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당의 경선을 위한 여론조사가 민심을 바르게 반영할 것이라 믿는 순진한 후보자는 공천을 받을 수 없다. 공천 경쟁은 적자생존, 승자독식의 배틀로열이다. 과장이 아니다.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온갖 방법이 동원된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여론조사결과 등록현황에 따르면 <뉴스토마토> 의뢰로 미디어토마토는 통신 3사로부터 휴대전화 가상번호(안심번호)를 받아 2025년 12월 20일과 21일 무선 ARS 방법으로 인천광역시 거주 만 18세 이상의 남녀를 대상으로 인천시장 선거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2만9991통의 전화를 걸었고, 그 중 1만8271명이 전화를 받았는데 유효한 응답을 완료한 사람은 1002명이었다. 다른 여론조사기관의 조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22년 지방선거, 2024년 총선 당시 각 정당은 경선에서 일반 여론조사 결과를 50%까지도 반영했다. 경선에 이용되는 여론조사는 복수의 업체가 무선 ARS 방법으로 500개 내지 1000개 내외의 표본을 모집한 후 성별·연령별 가중치를 적용해 결과를 낸다. 휴대전화 번호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를 경유해 통신 3사로부터 가상번호 형태로 제공받는다.
경선을 준비하는 후보자는 무엇보다 지지자들이 많은 수의 휴대전화 번호를 확보하게 해야 한다. 한 사람이 휴대전화를 한 개만 개통하라는 법은 없기 때문에 가능하면 한 사람이 여러 대의 휴대전화를 개통하게 한다. 선거구 밖에 사는 지인들은 통신사에 주소지 변경을 요청하도록 독려한다. 명의를 빌려 대포폰을 만들 수도 있다.
여론조사가 이루어지는 날에 지지자들은 하루 종일 올지도 모르는 여론조사 전화를 기다려야 한다. 그들의 어머니·아버지·아내·자녀·친구들도 물론이다. 전화번호부에 있는 모든 번호로 지지를 호소하는 문자메시지도 미리 보내야 한다.
무선 ARS 방법으로 500명의 응답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대략 1만5000통의 전화를 걸어야 한다. 500명의 지지자들이 3명씩만 모을 수 있으면 2000명이다. 유권자가 10만명인 경우 확률적으로 그 2000명 중 300명에게는 여론조사 전화가 간다. 그들 중 상당수가 전화를 받아준다면 결과를 바꾸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가까운 이들에게는 가급적 20대나 30대로 나이를 속여 답하게 유도한다. 응답률이 낮아 가중치가 높게 부여된다. 여론조사기관이 이를 완벽하게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지방선거 공천 경선 여론조사에서 탈락한 후보의 지지자와 당원들이 여론조사가 공정하지 못하게 이뤄졌다며 항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다른 후보자도 같은 방법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사실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승리를 확실히 담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손을 놓고 있으면 질 수 있다. 딜레마에 빠진다. 운이 없어 걸리면 어쩔 수가 없다. 지는 것보다는 이기고 수사와 재판을 받는 것이 낫다는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 공천과 당선에 대한 열망은 사막의 태양열보다 뜨겁다. 탈법과 위법의 유혹을 꺾을 수 있을까.
민심은 측정되는 것이 아니고, 조작되고 조직될 수 있다. 일부의 경우에 불과하겠지만, 여론조사를 통한 경선은 구조적으로 후보자들로 하여금 불법행위를 고민하게 조장한다. 여론조사의 결과를 경선에 반영하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 새해가 되면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위한 각 정당의 공천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천경득 변호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