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승훈 산업1부장] 선생을 처음 본 것은 1999년 6월께였다. 서울대에서 열린 강연회 자리였다. 친구와 강연회 가는 길에 ‘긴 프랑스 망명 생활 뒤 모교 후배들을 만나는 선생의 감정이 남다르지 않겠냐’고 얘길 나눴다. 순진했다. 선생은 서울대 후배들에게 ‘여러분들이 자기 성찰을 하지 않는다면 결국 개혁 대상인 한국 사회 기득권층이 될 수밖에 없다’고 일갈했다. 덕담을 생각했던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대학시절 기획했던 홍세화 강연회 포스터. 선생은 동아리 선배가 찍은 이 포스터 속 사진을 마음에 들어 하셨다. 그때 선생의 나이는 지금 나보다 겨우 다섯 살이 많았다. (사진=우종국)
선생은 그 뒤로도 여러 자리와 지면을 빌어 자기 성찰을 이야기했다. 강연이 끝나고 선생의 책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앞 표지에 저자 사인을 받았다. 선생은 ‘반갑습니다 홍세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