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이 SNS상에서 악질적인 괴롭힘이나 성적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 우리는 부모와 아이들이 중독적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도와야 한다.”
2024년 11월,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소셜미디어 규제법으로 불리는 호주 청소년의 ‘SNS 연령제한법’을 통과시키면서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가 했던 말이다. 이 급진적인 조치 뒤에는 소셜미디어가 청소년의 정신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으며, 특히 사이버 불링과 그루밍이 청소년 자살률 증가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호주 정부의 깊은 우려가 있었다. 이로써 호주의 16세 미만 청소년은 틱톡, 인스타그램 등 주요 SNS 플랫폼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법은 지난 12월10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이 법의 주된 목적은 물론 청소년 보호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디지털 공간에서 일상화된 모욕과 혐오가 실제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사회적 인식을 통해 이를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는 데 있다.
호주 안에서도 이 법의 실행을 두고 찬반 논란이 뜨거웠던 것으로 안다. SNS의 문제점에 대한 공통된 판단 속에서도 법에 의한 강제적 중단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한다는 목소리도 컸던 것이다. 우리나라라면 어땠을까, 내가 정책결정자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지금 우리 사회 역시 이런 질문을 던지고 함께 고민할 때다. 이것은 단순히 청소년들의 SNS 사용을 규제하느냐 마냐의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시리즈 <자백의 대가> 속 메시지에 있다.
이 시리즈는 표면적으로는 윤수와 모은이라는 두 여성 주인공의 복수극이다. 그러나 깊이 보면 ‘모욕감’이라는 감정의 파괴력에 대한 사회적 탐구로 읽힌다. 모욕감이 폭력의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된다는 것을 완벽히 이해시키기 때문이다.
모욕은 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부정하는 행위다. ‘네가 한 일’이 아니라 ‘네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 보고서에는 오류가 많다”는 말은 비판이지만, “너는 일도 제대로 못하는 쓰레기다”라는 말은 모욕이 된다. 심리학자들은 모욕이 수치심을 동반하며, 이 수치심이 쉽게 분노와 공격성으로 전환된다고 말한다. 모욕이 인간의 기본 욕구인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정면으로 위협하기 때문이다. 공격의 대상은 타인만이 아니다. 반복된 모욕은 자기파괴적 인식을 내면화시켜 스스로를 공격하기도 한다. ‘나는 정말 쓸모없는 사람이야’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지속적인 악플에 시달리는 연예인들의 극단적인 선택에는 이런 심리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드라마 <자백의 대가>는 모욕감이 폭력의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디지털 환경은 모욕을 하기에 매우 효율적이다. 화면 너머의 상대방의 표정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사람들은 현실에서는 결코 하지 않을 말과 행동을 서슴없이 한다. 사실 상처받고 망가지는 것은 비단 어린 청소년들만이 아니다. 어른들도 보호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SNS를 전면 차단하거나 없애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법적 규제 역시 만능이 아닐 것이다. 근본적인 해결은 결국 ‘금지’가 아니라 ‘변화’이다.
<자백의 대가>에서처럼 모욕은 끝없는 폭력의 씨앗이 된다. 그것은 자아를 죽이고, 분노를 키우며, 복수심을 낳는다. 디지털 시대는 분명 모욕을 확대했지만 동시에 연결과 공감의 가능성도 확대했다. 모욕을 막겠다고 디지털 시대를 마감할 수 없는 이유다. 연결과 공감이 가능해진 이유는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스크린 너머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대를 모욕의 시대에서 존엄의 시대로 만드는 것은 이 사실을 잊지 않는 것뿐이다. 존엄의 시대에서 호주 청소년들이 다시금 자유롭게 SNS를 사용할 수 있는 날이 오길 소망한다.
이승연 작가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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