됐을 땐 난민 신청자에게 불리한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고 은폐될 수 있는 위험성이 분명히 있다"면서 제도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난민면접 조사는 난민으로 인정을 받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관문이자, 난민 인정 여부 결정하는 주요 근거로 사용됩니다. 공정하고 투명한 면접 조사를 위해선 참여하는 난민심사전담 공무원과 통역인의 관계가 독립적이어야만 합니다. 
 
제도 개선 방향에 대한 구체적 제언도 나옵니다. 이지은  교수는 "호주 같은 경우는 국가가 운영하는 공공통번역 기관 'TIS National'가 있다"며 "통번역 자격과 인증을 받은 사람은 TIS National에 등록되고, 경찰이나 법원이 통역인 요청을 하면 해당 기관에서 통역사를 수배해 보내주는 방식이다. 특정인에게 잘 보여서 내가 그 사람한테 계속 일감을 받는다는 건 불가능한 시스템"이라고 설명했습니다. TIS National은 호주 내무부 산하 기관으로, 국가 번역·통역 인증기관(NATTI)에서 인증을 받은 통역인 풀(pool)을 관리, 통역 수요에 따라 적합한 통역사를 선발·배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난민전문 통역인 선정은 통역인 위촉 당시 통역능력에 따라 부여받은 등급과 전문가 평가결과 등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며 "통역인 활용은 법무부에서 작성해 배포하는 통역인 명부를 참고해 통역인 언어, 통역능력, 통역인 거주지 등을 고려해 거점기관 난민심사전담 공무원이 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통역인 등의 활용실적 관리를 위해 난민심사 거점기관은 매 분기별 실적을 본부에 보고하고 있으며, 법무부는 앞으로도 공정한 통역인 선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강예슬 기자 yea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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