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근윤 기자]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전력이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수주를 위해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맺은 계약은 독소 조항을 포함한 불공정 계약이라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윤석열정부가 무리하게 체코 원전 수출 성과를 내려고 이런 독소 조항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해당 합의문에는 한국이 원전을 수출할 때마다 1기당 6억5000만달러(약 9000억원) 상당의 물품 및 용역을 웨스팅하우스에서 구매하고, 1억7500만달러(약 2400억원)의 기술 사용료를 지불하는 조항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해당 독소 조항들의 계약 기간인 50년 동안, 우리 원전 수출 경쟁력과 기술 주도권을 동시에 잃은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옵니다.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전력이 미국 원전 기업 웨스팅하우스와 올해 1월 체결한 합의문에 독소 조항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한빛원자력발전소. (사진=한수원 홈페이지)
20일 원전업계에 따르면, 지난 1월 한수원·한전과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체결한 '글로벌 합의문'에는 한수원·한전이 원전을 수출할 때 1기당 6억5000만달러(약 9000억원) 규모의 물품·용역 구매 계약을 웨스팅하우스와 맺고, 1기당 1억7500만달러(약 2400억원)의 기술 사용료를 내는 조항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독소 조항은 일방 당사자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을 의미합니다.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원전 1기를 수출할 때마다 웨스팅하우스에 약 1조1400억원을 내는 겁니다.
한국이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모든 차세대 원전을 독자 수출하려면 웨스팅하우스의 기술 자립 검증도 통과해야 하는 조항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향후 50년간 우리 기업이 독자 기술 노형을 개발해도 웨스팅하우스의 기술을 유출한 것이 아닌지 사전 검증을 받도록 한 겁니다. 웨스팅하우스 판단에 따라 수출 여부가 갈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신규 원전 수출 지역에도 제한이 걸렸습니다. △북미(미국·캐나다·멕시코) △체코를 제외한 유럽연합(EU) 전체 △영국 △일본 △우크라이나시장은 합의에 따라 웨스팅하우스만 독점 수주 경쟁이 가능합니다. 한수원·한전 측이 원전 수주 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은 △중동 △동남아시아(필리핀·베트남) △남아프리카 △남미(브라질·아르헨티나) 등 일부 국가에 한정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실제로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전날인 1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출석해 폴란드 원전 사업과 관련해 "일단 철수한 상태"라고 말한 건 이런 맥락으로 풀이됩니다.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 같은 합의는 약 26조원 규모의 체코 두코바니 원전을 수주하는 과정에서 일어났습니다.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의 법적 분쟁은 20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웨스팅하우스는 2022년 10월 당시 미 연방법원에 '한국형 원전이 미국 원자력에너지법에 따른 수출 통제 대상인 웨스팅하우스 기술을 활용했다'며 지적재산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한국형 원전(APR1000)에 자사의 원천 기술이 포함됐으니, 미국 정부의 허가 없이 수출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소송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2024년 7월 한수원은 미국 웨스팅하우스, 프랑스전력공사(EDF)와 경쟁 끝에 체코 원전 수주에 우선협상자로 선정됐습니다. 곧바로 웨스팅하우스는 한 달여 뒤인 8월, 체코 정부에 '한수원은 체코 원전 사업을 수주할 자격이 없다'며 항의서를 제출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주도 일시 보류됐을 정도입니다. 11월 한수원과 한전은 비공개 이사회를 열고 웨스팅하우스와 비밀 합의안을 가결, 올해 1월 양자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분쟁이 끝났으므로 올 6월에 한수원은 체코 원전 사업을 수주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한 원전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윤석열정부로서는 체코 원전 수주 성과가 급했으므로, 독소 조항이 포함된 계약을 맺고 웨스팅하우스와의 법적 분쟁을 끝낼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분석입니다. 황주호 사장은 전날 산자위 전체회의에서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정당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수준은 감내하고도 이익을 남길 만하다고 생각한다"고도 했습니다. 민주당의 김원이·김정호 의원이 '체코 원전 수주가 급했더라도 지나치게 불리한 내용 아니었나'는 취지로 묻자 황 사장은 "'불리한'이라는 단어에 동의하지 못하겠다"고 답했습니다.
독소 조항 의혹에 대해, 원전 및 에너지 전문가인 황재훈 변호사는 "현재 '서울경제' 등 언론발 보도된 내용이 최종안인지 여부는 확인할 필요가 있다. 최종안과 항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실질적인 협상력은 최종안과 '서울경제'가 확인한 버전에서 큰 차이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지재권 협약은 전체적으로 봤을 때 미끼 상품이고, 이를 지렛대로 해서 웨스팅하우스 주식 매도를 노리는 것이 본 게임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편, 대통령실은 윤석열정부서 한수원이 웨스팅하우스와 독소 조항이 포함된 합의를 체결했다는 논란에 대해 진상조사를 지시한 상황입니다. 강유정 대변인은 전날인 19일 브리핑을 통해 "산업통상자원부가 체코 원전 수출에 대해 국민의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도록 진상을 파악해 보고하라는 비서실장의 지시가 있었다"며 "웨스팅하우스와의 계약 과정에서 법과 규정이 근거가 있는 것인지, 원칙과 절차가 준수됐는지 조사하라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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