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차철우 기자]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전 세계를 상대로 부과한 상호관세 조치가 운명대에 올랐습니다. 앞서 미 연방대법원(대법원)은 하급심에서 위법 판단을 내렸는데요. 최종심만 남겨둔 가운데 전 세계의 시선이 쏠립니다. 원심 판결이 유지될 경우 관세 조치는 '무효'가 됩니다. 이 경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플랜 B'로 선회할 것으로 전망되는데요. 국제적 파장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의회 권한 침해 지적에도…행정부 "폭넓은 재량" 주장
미 연방대법원은 5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 조치의 적법성을 둘러싼 심리를 열었습니다. 최종심에선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한 상호관세 부과에 대한 법적 정당성을 따졌습니다. IEEPA는 지난 1977년 제정된 법인데요. 국가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대통령에게 외국 정부 등에 수출입 제한 등 권한을 부여합니다. IEEPA의 취지는 '외교·안보' 목적의 경제 제재를 위한 법률로 명시돼 있습니다. 특정 국가에 일괄 관세를 부과하는 근거로 사용하기에는 취지가 다르다는 점도 쟁점 중 하나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 IEEPA에 근거해 한국을 비롯해 100개 이상의 국가에 상호관세를 부과한 바 있습니다. 이와 관련 오리건주 등 12개 주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가 무효라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2심 재판부는 이를 모두 위법으로 판단했습니다.
특히 이날 심리에서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중대 문제의 원칙을 거론했습니다. 그는 "관세는 역사적으로 의회의 핵심 권한"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세금 부과 같은 중대 조치를 행정부가 진행하려면 의회가 명시적으로 허가해야 한다는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한 보수 성향 대법관도 이날 대통령의 권한이 헌법적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심리에서 "행정부에 폭넓은 재량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이 비상권한을 발동한 것은 무역 적자로 미국이 경제와 국가 안보가 재앙 직전까지 몰렸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제시했습니다.
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백악관 경내 로즈가든에서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라는 행사를 열고 국가별 상호관세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전방위' 관세 대신 '품목별' 적용 관측
위법 판결이 나오면 미국 내부는 물론, 전 세계 무역 시장에도 적잖은 파장이 예상됩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0개월간 여러 기업 등에 890억달러(한화 약 130조원) 이상의 관세를 징수했는데요. 이를 모두 환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위법 판결 시 환급 절차와 범위를 둘러싼 행정 혼란과 추가 소송도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펼친 무역 전쟁도 다시 혼란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미 투자, 방위비 인상 등을 무기로 여러 나라와 관세 협상을 진행해왔습니다. 행정부가 패소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국정 운영 동력으로 활용해온 정책의 속도와 범위가 제한될 수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소송에서 패배해도 다른 법적 수단을 통해 관련 조치를 마련할 것으로 보입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4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항상 플랜 B를 준비한다"고 밝힌 바 있는데. 현지 외신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최종심에서 패배할 경우 무역확장법 232조·무역법 301조·관세법 338조 등을 활용해 관세 부과를 이어갈 수 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 경우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 수준의 '전방위 관세 전략'을 그대로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철강과 자동차 등에 대해선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품목별 관세를 매기고 있습니다. 무역법 301조 역시 트럼프 행정부가 활용할 수 있는 수단입니다. 앞서 미국은 해당 조항을 통해 중국의 해운·조선 산업을 제재했습니다. 한국과 유럽 등에 적용하기에는 근거가 약하지만 특정 품목과 국가 제한형 보복은 가능합니다.
대법원은 이날 이번 사건을 신속 심리 사건으로 다뤘습니다. 재판 결과는 이르면 이달 늦어도 내년 초까지는 판결이 내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차철우 기자 chamato@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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