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앞장서야 할 증권사가 자사주 빼돌리기
LS증권, EB 이용해 리파인 자사주 헐값 취득…지분율 14% ‘쑥’
‘자사주 소각’ 국회 논의 시작하는데
머스트운용, 자사주 취득 무효화 요구…거부 시 법적 대응 나설 듯
2025-09-02 14:23:41 2025-09-02 15:21:33
[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증시 밸류업에 앞장서야 할 증권사가 자사주 빼돌리기에 동참했습니다. LS증권이 코스닥 기업 리파인 인수를 위해 만든 특수목적회사(SPC)가 교환사채(EB) 발행을 이용해 지분율 14%에 달하는 리파인의 자사주 전량을 헐값에 취득한 것입니다. 리파인의 주요 투자자인 머스트자산운용은 공개 질의를 통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사측의 답변에 따라 법적 대응에 나설 뜻을 밝혔습니다. 자사주 소각을 기대하다 뒤통수를 맞은 일반주주들은 머스트자산운용의 행보와 사측의 대응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돈 필요해 EB 발행, 핑계?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머스트자산운용은 전일 공개 레터 형식을 빌어 리파인 경영진에게 지난 4월에 발행했던 EB의 필요성과 발행 내용 및 주식 전환, 배당 가능 재원 증액 등에 대한 답변을 공개해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머스트자산운용은 지난 7월18일 주식 대량 보유 공시를 통해 6.90% 지분을 확보한 사실을 알리면서 사측에 자본준비금을 이익잉여금으로 전입해 배당 가능 이익을 증액할 것을 제안한 바 있는데요. 리파인은 이에 답하는 대신 나흘 뒤(22일) 4월에 발행했던 EB 전량을 주식으로 전환해 최대주주의 지분율을 47.96%까지 대폭 높였습니다. 
 
문제는 이 주식이 자사주였다는 점이고 주식 전환가격도 매우 낮았다는 사실입니다. 
 
리파인의 최대주주는 리얼티파인이며, 이 회사는 LS증권과 스톤브릿지캐피탈이 리파인 인수를 위해 함께 만든 SPC입니다. 지난 4월 초 이길재 전 대표 등 기존 주주들의 지분을 인수해 34.05%를 확보, 경영권을 장악했습니다. 화근은 회사 인수 일주일도 안 돼 EB를 발행한 것에서 불거졌습니다. 
 
리파인은 대출 금융기관의 의뢰를 받아 부동산 권리 분석 정보 등을 제공하는 사업을 영위합니다. 매출 상당액은 전월세보증금대출 권리조사료로 발생하며, 은행보다 보험사 쪽에서 더 많은 돈을 법니다. 정보 분석이 주업이기에 대규모 추가 투자 없이 매년 200억원대 이익을 쌓고 있으며 회사에 유보한 현금만 전년 말 기준 1300억원에 이릅니다. 
 
이런 회사가 354억원을 조달하겠다며 EB를 발행한 겁니다. 발행 목적은 운영자금(120억원)과 론센터 신설, B2C 플랫폼 강화, 내부 시스템 사업 등(234억원)으로 밝혔습니다. 하지만 2021년 주식시장에 상장하면서 생긴 자금(자본잉여금)도 아직 그대로여서 올해 정기예금만 1200억원가량 예치할 정도인데 354억원 때문에 사채를 발행했다는 사실이 의아합니다. 우량 기업이 발행하는 EB 금리가 연 6.0%나 됐단 사실도 세간의 화제였습니다.
 
더구나 채권을 주식으로 대신 가져가는 교환가격은 주당 1만4709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EB 발행 2주 전 리얼티파인이 이길재 대표 등에게서 인수한 가격 2만7159원의 반값 수준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인수 전 자사주 챙기기 준비
 
결정적인 문제는 이 EB가 최대주주 본인인 리얼티파인에게 ‘셀프’ 발행됐고 EB의 교환 대상이 신주가 아니라 자사주 241만주 전량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현재 정부와 국회는 코스피 5000을 내걸고 자본시장 대수술에 한창입니다. 이사의 주주충실의무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이 의결된 데 이어 집중투표제 등이 담긴 개정안이 2차로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이어 이달에 열리는 국회에서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3차 상법 개정안이 본격적으로 논의될 예정입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자사주를 보유한 기업들은 전량 또는 일부를 기한을 정해 소각해야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부와 국회, 금융당국, 자본시장이 함께 나서서 한국 주식시장의 가치를 높이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와중에 이에 앞장서야 할 증권사가 자기들이 투자한 기업의 자사주를 헐값에 빼돌린 결과입니다. 리파인을 인수한 즉시 자사주 전량을 교환 대상으로 EB를 발행한 것을 미루어 볼 때 관련법이 개정되기 전에 자사주를 챙기려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LS증권 관계자는 이에 대해 “대주주의 추가 출자는 인수 당시 계획했던 것이며 현금이 많다고 하는데 돈은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니냐”며 “EB 교환가격은 당시 주가보다 10% 높아 헐값은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EB의 교환 대상이 하필 자사주였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제3자배정 유상증자 등은 신주 발행으로 주식가치가 희석되는데 주주들이 좋아하겠냐”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EB 발행을 통한 추가 출자 계획이 있었다는 내용은 이미 인수와 EB 발행, 주식전환이 완료된 지금도 대외비 자료라며 공개를 거부했습니다. 구체적인 투자 계획 여부도 경영상 비밀이라며 밝히지 않았습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현금 많은 리파인에게 그 돈이 급했는지 의문이고, 대주주가 사모펀드 뒤에 숨어서 전환사채(CB) 싸게 가져가 지분 늘리는 경우는 봤지만 이렇게 대놓고 EB로, 더구나 자사주를 가져가는 건…”이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그는 또 “EB 교환가격이 그때 주가보다 높다는데 만약 14% 주식지분을 시장에서 매수하든 블록딜로 사든, 10% 더 주고 살 수 있겠느냐”며 “헐값이 맞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모인 주주들은 “리파인 이사들을 주주충실의무 위반으로 고소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리파인 경영진에 공개서한을 띄운 머스트운용은 EB 발행과 자사주 취득을 무효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리파인은 머스트운용이 주주제안한 자본준비금을 이익잉여금으로 전입시키자는 안건을 오는 24일 임시주주총회에서 논의합니다. 머스트운용은 주총 일주일 전인 17일까지 공개서한에 대한 답변을 요구한 상태입니다. 
 
또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머스트운용의 성향을 감안하면 사측의 대응을 시나리오별로 예상해 그에 맞는 법적 준비를 끝냈을 것”이라며 “경우에 따라서는 금감원 고발도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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