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충범 기자]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이 예상보다 늦어지는 데는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이해관계 집단과의 엇박자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홈플러스의 조기 정상화를 위해서는 원활한 유동성 융통이 뒷받침돼야 하고, 이 과정에서 일부 대기업 협력사를 비롯해 관련 이해 단체들의 협력은 필수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하지만 홈플러스에 주요 물품들을 발주하는 기업들의 납품 축소 및 중단, 입점 업체들의 정산 주기 단축 등은 홈플러스의 유동성을 경색시켜 회생을 더욱 더디게 만드는 악순환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업계는 홈플러스의 축적된 노하우 및 점포 입지 등을 감안할 때 여전히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이해관계 집단의 전향적인 자세가 요구된다고 지적합니다.
납품 중단·정산 단축 요구…정상화 가로막아
홈플러스의 정상화를 가로막는 주요 원인은 바로 매대에 상품들이 제때 공급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협력 업체들의 납품 중단, 정산 주기 단축 등 수익 방어 차원에서 이뤄진 결정이 홈플러스의 자금난을 촉진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데요.
실제로 홈플러스의 모든 점포는 완전 정상 상태로 영업이 되고 있지 않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의 경우 상품 공급 차질과 고객 감소로 인해 매월 전년 대비 500억원(약 7~8%) 규모의 매출 하락이 발생했는데요. 회생에 돌입한 지난 3월부터 7월 말까지 누적된 매출 감소분만 약 2500억원에 달합니다. 상품 공급만 정상적으로 이뤄졌어도 이 같은 손실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납품 중단 사태는 지난 3월 말부터 반복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전충남양돈농협은 아예 3월부터 납품을 중단했고, 일시적이긴 했지만 오뚜기, 동서식품, 롯데칠성음료, 빙그레, 매일유업 등은 납품을 중단했다 재개한 바 있습니다.
특히 홈플러스의 경우 정산주기는 45~60일에 달하는데요. 물품을 제공했다 대금을 떼일 수 있다는 염려에 이 주기를 단축하는 업체들이 늘어나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재명정부의 첫 민생 회복 프로젝트인 소비쿠폰 지급과 관련해 대형마트가 대상에서 제외된 점도 홈플러스에게는 뼈아프게 작용했습니다. 지난 7월 말 소비쿠폰 정책 시행 이후 약 40일 동안 13조원의 거액이 단기간에 시장에 풀리면서, 편의점 등 쿠폰을 사용할 수 있는 오프라인 업태는 톡톡한 소비 진작 효과를 누리고 있는데요. 이들 채널은 여름 휴가철과 맞물려 소비쿠폰의 효과를 톡톡히 입은 반면, 대형마트인 홈플러스는 이 같은 특수를 전혀 누리지 못하며 오히려 상대적으로 손해를 입었습니다.
MDM자산운용, DL그룹 등 홈플러스 점포를 소유한 기업들과 임대료 조정 협상을 이뤄내지 못한 점도 결과적으로 홈플러스의 부담을 키우고 있습니다. 홈플러스는 전국 약 120곳의 점포들 중 절반가량은 임대, 나머지 절반은 직접 소유해 매장을 운영해왔는데요. 이 중 임대료 조정이 되지 않은 15곳은 정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협상 없이 기존 임대료를 부담하기엔 물품 대금 지급의 어려움이 불가피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설명입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회생절차 개시 이후 신뢰도 하락으로 일부 대형 납품 업체들이 정산 주기를 단축하거나 거래 한도를 축소하고, 선지급과 신규 보증금 예치를 요구하는 사례가 늘면서 현금 흐름이 악화하고 있다"며 "또 소비쿠폰 용처에 대형마트가 포함되지 않으면서, 최근 매출 감소 폭도 더욱 커졌다. 회생 중인 기업 특성상 외부 차입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 같은 매출 감소는 곧바로 자금 유동성 압박으로 이어지는 실정"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유통 노하우·킬러 콘텐츠 확보한 홈플러스
문제는 소비자들이 주로 다양한 상품들을 대량으로 구매하기 위한 목적으로 홈플러스와 같은 대형마트를 방문하는데, 매대가 텅 비어 있을 경우 마트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형마트는 기본적인 규모의 경제가 뒷받침돼야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며 "확보한 물품이 적어지면 이는 소비자의 편익 감소로 이어진다. 또 이로 인해 바잉 파워가 약해지는 악순환 역시 불가피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기업 경영 관점에서 볼 때 이들 업체의 홈플러스에 대한 타이트한 운용 전략을 비판하기는 어렵습니다. 리스크를 줄이고 수익을 보전하는 것은 모든 기업에 해당되는 최우선 가치인 까닭이죠.
하지만 대상이 회생 가능성을 갖춘 기업일 경우, 협력 업체들 입장에서는 분명 생각해볼 대목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특히나 홈플러스와 같이 오랜 기간 오프라인 유통의 빅데이터를 확보하고 확실한 킬러 콘텐츠들을 보유한 경우라면, 이해관계 단체들 사이에서도 보다 협력적 자세가 필요하다는 조언이 제기되는데요.
홈플러스는 이마트, 롯데마트와 함께 국내 '빅 3' 대형마트로 불리며, 매출액 기준 2위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점포 규모를 비롯, 수도권 및 지방 노른자위에 위치한 우수한 입지, 창립 이래 28년간 축적해온 마트 영업 노하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홈플러스는 대형마트가 갖춰야 할 강점을 두루 갖춘 채널로 평가받는데요.
아무리 유통 시장에서 이커머스가 성장한다 해도, 쇼핑의 근간은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오프라인 쇼핑입니다. 때문에 이커머스 대비 대형마트가 분명 강점을 보일 수 있는 콘텐츠들 역시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인데요.
특히 홈플러스의 경우 신선식품 특화 콘텐츠에 강점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홈플러스는 일찌감치 지난 2022년부터 주요 점포들을 식료품 특화 매장인 '홈플러스 메가푸드마켓'으로 전환한 바 있고, 이 과정에서 다이닝 스트리트 등 식품 관련 구획 및 동선에 큰 변화를 주며 모객을 늘린 실적이 있습니다.
홈플러스가 확보하고 있는 기업형 슈퍼마켓(SSM)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알짜 매물인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고물가 기조 장기화와 근거리 쇼핑을 선호하는 쇼핑 트렌드가 짙어지면서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의 추후 경쟁력은 더욱 높아질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죠.
홈플러스가 관계사들의 주요 판로인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분석입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홈플러스의 경우 점포별로 차이는 있지만 규모, 매장 구성, 입지 등을 고려해볼 때 나름대로 강점을 지닌 대형마트 채널임에는 분명하다"라며 "사실 납품 기업 등 관계사 입장에서도 홈플러스의 회생이 더 유리하다. 홈플러스가 청산된다면 중요한 대규모 판로를 잃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서울 시내 한 홈플러스 점포 물류입고장 모습. (사진=뉴시스)
김충범 기자 acechu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