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보유한 공익재단은 사회공헌 사업을 위해 설립된 비영리 조직이면서 동시에 지주사 지분율을 보유하며 사실상 그룹의 지배구조를 좌지우지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경영권 분쟁의 마지노선으로 공익재단이 존재감을 드러내 오너 일가의 경영 승계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공익재단은 특정 개인이나 기업의 재산 출연으로 설립됐더라도 오너 일가나 기업 집단의 사익이 아닌 공익적 목적으로 활동해야 하고 투명하고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합니다.
본지 기획 시리즈에서는 유한양행 '유한재단', 녹십자그룹 '목암생명과학연구소', '미래나눔재단', '목암과학재단', 대웅 '대웅재단' '석천나눔재단', 종근당 '고촌재단', 한미그룹 '임성기재단' '가현문화재단' 등 5대 제약사가 소유한 공익재단이 그룹의 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분석했습니다. 특히 의결권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공익재단을 지렛대로 삼아 오너 일가가 경영권을 승계하거나 지배력을 유지 강화하는 데 이용한다는 지적이 타당성을 갖는지도 검증했습니다. (편집자주)
종근당 사옥 전경 (사진= 종근당)
[뉴스토마토 이혜현 기자] 소액주주 권한과 지주사의 주주환원을 강화하고 기업 경영 투명성을 요구하는 상법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제약·바이오 기업도 지주사 지배구조 선진화 이슈가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기업지배구조와 공익재단은 밀접한 관계에 있죠. 공익재단은 기업의 수익을 사회공헌활동에 재투자해 다양한 공익활동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너 일가의 경영권 방어를 목적으로 우회적인 지배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입니다.
지주회사인
종근당홀딩스(001630)를 중심으로 핵심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종근당그룹도 공익법인인 종근당고촌재단이 사회공헌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고촌재단은 현재 지주사인 종근당홀딩스 지분을 5% 미만으로 소유하고 있어 의무 공시에 해당하지 않아 지분 관계가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고촌재단은 핵심 계열사인
종근당(185750) 지분 5.11%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공익법인이 지주사 지분율을 가지고 지배구조에 핵심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타 기업과 비교하면 영향력이 크지 않습니다. 종근당 관계자는 "고촌재단의 종근당 보유 지분은 7.85%에서 5%대로 감소했다"며 "종근당그룹은 출연기업 보유 지분을 축소하고 공익사업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지배구조의 불투명성은 기업 가치를 하락시키는 주요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한국ESG기준원이 공개한 ESG 등급 평가 결과 지배구조 부문에서 종근당홀딩스는 A등급을 받았습니다. 지난해 제약 지주사 중 지배구조 부문에서 A등급 이상을 받은 곳은 종근당홀딩스를 포함해 세 곳뿐이었습니다. 한국ESG기준원의 등급 평가는 총 7단계로 나뉩니다. 최상위 등급인 S와 매우 우수 A+, 우수 A 등급이 상위 등급으로 분류됩니다. A등급은 비교적 우수한 지속가능경영 체제를 구축하고 있으며 체제 고도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한 상태를 의미하죠. 2023년 지배구조 등급 평가에서 B+ 받은 종근당홀딩스는 지난해 한 단계 등급이 상승했습니다.
자사주 보유율, 지주사 5%, 종근당 4.5%…소각 부담 적어
종근당그룹은 종근당홀딩스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지주회사 체제입니다. 종근당홀딩스 최대 주주는 33.73% 지분을 소유한 이장한 회장입니다. 이장한 회장 외 정재정 씨 등 오너 일가 5인이 13.89%의 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장한 회장의 지분율과 합산하면 오너 일가가 보유한 지주사 지분율은 47.62%로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종근당홀딩스 지분 5.82%를 가지고 2대 주주에 오른 정재정 씨는 이장한 회장의 부인이자 현재 고촌재단 이사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종근당홀딩스는 종근당(25.89%), 종근당바이오(39.11%), 경보제약(43.41%), 종근당건강(51.00%) 최대 주주에 올라 주요 자회사를 지배하고 있죠. 오너일가 지배력을 우회적으로 강화하는데 이용되고 있는 자사주 비율은 타 제약사보다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분기 기준 종근당홀딩스 자사주 지분율은 5.00% 종근당은 4.54%입니다.
최근 여당에서는 자사주 취득 후 1~3년 이내에 소각하는 내용의 상법 일부 개정 법안들이 발의됐습니다. 발의된 법안들은 당 내외 의견을 수렴한 뒤 당론 법안을 마련해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이 통과해도 자사주 보율 비율이 비교적 낮은 종근당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전망입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한 후 이를 강제로 소각하도록 하는 제도를 의미합니다. 자사주 소각은 주주 가치 제고와 주가 안정화 목적으로 활용됩니다. 하지만 기업 경영권 방어와 자금 조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기업 입장에선 자사주 소각 의무화 입법이 부담스럽죠. 현행법은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지 않고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공익목적사업비 지출 비율 74.9%…장학사업 집중
지난해 고촌재단 사업 비용으로 지출된 금액은 46억1574만원입니다. 이 중 74.9%에 달하는 34억6003만원을 공익목적사업에 사용했습니다. 전년 동기보다 전체 사업비용은 1.81% 소폭 증가했지만, 공익목적사업 비용은 0.63% 소폭 감소했습니다. 재단의 장학사업은 공익목적사업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공익목적사업 항목별 지출 내역을 살펴보면 장학사업 9억710만원, 장학시설 설치 및 운영사업 6억6334만원, 고촌기념사업 7억1237만원으로 공시됐습니다.
같은 기간 사업 수익 40억4026만원 중 공익목적사업에서 거둔 수익은 총 23억2850만원으로 전체 수익의 58%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공익목적사업 수익에는 배당수익 12억5892만원, 이자수익 6억548만원, 기부금수익 4억6410만원 등이 포함됐습니다.
고촌재단 이사회는 독립성 유지를 위해 재단의 의사결정기관인 이사회를 외부 전문가 중심으로 구성했고 출연기업 보유지분 축소를 통해 공익사업 확대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이어진 총 4개 관의 장학시설인 고촌학사 설치 사업을 꼽을 수 있습니다. 2010년 서울지역 내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지방 출신 대학생들의 주거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자, 사회적 요구에 맞는 공익사업 시행을 위하여 출연기업 지분 매각을 통해 무상기숙사 사업을 시행했죠.
종근당그룹 관계자는 "앞으로도 출연기업에 대한 지분이 지배구조 영향력 행사에 이용되지 않고, 사회적 요구와 시대정신에 맞는 더 큰 공익사업 시행에 활용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습니다.
이혜현 기자 hyu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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