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동물 성분 없이 ‘장 줄기세포’ 만든다
KAIST 등 연구진, 고분자 배양 플랫폼 ‘PLUS’ 개발
손상조직 재생력 높일 줄기세포 치료제 임상 적용
2025-12-26 09:16:36 2025-12-26 09:16:36
환자 자신의 세포로 만든 장 줄기세포는 면역 거부 반응이 적어 난치성 장 질환 치료의 대안으로 주목받아 왔지만, 임상 적용 단계로 넘어가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배양 과정이 동물 조직에서 유래한 이종 성분에 의존하면서 바이러스 전파 위험과 품질 편차, 임상 규제라는 한계를 동시에 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줄기세포 치료제의 안전성과 재현성을 요구하는 임상 환경에서 치명적인 약점이었습니다.
 
이런 한계를 근본적으로 돌파할 수 있는 기술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제시되었습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명화학공학과 임성갑 교수 연구팀은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한국생명공학연구원(KRIBB) 연구진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동물 유래 성분 없이도 장 줄기세포를 안정적으로 배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손상된 조직으로의 이동성과 재생 능력까지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새로운 고분자 기반 배양 플랫폼을 개발했다고 밝혔습니다. 연구 결과는 재료과학 분야 최고 권위 학술지인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즈(Advanced Materials)> 온라인판에 실렸습니다.
 
동물성분 없는 줄기세포를 배양하여 난치성 장질환을 치료하는 개념도 (이미지=KAIST에서 AI를 이용해 생성)
 
줄기세포 치료 장애물 ‘이종 성분’
 
줄기세포 치료제의 임상 적용이 지연돼 온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배양 과정의 불확실성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장 줄기세포 배양에는 쥐 같은 동물 조직에서 유래한 물질이 널리 사용돼 왔습니다. 이들 물질은 세포가 잘 자라고 분화하도록 돕는 역할을 하지만, 구성 성분과 농도를 정확히 규명·통제할 수 없어 임상 단계에서는 심각한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특히 이종 성분이 체내로 이식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면역 반응이나 감염 위험은 규제 당국이 가장 민감하게 보는 요소입니다.
 
연구진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장 줄기세포 치료가 실제 환자에게 적용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배양 환경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접근을 택했습니다. 핵심은 세포의 행동을 좌우하는 배양 표면을, 동물 유래 물질이 아닌 화학적으로 정의된 합성 고분자로 대체하는 것이었습니다.
 
공동연구팀이 개발한 기술의 이름은 ‘PLUS(Polymer-coated Ultra-stable Surface)’입니다. PLUS는 기상 증착(vapor deposition) 방식으로 합성 고분자를 균일하게 코팅한 배양 표면으로, 표면 에너지와 화학 조성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연구진은 이 표면이 장 줄기세포의 부착력을 크게 높일 뿐 아니라, 대량 배양에도 적합하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확인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안정성입니다. PLUS는 상온에서 3년간 보관한 뒤에도 초기와 동일한 배양 성능을 유지했습니다. 이는 줄기세포 치료제를 상업적으로 생산하고 유통하는 데 매우 중요한 조건입니다. 배양 표면의 성능이 시간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치료제의 품질을 장기간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연구의 차별성은 PLUS가 장 줄기세포의 생존과 증식에 그치지 않고, 세포 이동을 적극적으로 유도했다는 점입니다. 장 줄기세포는 손상된 부위로 이동해 새로운 조직을 형성하는 능력이 치료 효과의 핵심인데, 기존 배양 환경에서는 이 이동성이 충분히 발현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연구진은 단백체 분석을 통해 PLUS 환경에서 배양된 장 줄기세포의 내부에서 뚜렷한 변화를 포착했습니다. 세포 골격 재구성과 관련된 단백질, 특히 세포 골격 단백질 결합 및 액틴 결합 단백질의 발현이 크게 늘어난 것입니다. 이는 세포 내부 구조가 보다 안정적으로 재편되면서, 세포가 기판 위를 이동하는 데 필요한 힘의 원천이 강화됐음을 의미합니다.
 
‘잘 자라는 세포’‘잘 움직이는 세포’
 
살아 있는 세포를 3차원으로 시각화하는 홀로토모그래피(holotomography) 현미경을 이용한 실시간 관찰 결과는 이런 분자적 변화를 확인해 주었습니다. PLUS 위에서 배양된 장 줄기세포는 기존 표면에서 자란 세포에 비해 약 두 배 빠른 이동 속도를 보였습니다. 또한 손상된 조직을 모사한 실험 모델에서는, 단 일주일 만에 손상 부위의 절반 이상이 회복되는 뛰어난 재생 능력이 관찰됐습니다.
 
화학적 기상증착 공정으로 개발된 고분자 기반 배양 표면기술 ‘PLUS’ 개념도.(이미지=KAIST 제공)
 
이 같은 결과는 PLUS가 세포 골격 활동을 통해 줄기세포의 재생 능력을 강화하고, 배양 환경 조절만으로도 세포 행동과 치료 잠재력을 함께 제어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연구팀은 이번 플랫폼이 장 줄기세포의 안전한 대량 배양과 임상 적용 가능성을 크게 높일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임성갑 KAIST 교수는 “이번 연구는 줄기세포 치료제의 임상 적용을 가로막던 이종 성분 의존성을 해소하고, 줄기세포의 이동과 재생 능력을 극대화하는 합성 배양 플랫폼을 제시했다”라며 “재생의학 분야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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