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불호령'에 혼쭐나는 장관들…관가 '초긴장'
대통령 공개 질책에…"끝나도 끝난 게 아냐"
2025-12-21 18:04:14 2025-12-21 18:10:12
[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사상 처음으로 전 과정이 생중계된 대통령 업무보고가 사실상 마무리됐지만, 세종 관가에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긴장감이 더 짙게 남았습니다. 대통령의 공개 질책과 즉문즉답, 별도 대책 마련 주문에 장관과 간부들의 부담은 한층 커졌습니다. 업무보고에서는 정책 완성도보다 '공개 질문에 막히지 않는지'가 관건이 됐다는 말도 나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공직사회 긴장감 높이지만…'즉문즉답 시험대' 한계
 
이재명 대통령은 오는 23일 해양수산부를 마지막으로 취임 후 첫 업무보고 일정을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지난 11일 경제부처를 시작으로 약 2주 동안,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긴장 속에 업무보고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이번 업무보고를 두고 공무원들은 21일 "어느 때보다도 힘든 보고였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역대 업무보고는 대통령 모두발언 위주로 공개되고, 세부 논의는 사후 브리핑으로 전해졌습니다. 정부 정책 전반이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메시지를 대외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반면 이번 업무보고는 대통령의 질문, 이에 대한 장관·기관장의 즉석 답변, 그리고 최종 지시가 내려지기까지의 과정이 한 흐름으로 국민에게 공개됐습니다. 
 
국토부 업무보고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외화 밀반출 문제와 관련해 답변하던 중 설명이 길어지자, 이 대통령은 "말이 참 길다", "취임한 지 3년씩이나 됐는데 업무 파악도 못 했다"고 질책하고, 추가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했습니다.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는 응급 환자와 119구급대가 치료할 병원을 찾지 못해 현장을 전전하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문제가 집중적으로 거론됐습니다. 정은경 장관은 현행 제도의 취지를 설명했지만, 이 대통령은 "현실은 여전히 환자가 구급차를 타고 돌아다니다 죽어간다"고 거듭 지적하며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 별도로 보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온라인 등에선 제대로 된 답변을 준비 못 해 절절매는 장관 등의 모습을 두고 '사이다'(속이 시원하다)란 반응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업무보고를 마친 공무원 사이에서는 부담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이어졌습니다.
 
국장급 공무원 A씨는 "일단 끝나서 다행이긴 한데, 내년이 더 중요할 것 같다"고 했고, B씨는 "장관께서 주요 통계와 수치를 달달 외우고 들어가도 돌발 질문이 나오면, 순간적으로 긴장할 수밖에 없다"며 "지켜보는 우리도 긴장의 연속이다. 부담스러운 부분이 많다"고 토로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준비해도 사람인지라 실수할 수 있다. 답변이 막히는 순간, 망신당하는 모습을 아이들이 볼까 봐 아버지로서 걱정됐다"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2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토교통부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통령·장관만 말하는 구조"…정책보다 '즉답 능력' 부각 우려
 
통일부 업무보고에서는 대통령 질문에 대한 답변이 정동영 장관에게만 집중되자, 정 장관이 배석자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국·실장들은 왜 아무도 얘기를 안 하느냐"고 지적하는 장면도 연출됐습니다.
 
이 같은 업무보고 방식이 토론과 참여를 제약한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한 참석자는 "대통령과 장관만 말하고 나머지는 거의 발언하지 않는 구조"라며 "질문에 대한 답변을 넘어, 참석자들이 주제별로 더 많이 참여하고 토론하는 방식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일부 부처는 업무보고 전부터 대통령의 돌발 질문에 대비해 예상 문답을 정리하고, 대응 전략을 마련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공무원 D씨는 "수험생이 공부하는 마음으로 복습·복습·복습했다"며 "업무보고에 관련 내용을 달달달 외우고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이 같은 대비 자체가 정책 점검의 긴장도를 높였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한편에서는 정책의 실질적 완성도보다 '어떻게 보일지'를 우선 고민하게 만드는 구조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한 참석자는 "생중계되면서 정책 주도권이 대통령에게 넘어간 느낌"이라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의 '만기친람'(임금이나 최고 지도자가 모든 정사를 친히 보살핀다는 뜻)이 정책 왜곡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