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만 줄이면 된다"…소비자 선택권 나 몰라라
2025-07-31 06:00:00 2025-07-31 13:57:08
 
[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정부와 은행이 가계대출 총량 관리에 전방위적으로 나서면서 금융소비자 선택권은 훼손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부동산 가격을 누르겠다는 목적으로 가격·비가격적 방법을 총동원해 대출 수요를 억제하고 있는데요. 한때 금융당국이 차주 부담 경감 차원에서 추진해온 대환대출 플랫폼 등이 무용지물이 된 데다 기준금리 인하기에 고정금리 대출을 과도하게 강요하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집니다. 
 
저금리 대출 갈아타기 막혀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6·27 부동산 대책이 시행된 이후 한 달이 지난 가운데 은행권은 가산금리를 높이는 방식으로 대출 문턱을 높여 가계대출 수요를 억제하고 있습니다. 
 
대출금리를 올리는 것뿐만 아니라 비가격적인 조치를 통해 대출 문턱을 실질적으로 높이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수도권 주택 보유자들의 주담대 '갈아타기(대환)'가 사실상 막혔습니다. 현행 규정상 소유권 이전 3개월이 지난 주택에 대한 담보대출은 '생활안정자금'으로 분류되는데요. 6·27 대책 시행에 따라 생활안정자금 목적 주담대 한도가 1억원으로 제한됩니다. 
 
은행권에서 주담대를 빌린 차주들의 평균 잔액이 1억5000만원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타행에서 대환대출을 받기가 어려워지게 된 것입니다. 같은 은행에서는 기존 주담대 금액 그대로 대환대출을 받을 수 있지만, 만기가 최대 30년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월 상환 부담이 커지게 됩니다. 이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대환대출을 계획했던 차주들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사라지게 된 셈입니다. 
 
실제로 대환대출 플랫폼을 통한 대출 실행액이 기존 대비 최대 25% 가량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환대출 플랫폼은 은행 간 금리 경쟁을 촉진해 소비자가 체감하는 금리 부담을 낮추겠다는 의도로 금융당국이 적극적으로 추진한 바 있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당국은 대환대출 플랫폼 출시에 맞춰 대출금리 인하를 독려하기도 했습니다. 중개 플랫폼 관계자는 "현재 신규 주담대는 거의 셧다운 상태"라며 "가계부채 관리가 최우선 순위가 되면서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6·27 부동산 대책 시행 이후 은행들은 전방위적인 대출 관리에 나섰다. 사진은 서울 시내의 한 시중은행 내 대출 상담 창구 모습. (사진=뉴시스)
 
금리인하기에 고정금리 강요
 
시장금리 하락에도 불구하고 고정금리 대출이 늘어나는 기현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통상 금리 인하기에는 향후 대출금리가 기준 금리에 연동해 낮아질 수 있는 변동금리 대출이 늘어나지만 오히려 고정금리 대출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변동금리 주담대의 준거 금리가 되는 코픽스(COFIX)가 하락세인데, 대다수 차주는 금리 하락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장 논리가 아니라 대출 총량 규제라는 정책이 구조적으로 금리 인하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6월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2.54%를 기록했습니다. 2022년 6월(2.38%) 이후 최저 수준으로, 지난해 10월부터 9개월 연속 하락한 수치입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은행권 주담대 금리는 이에 비례해 하락하지 않았습니다. 
 
대다수 차주가 코픽스와 무관한 금리 체계에 놓여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신규 주담대의 89.5%가 고정형 또는 혼합형 금리로, 변동금리를 기준으로 하는 코픽스 인하가 직접 반영되지 않습니다. 금융당국이 변동금리 위험에 대응해 고정금리 대출을 유도한 정책의 결과입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4월 금융당국이 금리 변동 주기가 5년 이상인 주담대 비중을 30% 이상으로 높이라고 했다"며 "그 비중을 맞추기 위해 현재 대부분의 은행에서 고정금리의 일종인 5년 주기형 주담대를 많이 취급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부 시중은행은 변동금리로 유입되는 걸 막기 위해 코픽스를 추종하는 주담대 변동금리 취급을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금융당국은 금리 상승기에 변동금리 차주의 이자 부담이 증가하는 상황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 고정금리 유도를 추진해왔습니다. 일각에서는 금리 하락기 특정 시점에 갈아타기 수요가 대거 몰릴 경우 금융시장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소비자들은 정책 방향에 맞춰 금융 계획을 세우는데 정부가 납득할 수 없는 특정 금리 유형을 강요하거나 대환 차단으로 급선회하는 것은 신뢰 저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차주의 위험 감수 성향과 상환 계획에 맞춰 자율적으로 선택할 문제"라고 꼬집었습니다. 
 
정부와 은행이 가격·비가격 방법을 총동원해 대출 수요를 억제하고 있는 가운데 소비자 선택권이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한 시중은행의 영업점에서 시민들이 금융거래 업무를 보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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