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숨소리) 긴 여정의 여행자 알락꼬리마도요
2025-09-05 10:41:29 2025-09-05 14:46:10
알락꼬리마도요 무리가 충남 서천군 유부도에서 만조 때 물이 차오른 바다 위를 날고 있다. 
 
갯벌에서 알락꼬리마도요(Far Eastern Curlew, Numenius madagascariensis)를 만나면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그 크기와 긴 부리입니다. 도요물떼새 중에서 가장 큰 몸집을 지닌 이 새는 암컷이 수컷보다 훨씬 크고, 아래쪽으로 완만하게 굽은 긴 부리를 가지고 있어 멀리서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알락꼬리마도요는 이 부리로 갯벌 깊숙한 곳에 있는 게, 조개, 갯지렁이 같은 무척추동물을 찾아내는 데 능합니다. 
 
깃털 색은 계절마다 조금씩 달라집니다. 기본적으로는 누르스름한 갈색 바탕에 갈색 줄무늬가 흩어져 있고, 여름에는 등 쪽이 적갈색으로, 겨울에는 옅은 갈색으로 바뀝니다. 생김새가 마도요와 비슷하지만 날개를 폈을 때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마도요는 날개 안쪽과 등허리가 흰 반면, 알락꼬리마도요는 이름처럼 날개 안쪽, 등허리에서 꼬리까지 알록달록한 무늬가 이어져 있어 확연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영종도 송산유수지에서 만난 수백 마리의 알락꼬리마도요는 아파트 단지가 보이는 물가에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이동 중 잠시 머물러 휴식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유부도 갯벌에서는 전혀 다른 규모가 펼쳐졌습니다. 유부도가 위치한 금강 하구의 너른 갯벌에서 수천 마리가 모여 물때에 맞춰 쉬거나 일제히 날아오르고 있었습니다. 알락꼬리마도요는 썰물로 드러난 펄에서 여유로운 걸음을 옮기며 갯벌을 찔러봅니다. 먹잇감을 감지하면 부리를 비틀어 깊숙이 꽂아 넣습니다. 잠시의 실랑이 끝에 갯벌 속에 숨어 있던 게를 끄집어내 한입에 털어버리고는 다시 유유히 걸으며 먹이 활동을 이어갑니다. 큰 체구와 긴 부리 덕분에 다른 도요새들이 도달하기 어려운 깊은 곳까지 공략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갯벌 사냥의 전문가라 할 만합니다. 
 
얼핏 느긋해 보이는 먹이 사냥 방식과 평온하게 휴식할 때의 모습과는 달리 이들의 삶은 치열합니다. 아주 먼 거리를 이동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극동의 습지에서 번식을 하고, 호주와 파푸아뉴기니 해안에서 겨울을 나는 여정은 1만킬로미터에 이릅니다. 이 장거리 이동은 엄청난 체력 소모를 요구하며, 중간에 충분히 먹고 쉬어 갈 중간 기착지가 꼭 필요합니다. 황해 갯벌은 번식지와 월동지를 잇는 길목이자 사실상 유일한 관문입니다. 영종도와 유부도를 비롯한 한국의 서해안 갯벌은 이들에게 연료를 채우는 주유소인 셈입니다. 3~5월과 7~10월, 이곳에 머무는 동안 충분히 에너지를 비축해야만 다음 구간까지 날아갈 수 있습니다. 
 
알락꼬리마도요와 마도요가 유부도 갯벌 위 하늘을 날고 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 갯벌은 개발과 매립으로 빠르게 줄어들었습니다. 일부 지역은 여전히 새로운 위협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알락꼬리마도요는 2만~5만마리뿐입니다. 개체수가 적은 데다 모두가 같은 이동 경로를 이용하기 때문에, 한 지역 갯벌의 변화가 곧 전체 집단의 향방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들의 삶이 취약한 균형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알락꼬리마도요는 성실한 여행자입니다. 대륙과 대륙, 갯벌과 바다를 넘나들며 먼 길을 갑니다. 황해 갯벌, 호주 해안, 러시아의 습지를 잇는 하나의 생태망 속에서 살아가는 이 새의 여정은 그 자체로 자연의 연결성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인간 역시 그 생태망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 얼마 남지 않은 이 긴 부리의 새가 앞으로도 같은 길을 이어서 갈 수 있을지는, 결국 우리가 갯벌을 어떻게 보전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글·사진= 김용재 생태칼럼리스트 K-wild@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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